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하우스의  새로운 앰버서더로 발탁된 켄드릭 라마. /사진 샤넬
샤넬 하우스의 새로운 앰버서더로 발탁된 켄드릭 라마. /사진 샤넬

최근 공개된 켄드릭 라마의 샤넬 광고 캠페인이 패션계를 압도했다. 마거릿 퀄리, 고마츠 나나, 루피타 뇽오와 함께한 샤넬 아이웨어(선글라스 등) 광고 캠페인에서, 켄드릭 라마는 샤넬의 새로운 비전을 발표하는 주인공이었다. 절제된 포즈와 강렬한 눈빛, 세심하게 선택된 의상과 소품은 ‘샤넬이 선택한 현재’와 ‘켄드릭 라마가 펼칠 미래’를 동시에 보여줬다. 샤넬의 새로운 앰버서더로 발탁되며, 켄드릭 라마는 이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더욱 높이 올려졌다.

켄드릭 라마는 힙합 역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래퍼다. 2017년 발매한 앨범 ‘DAMN’으로 201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위원회는 그의 앨범 ‘DAMN’이 ‘현대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삶의 복합성을 포착하는 명작’이라고 평했다. 또한 ‘더 뉴요커(The Now Yorker)’는 스토리텔링의 거장이란 찬사를 보냈다. 그래서 켄드릭 라마는 대중음악 아티스트 역사상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과 비교되기도 한다. 또한 밥 딜런과 비교될 만한 재능은 작곡과 작사뿐 아니라 패션과 스타일 감각 그리고 패션을 통한 문화적 영향력으로까지 확장된다.

힙합계의 시인이자, 패션계의 사상가로 불리는 켄드릭 라마의 뿌리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다. 1980~90년대, 캘리포니아주 태양 아래 태어난 이 장르는 느긋한 리듬과 펑크 기반 사운드, 스트리트 문화를 반영한 가사가 특징이다. 

켄드릭 라마는 이 유산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스타일 또한 이와 닮아 있다. 스트리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되, 늘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는다. 심플한 흰 티셔츠, 베이직한 데님, 퀄리티 높은 후디와 재킷, 때로는 전통적인 아프로 아메리칸 커뮤니티 미학을 차용해 데님 셔츠나 체크 셔츠를 오버사이즈로 풀어내며, 고전과 현대의 스타일 언어를 자유롭게 오간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그의 힙합 스타일은 화려한 주얼리와 로고 플레이를 과시하는 기존 힙합 패션 신과 다르다. 힙합계가 유행시킨 ‘플렉스(flex)’ 문화가 아닌, 절제된 품격으로 그의 팬을 주목시켰다. 그의 가사가 삶을 이야기하듯, 그의 패션은 자기 철학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패션 전문가는 ‘보여주기 위한 스타일 대신, 자신의 서사를 입는다’고 평가한다.

켄드릭 라마는 조용한 스타일의 혁신가라고 말할 수 있다. ‘HUMBLE.(겸손)’이라는 히트곡 제목처럼 자기를 과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감은 파워풀하다. 특히 레드 카펫 룩에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정제된 슈트, 톤 다운된 컬러, 미니멀한 스타일링에 재단의 정교함과 소재 품질로 스타일을 드러낸다. 여기에 슬쩍 끼워 넣은 빈티지 피스 하나, 오랜 시간 빛바랜 듯한 데님, 손때 묻은 가죽 재킷 같은 요소가 그의 스타일에 남다른 느낌표를 더해준다. 그래서 켄드릭 라마는 힙합 스타일을 고급스럽고도 세련된 방식으로 끌어올린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켄드릭 라마의 시그니처 룩은 오버사이즈 실루엣, 미니멀한 컬러 팔레트, 고급 소재를 활용한 레이어링이다. 또한,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인 스타일링 역시 켄드릭 라마 스타일로 명명되고 있다. 종종 보여주는스카프나 주얼리 같은 액세서리 선택은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무너뜨린다. 제59회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입은 플레어 진(Flare Jeans)이 대표적인 예다. 셀린느의 매끈한 플레어 진을 입고 중독성 강한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스텝과 함께 그래미상 5관왕을 차지한 ‘Not Like Us’를 불렀는데, 공연과 동시에 ‘켄드릭 라마 플레어 진’이 전 세계 패션 알고리즘을 점령했다. 힙합 팬츠는 벗겨질 듯 헐렁한 엑스트라 와이드 핏이라는 이전의 공식을 깨뜨리며, 새로운 힙한 팬츠의 시대를 선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역사적인 공연 장면은 2025년 최고 힙합 패션 신의 하나로 기록됐다.

1 고인이 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 슈트를 입고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했다. /사진 NFL 인스타그램 2 2025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셀린느의 플레어 진을 입었다. /사진 NFL 인스타그램 3 샤넬과 협업한 켄드릭 라마. /사진 말릭 보디안 인스타그램
1 고인이 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 슈트를 입고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했다. /사진 NFL 인스타그램
2 2025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셀린느의 플레어 진을 입었다. /사진 NFL 인스타그램
3 샤넬과 협업한 켄드릭 라마. /사진 말릭 보디안 인스타그램

켄드릭 라마의 영향력은 수많은 품절 사태로도 증명돼 왔다. 협찬 없이 직접 선택한 무대 위 신발과 재킷은 언제나 리셀 시장을 들썩이게 한다. 2018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입었던 깔끔한 베이지색 워크웨어 재킷은 일주일 만에 유명 리셀 사이트에서 모두 품절됐다. ‘Not Like Us’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윌리 차바리아(Willy Chavarria) 트랙 슈트도 순식간에 품절시켰다. 젠지(Z 세대, 1997~ 2010년생)는 켄드릭 라마처럼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조용하지만 파워풀하게 창조해 가고 싶어 한다.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래퍼, 기존 힙합 패션 공식을 깨뜨려온 룰 브레이커, 절제된 럭셔리를 힙합 세계에 초대한 개척자! 샤넬이 켄드릭 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그는 단순한 인기 뮤지션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샤넬과 켄드릭 라마가 공유하는 가장 강력한 연결 고리는 진정성이다. 무대 위에서든, 레드카펫이든, 켄드릭 라마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입은 옷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한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샤넬 역시, 시대를 초월하는 품격과 동시에 매 순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태도를 지닌 하우스다.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패션이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임을 증명해 낸다.

켄드릭 라마의 패션 철학은 스타일 아이콘이 가져야 할 태도를 정의해준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그 이면에 흐르는 신념과 내러티브가 중요함을 스스로 증명해 가고 있다. 이런 철학과 실천이 켄드릭 라마를 단순한 스타일 아이콘을 넘어, 패션을 매개체로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적 인물로 만들었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