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 - 서울대 전자공학 학·석사, 텍사스대 전자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및  시스템LSI 부사장, 전 IBM CPU 디자인 엔지니어 / 사진 보스반도체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 - 서울대 전자공학 학·석사, 텍사스대 전자공학 박사, 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및 시스템LSI 부사장, 전 IBM CPU 디자인 엔지니어 / 사진 보스반도체

보스반도체는 최근 부상한 퓨리오사AI, 딥엑스, 모빌린트 등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 시장을 공략하는 AI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중 하나다. 차이점이 있다면, 30·40대 엔지니어가 창업한 다른 팹리스와는 달리 보스반도체는 IBM을 거쳐 삼성전자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까지 지낸 박재홍 대표를 비롯해 15~20년 이상의 베테랑 엔지니어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회사라는 것이다.

특히 박 대표는 23년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에 재직하며 설계 분야 정예 인력으로 활약했다. 초기 아이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테슬라 자율주행용 칩을 맞춤 개발한 바 있다. 또 아우디 같은 글로벌 기업과 협업 경험도 풍부하다. 보스반도체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현대차도 두 차례나 투자했다.

‘반도체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 텐스토렌트 최고경영자(CEO)와 신뢰 관계·파트너십도 보스반도체의 저력을 보여준다. 최근 경기도 성남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테슬라, 인텔 등에서 칩 설계를 이끌던 켈러 CEO와 다양한 협업 경험을 통해 쌓은 신뢰 관계가 있다”며 “보스반도체는 초기부터 텐스토렌트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차량용 AI 가속기에 텐스토렌트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창업 3년 차를 맞는 보스반도체는 이미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 주력 제품인 차량용 AI 가속기 ‘N1’은 개발을 마쳐, 연내 삼성 파운드리 5㎚(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샘플을 확보한 다음 내년 하반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자율주행보조 칩 등 자동차용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퀄컴의 독보적인 입지에 맞서고 있는 인텔과 공동 기술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보스반도체와 인텔 칩을 함께 탑재할 방침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전자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창업을 결심했는데.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환경에 비해 발달하지 못했다. 세계 2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회사가 있고, 팹리스의 고객사가 될 수 있는 삼성, LG 등 다수의 전자·정보통신(IT) 기업이 있지만 ‘제대로 된’ 팹리스는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에서 쌓아왔던 설계자 역량을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팹리스 기업을 세우고 싶었다.

최근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도 팹리스 산업이 굉장히 발달했다. 인재도 많고, 정부 투자와 유인책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팹리스 산업은 결국 시스템 산업의 핵심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팹리스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으면 시스템 산업도 (타국에) 종속된다.”

제대로 된 팹리스를 만드는 데 중요한 건 무엇인가.

“인재와 노하우, 투자금 등이 모두 중요하다. 팹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지만, 일단은 고객사가 먼저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써줄 고객이 있고, 고객과 우리가 제품을 만들었을 때 시장의 피드백을 받아보는 사이클이 세 번 정도는 돌아야 제대로 시장에 자리 잡는다. 초기 단계에서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있을 수 있지만, 국산 제품을 써줄 고객사와 이를 위한 유인책이 중요하다.

정부도 그동안 팹리스 산업이 잘 안됐기 때문에, 육성하기 위해 투자해 왔다. 중요한 건 기업이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 국산보다는 퀄컴 같은 이미 입증된기업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게 악순환이다. 누군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 단계에서 정부가 투자를 해주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보스반도체가 AI 설계 전문 기업 텐스토렌트(Tens-torrent)와 함께 개발한 자동차 AI 가속기 칩렛 SoC, ‘Eagle-N’. / 사진 보스반도체
보스반도체가 AI 설계 전문 기업 텐스토렌트(Tens-torrent)와 함께 개발한 자동차 AI 가속기 칩렛 SoC, ‘Eagle-N’. / 사진 보스반도체

글로벌 IT 회사가 대형 팹리스를 선호하는 이유에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 플랫폼 자체를 제공하는 편의성이 작용한다.

“지금 전략은 브로드컴처럼 사업을 이원화하는 것이다. 브로드컴은 팹리스이면서 동시에 맞춤형 반도체(ASIC)를 설계해 제공한다. 우리 제품만으로 당장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매출을 내는 데 5년 이상 걸릴 것이다.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선 맞춤형 반도체 사업으로 매출을 만들고, 회사 역량을 성장시키면서 자체 자동차용 반도체 제품을 내놓는 식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첫 제품을 차량용 반도체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창업 당시 현대차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영향도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반도체 물량 부족으로 차량을 조립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지만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수요가 컸다. 그에 반해 모바일은 수요가 크지 않았다. 결국 시장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따라서 차량용 반도체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차량용 반도체만 만드는 팹리스는 아니다. 퀄컴이나 미디어텍처럼 모바일을 비롯해 자동차,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기반을 만들고 싶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반도체 사업을 해봤던 사람이 어떤 좋은 아이디어로 AI 반도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다소 떨어지기도 한다. 반도체 사업은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니라, 제조와 양산· 판매로 이어져야 하므로 아이디어만으론 쉽지 않다. 상품성을 비롯해 품질 문제가 많이 생긴다. 미연에 방지하려면 산업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

작은 반도체 기업은 품질 문제가 생기고 리콜이 나오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품질 문제와 관련해 철저히 관리하면서 상품성을 가져야 하고 코스트(cost·비용)를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고객 수요에 딱 맞는 상품 기획도 잘돼야 한다. 우리는 반도체 산업 사이클을 경험해 봤던 사람이 주축이 돼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신뢰가 있다. 특히 하이엔드 반도체 분야에서 노하우 있는 인력으로 구성된 국내 팹리스는 보스반도체가 유일하다.”

ADAS, 인포테인먼트 등 차량용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퀄컴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

“주요 자동차 기업은 퀄컴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한다. 퀄컴의 주요 고객사도 전 세계 자동차 업계 전부가 아니라 소수의 대형 기업이다. 모바일 AP 시장에서 삼성전자나 다른 스마트폰 기업이 높은 가격 부담을 지면서 퀄컴을 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업체 역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보스반도체가 유럽 등 주요 자동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와 협업하는 것도 이미 퀄컴에 대한 종속을 피하려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올해 보스반도체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올해는 보스반도체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해다. 첫 번째 칩 샘플이 나왔고, 이걸 토대로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성공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자동차 회사가 보스반도체 제품으로 데모도 하고, 테스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첫 제품에서 수정된 사항을 반영한 두 번째 칩 샘플이 삼성 파운드리에서 테이프아웃(시제품 양산)될 예정이다. 올해 자체 칩 이외에 맞춤형 반도체 사업 수주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회사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단계가 될 것으로 본다.” 

황민규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