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섭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 - 연세대 정치외교학, 전 주호주대사관 공사 참사관, 전 주인도네시아대사관 공사, 전 주일본대사관 공사, 전 주후쿠오카 총영사 /사진 TSC
이희섭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 - 연세대 정치외교학, 전 주호주대사관 공사 참사관, 전 주인도네시아대사관 공사, 전 주일본대사관 공사, 전 주후쿠오카 총영사 /사진 TSC

“한일 양국은 한·중·일, 한·미·일 협력 양쪽 모두의 필수 구성원이다. 양국은 보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 가까운 이웃이자 소중한 협력 파트너로서 국제 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 두 나라 관계가 양국에 국한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동북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종종 함께 묶이는 한국·중국·일본 3국은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경제 규모는 24%, 상품 무역 총액은 19%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전 세계를 향대로 ‘관세전쟁’에 돌입하면서 한·중·일 3국 간 경제협력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경제협력이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가 이희섭 한·일·중 3국 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의 답변이다. 

TCS는 한·중·일 3국 정부가 서명·비준한 협정에 따라 2011년 설립한 국제기구로, 3국의 평화·번영·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한다. 사무국은 서울에 있으며, 사무총장은 한· 중·일 3국의 대사급 인사가 번갈아 맡는다. 사무총장단은 사무총장 1명과 사무차장 2명 총 3명으로 구성된다. 이 사무총장을 4월 24일 서울 중구에 있는 TCS 사무국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중·일 협력과 한·미·일 공조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한·미·일 협력은 역내 평화에 긴요한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담보하는 안보 공동체라 할 수 있고, 한·중·일 협력은 동북아시아라는 한 공간에서 서로 이웃하며 함께 숨 쉬고 생활하면서 경제를 영위하는 생활 경제 공동체에 가깝다. 

따라서 양쪽 모두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양쪽은 각기 추구하는 바와 그로부터 얻는 국익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어느 하나가 다른 협력을 대체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 관련 이해 당사국은 상호 존중, 호혜, 공동 이익을 토대로 한·미·일과 한·중·일 협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연계해 나름의 전략적 이익에 기반해 병행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 갈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인식을 국민과 공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한일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쓸 것 같은데.

“한일 양국은 한·중·일, 한·미·일 협력 양쪽 모두의 필수 구성원이다. 양국은 보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 가까운 이웃이자 소중한 협력 파트너로서 국제 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하며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 두 나라 관계가 양국에 국한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한일 우호 협력은 지역 측면에서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플러스 3(한·중·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아시아·태평양(아·태) 경제협력체(APEC),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전 세계적으로는 유엔(UN)과 주요 20개국(G20) 등 각종 다자간 협력 메커니즘과 국제기구에 기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건 한일 우호 협력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RCEP는 한국을 비롯해 아세안 10개국과 일본·중국·호주·뉴질랜드 등 아·태 지역 15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로, 2022년에 발효했다.

트럼프 1기(2017~2020년) 정부 시절 아베 전 총리는 미국 쪽에 확실하게 밀착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일본은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으로 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과는 대립· 경쟁하면서도 경제·인적 교류 등을 중심으로 우호 협력 관계를 추구해 왔다. 미국의 대외 정책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같은 외교 기조는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은 우리도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경제적인 실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익에 기반한 실용 외교로 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중국은 시장에, 일본은 첨단 기술에 특장점이 있었는데 이제 중국 기술력이 몰라보게 성장하고, 우리 경쟁력도 일본을 따라잡으면서 포지션 구분이 애매해졌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중·일 3국은 서로 긴밀하게 얽힌 가치 사슬과 수직분업에 의한 상호 보완, 의존 관계를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공동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으로 3국 간 경쟁 분야가 늘어나면서 상호 대립과 마찰이 빈번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수직분업을 통해 네트워크형 협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3국의 역량과 특장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산업 표준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협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

“예를 들어 중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그린 수소를 생산할 수 있고, 일본은 저장·운송 기술에, 한국은 인프라·소비 시장에 장점이 있다. 3국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출자해 해외 공동 투자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는 경쟁하더라도, 생태계를 구축하고 키우는 건 함께 힘을 합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경쟁하고 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협력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밖에 세 나라가 상호 시너지를 키울 수 있는 방향에서 경제·산업 협력이 가능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을까.

“동북아 슈퍼 그리드(전력망), 항만·물류 네트워크 통합, 문화 콘텐츠·헬스케어 융합, K팝·애니메이션·드라마 공동 제작 등 분야에서 협력이 유망할 것으로 본다. 중국의 시장·제조, 일본의 소재·정밀 기술, 한국의 중간 기술·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해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축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중간에 있다. 3국 협력이 긴밀해지면 한국은 그런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과거부터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자·불교·유교 등의 교류 통로로 서로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고, 그로 인해 3국이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동아시아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은 때로는 중·일 간 대립과 경쟁을 완충하는 조정자로서, 때로는 3국 발전의 촉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TCS 본부가 베이징이나 도쿄가 아닌 서울에 있는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중·일 FTA의 필요성과 성사 가능성에 대해 의견 부탁한다.

“한·중·일 FTA를 통해 3국의 경제적 이익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관세전쟁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무역 축소로 인한 타격을 완화하고 무역 확장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국 경제가 긴밀히 엮여 있는 만큼 공급망 안정과 생산성 향상, 표준화를 통한 글로벌 기술 주도권 확보, RCEP 역내 개방 확대와 동아시아 및 아·태 지역의 자유무역 확대 주도 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한·중·일 3국 FTA 공식 협상은 2012년 11월부터 16차례 열렸으나 나라별 이해관계가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19년부터는 협상이 끊겼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 악화도 협상 중단에 영향을 미쳤다. 2024년 5월 3국 정상회의에서 협상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후속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한·중·일 3국 경제·통상 장관(안덕근 산업부 장관,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3월 3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3차 한·중·일 경제·통상 장관회의’ 에서 한·중·일 FTA 협상 재개 의지를 확인했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