
2025년 1분기 한국 경제가 -0.2% 성장하며 9개월 만에 다시 역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2024년 2분기(-0.2%) 이후 4분기 연속 0.1% 이하의 저성장 국면이 지속하고 있다.
정부의 거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1차관을 역임했던 이억원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4월 27일 인터뷰에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나더라도 다음 분기에는 브이(V) 자로 반등하는 게 한국 경제의 일반 패턴이었다”면서 “기저 효과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장기간 경기가 주저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소비, 정부 소비, 건설투자, 설비투자, 수출 등 주요 지표가 모두 마이너스인 것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면서 “사실상 경기 침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며, 이번 침체는 일시적 꺾임이 아니라, 경제 기력이 완전히 빠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수출 감소에도 순 수출이 성장 기여도에 플러스로 작용한 현상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내수 위축으로 수입이 수출보다더 급감해 ‘불황형 흑자’가 나타난 것은 일시적 경기 위축이 아니라 구조적 경기 침체가 나타난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재무부로 입직한 이 교수는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 등에서 30여 년 공직 생활 동안 세 차례 경제 위기를 겪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당시 인력 정책과 사무관으로 고용보험 확대 적용 등 실업 대란 대책 수립에 참여했고, 물가정책과장 재임 시인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물가 대란에 맞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일어난 2020년에는 경제정책국장으로 각종 민생 금융안정 패키지 등 위기 대응책 수립을 책임졌다.
이 교수는 “총체적 위기가 겹친 지금 같은시기일수록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며 “재정·통화정책으로 경기를 안정시키고, 각종 경제 위기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은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교육·연구개발(R&D)을 통한 미래 성장 잠재력 제고, 사회 안전망을 통한 리스크 분산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부 소비가 감소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부 예산 집행을 시작하는 1분기에 정부 소비 감소를 예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찾아보니 2011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건강보험 지출 감소 등 이례적인 일이 있었고,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플러스(0.1%포인트)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경기 침체에 대한 정책 대응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통화 등 거시 경제정책이 경제 흐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0) 성장' 이 지속하는 반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23년 46.9%에서 2024년 46.1%로 낮아졌다. 최근의 경기 침체를 과도한 긴축재정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나.
“지나치게 긴축적인 재정 운용은 재정이 본래 갖는 경기 대응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과 단기적인 경기 대응은 구분해야 하는데, 이것을 혼재해서 적용하느라 재정의 경기 안정 기능을 제약하고 있다.지금 상황에서는 경제학 교과서대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 기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중장기적으로야 재정지출 구조를 개혁하고, 재원 조달 방식을 고민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기가 아니다. 거시 경제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반등의 기회도 잃게 된다.”
저성장이 고착하면 잠재성장률 하락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이건 우리가 적응해야 할 흐름인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가.
“우리가 원래 100m를 14초에 달리던 경제였는데, 16초로 늦춰진 건 잠재성장률 저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20초가 걸릴 정도로 기력이 바닥난 상태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건 맞지만, 올해처럼 0%대 성장률이 예상되는 상황은 단순한 구조 변화로 설명할 수 없다. 이걸 단순히 ‘실력이 이 정도’라며 수용하면, 경제는 더 활력을 잃게 된다. 무리한 부양은 피하되, 생산성과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 중심으로 거시적 힘을 뒷받침해야 한다. 아직 16초로 회복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면, 그것을 끌어내는 건 정부의 몫이다.”
좀 더 큰 틀에서 현재의 대외 경제 환경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세 가지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첫째는 미·중 패권 전쟁으로, 과거처럼 같은 시스템 내 경쟁이 아니라 구조적 충돌로 바뀌었다. 둘째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둘러싼 기술 패권 전쟁이다. 기술이 모든 걸 좌우하는 시대에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면전이 진행 중이다. 셋째는 트럼프 2기 정부와 맞물린 관세 중심의 무역 전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공급망 재편으로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 세 전쟁은 모두 한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우리가 누려온 질서상의 이점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현재의 경제 체력으로 불리해진 대외 경제 환경을 견딜 수 있나.
“단기적으로 세 가지 악재가 겹쳐 있는 상태다. 4분기 연속 제로 성장 수준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민생 경제 기반이 무너진 상황이라 내수도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 여기에 추가하여 근본적으로는 세 가지 구조적 위기가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무엇인가.
“첫째는 인구 위기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수요와 노동 공급이 동시에 줄고 있어 단기 대응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둘째는 양극화 심화다. 저성장 국면에서 분배 문제가 커지며 사회 통합이 약화하고, 국민의 경제적 의욕도 떨어지고 있다. 셋째는 잠재성장률 하락, 이른바 ‘피크 코리아’ 위기다. 이 세 가지 구조적 문제는 단기 침체보다 훨씬 심각한 위협이다.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회복 탄력성을 잃고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초 체력과 구조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를 이끌 리더십과 사회 통합의 동력조차 부재한 것이 더 큰 문제다.”
6월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차기 정부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첫째, 경제의 기초 체력과 구조가 무너진 위기라는 점을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힘을모아서 구심점을 찾도록 위기 대응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둘째, 재정과 통화정책 모두 경기 회복을 위한 확장 기조로 전환해 적극적인 거시 정책으로 기력을 보완해야 한다. 셋째, AI·반도체·바이오 등 전략산업에 대한 집중 지원과 함께, 경쟁력이 떨어진 부문은 구조조정을 통해 다른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노동·교육·연금 등 구조 개혁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교하게 추진해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이 심각한 사회문제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해법은.
“막혀있는 신산업을 열어주는 경제 활로 개척이 중심이 돼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 경제 시장에 도전해서 우리 경제의 활동 반경을 확대하려고 했던 담대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가 주도할 수 있는 모빌리티, 헬스케어, 데이터, AI 등의 산업을 키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기존 산업 등과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신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손해 보는 쪽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갖추는 등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살려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