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3일 부산에서 크루즈 페리인 팬스타 미라클호(이하 미라클호)가 신조(新造) 인수돼 ‘처녀항해(maiden voyage)’를 한다고 했다. 나는 꼭 처녀항해에 같이하고 싶었다. 오랜 지인인 선주를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선장 면허를 가진 선장이므로 혹시 위급 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처녀항해는 사람의 관심도 많이 받지만, 모든 장비와 선박이 새것이고, 이를 운항하는 사람이 아직 익숙지 않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동반된다.
선박은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진수된 뒤 첫 출항을 하게 된다. 이것을 처녀항해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어머니 배 속에서 오랜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선박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선소에서 모양을 갖춰 나간다. 우선, 선주는 조선소에 자신이 원하는 선박 제작을 주문한다. 설계에 따라 제작에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용골(龍骨·배의 중심 뼈대)을 설치한다. 여기에 철판을 잘라 붙여 연결한다. 최근에는 블록을 제작한 뒤, 이것을 용접해 붙여 모양을 완성한다. 2년에 걸쳐 모양이 갖춰진 선박은 제대로 건조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다에서 시운전한다. 시운전을 마친 뒤엔 부두(안벽)에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업이 마무리된다. 진수식을 마친 뒤에야 선주는 선박을 조선소로부터 넘겨받는다. 2년간 긴 공정을 거쳐 옥동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지막 홋줄을 벗긴 미라클호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항했다. 부두에는 안전한 처녀항해를 기원하는 사람이 도열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에 있던 우리도 감사의 뜻으로 인사했다. 일본 오사카를 거쳐 부산항에 귀항하기까지 미라클호에서 2박 3일은 맛있는 식사, 화려한 공연, 안락한 승선감, 안전 항해, 지인들과 유쾌한 대화 등으로 실로 만족스러웠다. 항해도 계획대로 잘 이뤄졌다. 위급 시에 돕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은 항해였다.

미라클호의 처녀항해에 동승하며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1984년 7월 16일 당시 이등 항해사로 진급했던 나는 일행 20명과 함께 일본 오카야마현의 다마노(玉野) 미쯔이조선소로 향했다. 우리 회사인 산코라인이 발주한 120척 중 한 척인 ‘산코 안타레스(Sanko Antares)’라는 선박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소에서 장착한 각종 항해 장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숙지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선주가 주문한 대로 사양에 맞게 건조됐는지도 확인했다. 1개월의 신조 인수 기간을 거쳐 우리는 선박을 완전히 인수하게 됐다. 기관실 배치, 항해 장비 작동, 선박의 각종 설치 장소 확인 등 많은 공부를 했다.
처녀항해에 나선 배는 호주에 무사히 입항했고 남서부 번버리라는 도시에서 알루미늄 가루를 싣고 미국 서부 포틀랜드로 항해했다. 적도를 지나면서 돼지머리를 두고 ‘적도제(赤道祭)’를 지내는 경험도 했다.
이 배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자동 조타장치가 고장 났던 순간이다. 항해할 때는 침로(선박 이동 방향)를 잘 잡아야 한다. 사람이 조타 장치를 24시간 붙들고 있을 수는 없기에, 자동 조타 장치를 설정해 두면 손을 대지 않아도 항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장치가 고장 났다. 매뉴얼을 참고해 여러 방법으로 고쳐보려 했지만 끝내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항구에 도착한 뒤 기술자가 와서 부품을 교체하고 나서야 수리가 완료됐다. 그동안 수동 조타를 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처녀항해를 나서는 미라클호를 위해서 부두에서 이뤄진 환송식이 특히 인상 깊다. 선박이 인도되기 직전의 신조 인수 시간과 이어지는 처녀항해는 앞으로 25년을 살아갈 선박의 탄생을 알리는 동시에 그 여정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선주에게는 재산이 늘어나는 일이자, 영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를 축하하고 2년 동안 선박을 성실히 건조해 준 조선소에 감사를 전하며, 인도되는 선박의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처녀항해 출항식이 이뤄진다. 안전 항해를 바라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지인들의 고마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선박 사회, 선원 사회, 해운업을 아름답게 해주는 관행이다. 1984년 일본 다마노 미쯔이조선소의 도크를 떠날 때, 손을 흔들어주던 일본 조선소 사람의 모습이 겹쳤다. 이러한 아름다운 미풍이 계속됨을 확인한 나는 흐뭇했다. 선박 탄생 전후에 있는 신조선 인수와 처녀항해를 두 번이나 경험한 나는 큰 행운을 잡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