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4월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하원은 트럼프 정부의 감세 청사진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향후 10년간 최대 5조3000억달러(약 7600조원) 감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한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트럼프는 하원 가결 직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정책 중 하나를 위한 무대가 마련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노벨 경제상 수상자인 필자는 최근 트럼프의 행보가 특정 계층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그중 하나가 이번에 트럼프가 추진하는 감세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①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집행을 막고 암호화폐 규제 완화로 탈세까지 부추기면서 미국이 불법 자금과 탈세 자금이 몰려드는 안전한 은신처, 즉 ‘조세 피난처’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특히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으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 우려까지 커지는 지금, 미국 경제 전반에 총체적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봤다. 문제는 미국이 국제 협력을 외면하는 신고립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전 세계가 다자 협력을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만 혼자 따로 움직이는 ‘G1 체제’로 향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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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조세 피난처로 빠르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는 몇 가지 사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재무부는 기업 실소유자의 신원을 공유하는 투명성 체제에서 탈퇴를 명령했고, 유엔(UN) 국제 조세 협력 프레임워크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도 철수했다. FCPA 집행도 거부하고 있으며, 암호화폐에 대한 대규모 규제 완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250년에 걸쳐 구축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약화하려는 더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조약을 위반하고, 이해 충돌을 무시했으며,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해체하고, 의회가 승인한 자금마저 가로챘다. 이 정부는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짓밟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좋아하는 세금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수입관세다. 그는 외국인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고 믿는 듯하다. 또 이를 통해 억만장자의 세금을 감면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 그는 관세가 무역 적자를 없애고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릴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관세는 수입업자가 부담하게 돼 국내 물가를 끌어올리고, 미국이 마침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지금 시점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것은 최악의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더욱이 초급 수준의 거시경제학만 보더라도 다자간 무역 적자는 국내 저축과 국내 투자 간 격차를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의 억만장자 대상 감세는 이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다. 왜냐하면 재정 적자는 국내 총저축을 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억만장자와 대기업을 위한 감세 정책은 오히려 무역 적자를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보수주의자는 감세 정책이 경제성장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세수가 증가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레이건 때도 그렇지 않았고, 트럼프 1기 정부(2017~2020년) 때도 그렇지 않았다. 실증 연구는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이 경제성장이나 실업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소득 불평등은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기업 감세 정책인 2017년 ‘세금 감면 및 일자리 법(Tax Cuts and Jobs Act)’의 연장안은 향후 30년간 미국 국가 부채를 약 37조달러(약 5경2500조원)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약속했던 경제 부흥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시 경제 수준에서도 무역 적자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제 서비스 경제국이다. 미국의 주요 수출 품목은 관광, 교육, 의료 서비스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모든 분야를 체계적으로 약화했다. 미국에 오면 자의적으로 구금돼 몇 주 동안 억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어느 관광객, 유학생, 환자가 미국에 오고 싶어 하겠는가. 미국 최고의 교육기관을 약화시키고, 학생 비자를 자의적으로 취소하고, 과학 연구에 대한 자금을 삭감함으로써 이 중요한 부문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MIT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자유의 길’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MIT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자유의 길’ 저자

트럼프의 전략적으로 잘못된 접근은 이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이며, 미국은 핵심 수입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보복 조치에 나섰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주식과 채권시장을 강타했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 덕분에, 세수는 올해 10% 이상 급감할 수 있다. 세무 집행과 납세 순응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국세청(IRS) 직원 약 5만 명이 감축되면 향후 10년간 징수되지 못하는 세금이 약 2조4000억달러(약 3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IRS 인력을 증원하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조항이 예상했던 6370억달러(약 904조원) 세수 증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다. 의제는 명확하다. 부유층에 대한 단순 세율 인하뿐만 아니라 세무 집행 자체를 약화하겠다는 것이다.

자본과 부자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에서, 정부가 다국적기업과 초부유층에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려면 국제 협력이 필수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 거래를 돕는 암호화폐 시장을 방치하며, 새 국제 세금 협약 논의를 포기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모두 탈세와 돈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 규칙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이 외국 뇌물 방지법 집행까지 중단한 것은 이제 부정부패마저 눈감겠다는 신호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트럼프, 머스크 그리고 그 주변 억만장자가 ‘규제가 거의 없는 조세 피난처처럼’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단순히 세금을 덜 내려는 것이 아니다. 부와 권력을 지키는 데 방해되는모든 법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암호화폐에 대한 이들의 열광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규제 없는 암호화폐 거래소, 온라인 카지노, 베팅 사이트가 급증하며 전 세계 불법 자금 흐름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재무부를 통해 거래를 숨기는 플랫폼에 대한 제재를 풀었고, 암호화폐를 비축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으며, 백악관 최초의 암호화폐 정상회의를 열었다. 미국 상원도 암호화폐 이용자 정보를 보고하게 하는 법안을 폐기했다.

② 트럼프는 인터넷 유행을 따라 만든 ‘밈코인’을 직접 발행했다. 또 땅과 건물을 사고파는 유명 보드게임인 모노폴리를 본뜬 암호화폐 기반 게임을 출시할 계획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 ③ 암호화폐 업계와 가까운 인물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이 인물은 은행 밖에서 운용되는 금융 시스템과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단체 소속이다.

암호화폐의 본질은 하나다. 바로 ‘돈의 흐름을 숨기기’다. 이미 달러, 엔, 유로 같은 좋은 통화와 편리한 결제 시스템이 있는데도 암호화폐를 찾는 것은 돈을 감추려는 욕구 때문이다. 돈세탁이나 탈세 같은 불법 행위에 연루된 이들은 자신의 거래가 들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세계는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다국적기업 이익에 대해 15% 최저세를 부과하는 글로벌 합의처럼, 국제 협력은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지난해 브라질이 주도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는 초부유층에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미국은 국제 합의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오히려 그 부재가 더 강력한 글로벌 세제 협상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과거 미국은 협상을 약화하고 결국 서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국적기업 과세를 논의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협상 때도 그랬다. 이제는 미국 없이 나머지 나라가 공정하고 효율적인 세금 체계를 새로 설계할 수 있게 됐다.

국제 협력과 포용적 제도를 통해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이 권위주의 확산을 막는 진짜 대안이다. 미국이 고립을 자초하는 지금, 세계는 진정한 다자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세울 기회를 맞고 있다. 21세기형 G1 체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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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에서 뇌물을 제공하는행위를 금지하는 법. 공정한 글로벌 시장경제 질서 유지를 위해 1977년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업 활동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고 보고,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FCPA 집행을 사실상 중단시킨 상태다.

트럼프는 1월 17일, 자신의 이름을 딴 암호화폐인 ‘$TRUMP’ 밈코인을 공식적으로 발행했다. 이 코인은트럼프의 지지자와 투자자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았으며, 출시 직후 가격이 급등했다가 폭락하는 등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SEC 위원장으로 암호화폐 산업에 친화적인 폴 앳킨스를 임명했다. 그는 미 상원 표결을 통과한 뒤 4월 22일 취임식에서 “암호화폐 규제가 혁신을 억누르고 있다”며 관련 규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정리=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박서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