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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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점점 더 명확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자리 잡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산업과 정책의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금융’이다. 금융은 단순한 자금의 흐름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와 재편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특히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범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산업구조와 에너지 체계가 영향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이 ‘녹색 금융(Green Finance)’과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이다.

녹색 금융의 한계와 전환 금융의 필요성

녹색 금융은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전기차, 탄소 포집 기술 등 친환경 경제활동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으로, 투자처가 비교적 명확하다. 우리나라도 K택소노미를 도입하여 이러한 활동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하고 있으며, 녹색 채권과 다양한 대출 상품을 통해 녹색 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활성화하고 있다.

하지만 녹색 산업의 육성만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는 없다. 발전, 철강, 시멘트,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등 이른바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 국가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들 산업의 구조적 전환 없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산업은 단기간에 친환경적인 경제활동으로 전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축 가능성과 기술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 중장기적인 금융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환 금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환 금융의 정의와 국제적 동향

전환 금융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나 기업이 과학 기반의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한다는 조건에서 이들이 녹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개념은 국제적으로 점차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으며, 주요 기관은 공통적으로 전환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핵심 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금융 촉진에 관한 권고안’에서는 전환 금융을 ‘기후 및 환경 성능 개선을 위한 금융’으로 규정하며, 탈탄소 기술 도입, 중간 경로상의 개선 투자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는 ‘기후 전환 금융 핸드북’을 통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부합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명확한 전략과 공시 체계를 갖추는 것을 전환 금융의 요건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 또한 ICMA의 네 가지 기준(기후 전략, 환경적 중요성, 과학 기반 경로, 이행 투명성)을 수용한 전환 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업 단위의 전환 계획이 구체적이며 실행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순한 기술 투자보다 조직 전체의 구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탄소 고착 리스크와 제도적 대응 필요성

전환 금융의 큰 위험 중 하나는 탄소 고착화(Carbon lock-in)다. 이는 기존의 고탄소 자산이 재정 지원을 통해 오히려 수명을 연장하게 되어, 탈탄소 전환을 지연시키는 현상이다. 예컨대 석탄 화력발전소 효율을 소폭 개선하는 데 자금이 쓰인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 대체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부대표 - KAIST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권동혁 BNZ파트너스 부대표 - KAIST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OECD는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전환 금융이 단일 사업 단위보다는 기업 전체의 탈탄소 전략에 기반해야 하며, 조기 폐쇄 계획, 일몰 조건, 저탄소 연료 도입 등과 연계된 투자 설계를 병행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외부 검토와 평가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게 부각된다. 각국은 전환 금융의 그린 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독립적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신력 있는 제삼자 검토가 금융시장의 신뢰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전환 금융 제도화의 과제와 방향

한국의 녹색 금융 제도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24년 12월,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의 일반적인 여신 활동에 대해서도 K택소노미 기준에 따른 녹색 여신 취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집계하겠다는 녹색 여신 관리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환 금융에 대한 정책적 기반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K택소노미는 ‘전환 부문’을 탄소 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으로 정의하고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 액화천연가스(LNG) 및 혼합 가스 기반 에너지 생산,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신규 및 계속 운전), 블루 수소 제조, 친환경 선박의 건조 및 운송 등 총 일곱 개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경험 부족과 국가 전 과정 목록 데이터베이스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EU나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고려하고 있는 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MRV(측정·보고·검증) 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전환 금융 제도화를 위해서는 첫째, 전환 대상 산업에 대한 명확한 분류 체계와 정의가 필요하다. 국내 상황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전환 금융 가이드라인 및 분류 기준을 도입하고, 금융 지원 수단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기존 K택소노미상의 기술 기준을 확대·보완하거나 별도의 전환 경로 지침을 마련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정책금융을 통해 초기 리스크를 분담하고, 전환 금융 실적에 대한 세제 혜택, 공공사업 연계 등 다양한 유인 수단을 통해 민간 자금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감축 계획의 과학적 검증을 위한 표준화된 평가 체계를 도입하고, 이를 공식적인 인증 체계와 연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금융기관은 자체적인 전환 금융 기준을 수립하고, 전환 금융 상품 개발 및 투자 실적 관리 등을 통해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강, 시멘트, 정유, 석유 학, 반도체 등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환 금융 활성화는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과도 직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환경 목적의 자금 지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저탄소 전환 산업 전략과 연계한 구조 개편 자본으로서 전환 금융을 정의해야 할 것이다.

전환 금융, 탄소 중립 달성 위한 핵심 전략

녹색 금융이 이미 탄소 중립 목표에 도달한 경제활동에 대한 자금 공급이라면, 전환 금융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중간 경로에 자금을 배분하는 전략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비중이 큰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는 전환 금융 없이 실질적 감축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전환 금융은 단순한 자금 공급 수단을 넘어, 산업구조 개편과 기술혁신을 유도하는 경제 전환 수단이다. 이제는 다배출 산업에 대한 무조건적 회피가 아닌, 조건부 개입을 통한 전략적 전환 유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책임 있는 참여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그리고 과학적 기준에 입각한 검증 체계 정착이 필요하다.

탄소 중립은 선언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갈색 산업을 엷은 갈색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녹색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전환 금융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자본이 탄소 중립 사회로 전환을 주도해야 할 때이며 정책과 시장이 이를 뒷받침해야 할 시기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