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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펀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 펀드인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 규모는 2024년 말 12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약 50%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영어 단어 ‘펀드(fund)’의 어원은 라틴어 ‘푼두스(fundus)’다. ‘바닥, 기초’라는 뜻이다. 즉 ‘밑천 또는 바닥 돈’이라는 뜻이다. 적절하게도 이 말의 우리말 번역도 ‘기금(基金)’, 즉 기초가 되는 ‘바닥 돈’이다. 

# 현대 재무 이론은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고, 수익률은 최대로 높이는 ‘분산투자’가 바직하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일반 개인 투자자의 자금 규모로는 이 분산투자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의 자금을 모아 큰 펀드를 만들어 소위 ‘집합 투자’라는 형태로 해결한다. 펀드 종류를 나누는 건 여러 면에서 가능하다. 목적에 따라 연금 펀드(pension fund)와 투자 펀드(investment fund)로 분류할 수 있고, 투자 펀드는 모집 방식에 따라 공모(公募) 펀드와 사모(私募) 펀드로 구분한다. 공모 펀드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사모 펀드는 소수의 재력가로부터 자금을 모은다. 미국의 대표 공모 펀드 형태는 ‘뮤추얼 펀드’다. 총규모는 2024년 말 기준 약 37조4000억달러(약 5경2165조5200억원)로, 투자 펀드 중 압도적 비중을 보인다. 

사모 펀드도 종류가 있다. ‘헤지 펀드(hedge Fund)’와 ‘PEF(Private Equity Fund)’ 등이다. 이 중 헤지 펀드의 ‘헤지’는 교목이나 관목을 둘러 심거나 베어낸 가지 등을 엮어 만든 울타리를 의미한다. 17세기부터 헤지는 ‘투자금 등을 손실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헤지 펀드는 1970년대에 일반화돼 1980년대 말부터 주식시장의 장기 활황과 함께 크게 번성했으며, 투자 대상은 주식을 벗어나 파생 상품이나 통화 등 돈이 될 수 있는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있다. PEF는 국내에서 헤지 펀드보다 그 도입 시기가 훨씬 빠르다.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이 ‘사모투자전문회사’로 바뀌었는데, 법에서 ‘사모’라는 이름을 사용해 이후 최근까지 PEF를 사모 펀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번역으로, 프라이빗(private)이라는 단어가 ‘사적(私的)’이라는 뜻으로 해석된 탓이다. PEF에서 프라이빗의 의미는 재무 실무에서는 상장하지 않은 주식을 일부 사람만 소유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PEF의 PE는 비상장 주식을 의미한다. 때문에 PEF는 ‘비상장 주식(전문 투자) 펀드’로 불려야 맞다. 2015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서는 헤지 펀드를 ‘전문 투자형 사모 펀드’로 부르고, PEF를 ‘경영 참여형 사모 펀드’로 지칭해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PEF는 원래 비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매수하거나 상장 주식을 매집해 상장을 폐지한 후 기업 가치를 올려 되파는 것을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 -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 -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뒤숭숭한 세상이다.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재선되고, 1기(2017~ 2020) 정부 때보다 훨씬 강력한 미·중 관세전쟁을 필두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기조가 미·중 양국 간 ‘완전한’ 협상 타결이 없으면 상당 기간 세계경제가 침체할 것이다. 국내 역시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국 불안이 이어졌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4년 하반기 비철금속 회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이 싸움에 한 외국계 사모 펀드가 가세해, 경영권 쟁탈전이 혼전 상황에 빠졌다. 결국 관련된 이들이 국회에 불려 가 심한 추궁을 받았다. 또 애초 이 펀드에 돈을 대기로 했지만, 철회한 국민연금의 역할도 언급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사모 펀드가 과거에 인수한 기업 상당수의 경영 상태가 악화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사모 펀드전체의 기능에 대한 회기론이 제기됐다. 

한국도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건 ‘펀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은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의 연금·기금이나 투자운용사, 보험사 등이 고객의 돈을 받아 만든 펀드가 큰손으로 분류된다. 외국인 투자자 대부분은 각국의 국부펀드, 연금·기금 등이 주가 된다. 여기에 국내외 헤지, PEF 등 사모 펀드가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들 펀드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작지 않다. 펀드의 자금 규모와 경제 활동에서 비중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과거에 비해 훨씬 원활해졌고, 비상장 벤처기업이 자금 수혈로 ‘스타트업’을 할 수 있다. 또 금융감독원 원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듯 사모 펀드는 한계 기업의 구조조정을 도와줘 경제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순기능도 가진다. 가계 입장에서는 펀드에 투자한 돈이 불어나면서 소비 여력을 키우고, 노후 대비를 돕는다. 이런 면에서 한국 경제도 ‘펀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펀드 자본주의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먼저 금융시장의 불안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도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활짝 개방되면서 외국 펀드의 입출에 따라 주식·채권시장이 요동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미국발 금융 위기가 즉시 국내에도 전달되는 등 국내 투자자가 큰 피해를 입고,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확신을 떨어뜨렸다. 요즘 개인 투자자의 과도한 소위 ‘미장(美場)’ 투자도 이의 한 결과일 것이다. 

또 여러 대형 은행을 싼값에 인수했다가 큰 이익을 챙기고 떠난 사모 펀드의 이른바 ‘먹튀’ 사건도 있었다. 이는 최소한으로 봐도 국부 유출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경우처럼 일부 펀드가 외국자본과 공동으로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했다가 기술만 빼먹고, 회사는 더 부실하게 만든 상태로 국내 금융기관에 떠넘기는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거대 펀드가 국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며, 소위 기업지배구조 강화를 명분으로 경영에 깊숙이 관여, 한국 기업의 큰 강점인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행)’이 위축되는 양상도 나타난다. 이는 한국 경제의 향후 성장 잠재력에 큰 악영향이 될 수 있다. 

펀드 자본주의의 명암은 차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그 긍정적인 면은 키우고 부정적인 측면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 외국 펀드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우호적 매수 포함)하려 할 때 예외 없이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처럼 당국의 사전 승인을 얻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일부라도 외국자본의 자금 공급을 받은 국내외 사모 펀드에 모두 적용해야 그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모쪼록 ‘펀드’가 그 어원처럼 한국 경제를 받치는 바닥 돈이 되길 기대한다.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