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9일 열린 제1회 안동국제증류주포럼에서 참가자가 시음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2024년 11월 9일 열린 제1회 안동국제증류주포럼에서 참가자가 시음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2024년 11월 8일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안동소주’를 주제로 한 첫 국제 행사가 열렸다. 사단법인 안동소주협회와 조선비즈가 함께 주최·주관한 ‘제1회 안동 국제 증류주 포럼’ 이었다. 안동소주는 대중적으로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750년 전부터 안동 지역 양반가에서 직접 빚어 만들어 먹는 증류식 소주다. 이 때문에 안동소주는 역사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그 만드는 비법이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다.

서양 술인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안동소주도 하나의 술 카테고리로 여겨진다. 이 안동소주를 만드는 회사가 안동에만 아홉 곳이나 있다. 이날 열린 포럼에서는 안동소주의세계화는 물론, 현대화를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이승주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교수의 이야기가 관심을 모았다.

이 교수는 증류식 소주에서 나는 특유의향을 68개 단어로 정리해 공개했다. 이 교수는 “술맛과 향에 대한 과학적인 분류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곧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며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뿐 아니라, 맛과 향을 즐기려는 목적도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느낀 감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할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五感으로 술 향 찾는 관능검사

술을 과학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사람마다 제각각 느끼는 술맛과 향에 대한 일치된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감각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술맛과 향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능검사(sensory evaluation)다. 관능검사는 식품의 특성을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같은 감각을 이용해 측정하고 분석하는 검사법이다. 인간의 오감을 이용해 평가하지만, 미리 계획된 조건 아래에서 통계적인 방법을 활용한다.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사람, 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술맛과 향을 훈련된 전문가 여러 명이 함께 맛과 향을 측정해 평균적인 수치를 찾아낸다. 

관능검사의 대표적인 검사 기법은 ‘묘사 분석’이다. 보통 5~20명 정도의 전문가가 참여해 술의 특성을 정확히 묘사하는 과학적 용어를 찾는다. 술의 색이나 외형적인 특징, 향, 맛, 질감(텍스처) 등을 상세하게 묘사한 뒤에 감각의 강도를 측정한다. 묘사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제품 특성을 설명하는 용어를 찾는 단계다. 이 교수가 증류식 소주에서 나는 향을 68개 단어로 정리한 것도 이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이렇게 만든 단어 모음을 ‘향미 용어 체계’ 또는 ‘아로마 휠’ 이라고 부른다.

맥주나 와인, 위스키처럼 서양에서 많이 마시는 술은 오래 전부터 관능검사를 통해 쌓인 단어가 있다. 하지만 증류식 소주에 대한 관능검사는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어서 작업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과거 농촌진흥청에서 전통주 전체를 가지고 아로마 휠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전체로 범위를 넓히다 보니 카테고리(분류)가 애매했다”며 “증류식 소주에만 집중해서 아로마 휠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2024년 11월 9일 경북 안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진행된 제1회 안동국제증류주포럼에서 이승주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교수가 증류식 소주의 아로마 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2024년 11월 9일 경북 안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진행된 제1회 안동국제증류주포럼에서 이승주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교수가 증류식 소주의 아로마 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전문가 13명 모여 증류식 소주 20종 분석

증류식 소주에 대한 향미 용어 체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전통 증류주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사업을 수행했다. 증류주 전문가인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참여했다. 이 교수와 김 책임연구원은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한 2018년 당시 국내에 시판 중이던 증류식 소주 36종을 모았다. 이후 20종으로 분석 대상을 간추린 뒤, 소믈리에(주류 감별사)나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13명을 모아 술에서 나오는 향을 추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증류식 소주의 향을 크게 곡물, 채소, 허브, 과일, 꽃, 미생물, 나무, 향신료, 견과류, 단내, 유제품 향, 화학 향으로 나눴다. 여기서 다시 더 자세하게 향의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를 찾았다. 예컨대 곡물 향은 생쌀, 쌀겨, 보리, 밀 같은 세부 항목을 뒀다. 과일 향의 경우에는 레몬, 베리류(딸기 등), 사과, 바나나, 건포도 등으로 자세하게 나눴다. 이런 식으로 찾아낸 증류식 소주의 향을 표현하는 단어는 모두 68개였다. 

이 교수는 “묘사 분석을 통해 향기와 맛을살폈고,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검사를 통해 향기 성분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병행했다”며 “특정 향기가 나는 술에 어떤 향기 물질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분류하면 술을 만들거나 분석할 때 이런 물질을 품질 지표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는 액체 혼합물을 끓는점 이상으로 가열한 다음 기체 상태의 혼합물을 분리해 각각의 양을 측정하는 검사법이다.

술의 고부가가치화, 세계화에 도움

술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것이지, 객관적으로 맛과 향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술맛과 향을 평가하는 이런 관능검사는 술꾼이 술을 더 맛있게 먹고, 더 다양한 술을 마실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해외 소비자 및 업계 관계자에게 우리 술맛과 향을 제대로 된 사실을 통해 전달하려면 객관적인 단어가 있어야 한다. 이 교수는 “향미 용어 체계를 만들면 소비자가 술을 고를 때 자기 취향에 맞는 술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런 연구가 그저 연구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실제 술을 만드는 업계나 산업, 술을 즐기는 소비자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향미 용어 체계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도 도움을 준다. 술의 증류 방식과 숙성 방식에 따라 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압(보통 대기압과 같은 압력을 말함. 약 1기압)에서 80~95도의 높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상압식 증류법과 압력을 낮추고 40~50도의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감압식 증류법은 술맛과 향, 질감이 모두 다르다. 여기에 옹기, 스테인리스스틸, 오크통 등 숙성 용기에 따라서도 술 향이 달라진다. 이 교수는 “(관능검사를 통해) 제조 방법이나 재료에 따라서 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보여줘 우리 술의 다양성을 높였다”며 “안동 지역 술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