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표지. /사진 김진영
‘먼지’ 표지. /사진 김진영

카메라는 다양한 광학 장비, 특히 고성능 렌즈와 결합하면서 단순한 기록의 도구를 넘어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작동하는 시각 확장 장치가 됐다. 이로써 우리는 맨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눈앞에 불러올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대상에 극도로 밀착하거나 혹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대상을 들여다보는 힘이 있어, 거대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까지도 세밀하게 드러낸다.

사진은 렌즈의 힘을 통해 ‘클로즈업’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가까이 다가간 것이든, 멀리 떨어진 것이든, 사진에서 대상은 압도적으로 확대되거나 압축된다. 이 과정에서 보는 이는 자연스러운 거리감을 상실하고, 과장된 디테일과 변형된 스케일 앞에서 감각 균형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클로즈업은 인간 시야를 넘어서 또 다른 차원의 스케일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낯선 감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오스트리아 사진가 클라우스 피클러(Klaus Pichler)가 클로즈업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한 대상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흔한 대상인 먼지였다. 그는 새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빈 7구에 있는 자신의 옛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거실에는 빨간색 먼지가 굴러다녔고 침실에는 하늘색 먼지 뭉치가 보였다. 이때 피클러는 먼지가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항상 회색 톤을 띠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더 다양한 종류의 먼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사 중 발견한 이러한 사실을 계기로 먼지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수년간의 사진적 연구가 시작됐다. 

‘먼지(Dust)’는 피클러가 빈 곳곳의 아파트, 카페, 식당, 애완동물 가게, 공장, 미술관, 박물관, 호텔, 수술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꼼꼼히 수집한 먼지, 보풀, 오물 뭉치를 세밀하게 찍은 사진을 모은 책이다. 책은 확대된 먼지의 세부 사항을 잘 보여주기 위해 큰 판형으로 제작됐다. 또한 먼지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펠트 보드로 만들어진 표지를 통해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피클러는 다양한 장소에서 먼지 샘플을 수집했다. 그는 수집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아무 약속 없이 여러 장소를 찾아가서 다음의 질문을 하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여기서 먼지를 좀 수집해도 될까요?” 

사람들을 대체로 너무나 당황해했고, 나는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에서 먼지 뭉치를 모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이는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있어하기도했고 당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는 각 장소에서 핀셋으로 먼지를 조심스럽게 수집했다. 한 장소에서 모은 먼지를 하나의 페트리접시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각 접시에 번호를 붙이고 목록화해 자신만의 먼지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작은 먼지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너무나 작은 먼지를 세부까지 면밀히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좋은 렌즈가 필요했다. 그는 고가의 장비인 하셀블라드 카메라와 120㎜ 매크로 렌즈를 하루 빌리기로 했다. 24시간 동안 그는 쉴 틈 없이 135개의 먼지 샘플을 촬영했다. 이때 그는 접시에 담긴 먼지에 수정을 가하지 않고 촬영했다. 사람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더라도, 먼지 자체가 지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사진가 클라우스 피클러(Klaus Pichler)가 클로즈업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한 대상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흔한 먼지였다. 그는 빈 곳곳의 아파트, 카페, 식당, 애완동물 가게, 공장, 미술관, 박물관, 호텔, 수술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꼼꼼히 수집한 먼지, 보풀, 오물 뭉치를 세밀하게 찍은 사진을 책 ‘먼지(Dust)’에 담았다. /사진 김진영
오스트리아 사진가 클라우스 피클러(Klaus Pichler)가 클로즈업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한 대상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흔한 먼지였다. 그는 빈 곳곳의 아파트, 카페, 식당, 애완동물 가게, 공장, 미술관, 박물관, 호텔, 수술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꼼꼼히 수집한 먼지, 보풀, 오물 뭉치를 세밀하게 찍은 사진을 책 ‘먼지(Dust)’에 담았다. /사진 김진영

이렇게 촬영된 사진을 통해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는, 심지어 경멸하고 싫어하는 먼지의 세계를 탐구한다. 우선 수집된 먼지는 장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수집한 먼지에는 각 팀의 색상이 반영돼 있고, 영화관 먼지에는 팝콘 조각이 섞여 있으며, 애완동물 가게에서 찾은 먼지에는 작은 털이 잔뜩 섞여 있고, 양복점에서 모은 먼지에는 실이 잔뜩 있다. 

혐오와 무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먼지에 예기치 않은 새로운 미학적 가치가 부여된 사진을 통해, 독자는 먼지의 형태와 외형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된 이 작은 덩어리들은 그 자체로 색과 질감, 구조와 구성의 조화로운 풍경이 된다. 붉고 노란 플라스틱 조각, 보랏빛 실타래, 꽃잎 흔적, 팝콘 부스러기까지, 다양한 재료가 하나로 뒤엉키며 구상과 추상이 결합한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렌즈를 통해 극도로 확대된 이 먼지는 이제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특정 장소와 인간의 활동이 응축된 하나의 조형물이 된다. 이 사진들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대상이 뜻밖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로 재발견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사진들은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먼지라는 일상적 요소에 사실은 얼마나 개별적이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드러낸다. 수집과 기록, 촬영이라는 행위를 통해 먼지는 장소와 시간, 인간의 흔적이 교차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전환된다. 가장 하찮아 보이는 사물도 시선이 닿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