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전략적 변혁을 시도한 기업 중 단 26%만이 성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왜 이처럼 많은전략이 실패할까. 그 이유는 논리나 분석의 부족이 아니라, 전략을 실행하는 구성원의 ‘숨은 의도(hidden agenda)’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전략은 구성원이 실행해야 성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구성원은 공식 전략과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있다. 하버드대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 교수는 이를 ‘표면 전략(Es-poused Theory)’과 ‘사용 전략(Theo-ry-in-use)’의 괴리로 설명한다. 표면 전략은 겉으로 내세우는 원칙이고, 사용 전략은 실제 행동을 이끄는 내면의 동기다. 이해관계 충돌 시, 실행자는 겉으로는 전략에 동의하지만, 실제 행동은 자신의 숨은 의도에 따르게 되는데, 이 괴리가 전략의 실패를 야기한다.
영화 ‘킹메이커(The Ides of March·2011)’ 는 조지 클루니가 연출하고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한 정치 드라마로, 겉으로는 같은 목표를 가진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숨은 의도를 지닌 구성원 간 충돌이 전략의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념과 이해관계의 충돌
스티븐 마이어스(라이언 고슬링 분)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는 모리스(조지 클루니 분) 주지사의 수석 참모다. 스티븐은 모리스를 존경하며 그를 통해 미국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화는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스티븐의 믿음을 차근차근 무너뜨린다. 경쟁 진영의 선대본부장 톰 더피는 스티븐을 은밀히 불러낸다. 겉으로는 ‘능력 있는 전략가를 영입하고 싶다’는 말이었지만, 실상은 모리스 캠프 내부의 균열을 유도하려는 교란 작전이었다. 스티븐은 이 제안을 상사에게 숨기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려다 조직 내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스티븐의 판단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건 몰리라는 인턴과의 은밀한 관계다. 그녀는 모리스의 아이를 낙태한 후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몰리의 유서를 통해 그녀가 지키려던 비밀과 배후의 권력을 알게된 스티븐은 자신이 존경했던 모리스가 윤리의 가면 뒤에 숨어 권력을 탐하는 정치꾼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신념이 아닌 생존, 전략이 아닌 술수가 지배하는 조직에서 이상과현실의 균열을 실감한 스티븐은 자신의 정치 커리어를 위해 모리스의 스캔들을 무기 삼아 정적을 제거하고, 캠프에 복귀한다.

숨은 의도의 불일치가 초래하는 전략의 무력화
모리스의 캠페인은 전략적으로 잘 설계되었지만, 구성원 간 숨은 의도의 불일치로 인해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각자 다른 꿍꿍이를 숨긴 채 전략을 연기하던 인물은 위기 상황이 닥치자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모리스는 도덕성과 진정성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인턴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스티븐은 충성심과 윤리를 내세웠지만, 정치 커리어를 위해 협박과 권모술수를 선택했다. 모두가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행동은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었다. 결국 전략은 공허한 선언이 되었고 조직은 무기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기업 전략과 실행 사이의 균열
숨은 의도로 인한 전략과 실행 사이의 균열은 현실 기업에서도 발생한다. 일례로 코카콜라는 오랫동안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며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하지만 2021년 환경 단체 어스 아일랜드 인스티튜트는 플라스틱 사용 실태를 왜곡해 소비자를 기만했다고 코카콜라를 고발했다. 코카콜라는 외부적으로 플라스틱 감축과 재활용 확대를 내세우며 친환경 마케팅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구체적인 감축 계획 없이, 이미지 개선에만 집중한, 세계 최대의 플라스틱 사용 기업이라는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1심에서 기각된 이 사건은 2024년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항소법원이 다시 심리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반전을 맞았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숨은 의도는 전략 실행을 왜곡시킨다. 대표적 사례가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WeWork)다. 이 회사는 2010년 설립 이래 ‘사람 중심의 혁신적 일터 문화’ 를 강조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2019년에는 기업 가치가 470억달러(약 65조556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창업자인 애덤 뉴먼(Adam Neumann)의 리더십 아래, 실제로는 외형 확장과 밸류에이션 부풀리기에 집착했다. 뉴먼은 개인 부동산을 회사에 임대하고, ‘We’ 상표권을 회사에 되팔며 사익을 추구했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적자 구조와 비효율적 지출, 비정상적 지배구조가 드러났고, 결국 IPO는 무산되었다. 이후 소프트뱅크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경영 정상화에 실패한 위워크는 2023년 11월, 뉴욕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공감 기반 실행: 전략을 움직이는 진짜 힘
전략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공감’이라는 실행의 접착제다. 구성원이 공감하지 않는 전략은 실패한다.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인다고 당연히 실행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리더가 구성원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진정성과 일관된 태도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구성원은 화려한 말보다 태도를, 구호보다 실제 자원 배분의 방향을 본다. 전략이 공감을 얻으려면,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하게 수립한 전략도 실행되지 않는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모리스는 자신의 실수를 은폐하려 스티븐을 내쫓지만, 곧이어 그가 쥔 치명적인 카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스티븐은 복귀와 더불어 모리스가 경멸하던 인물과 손잡을 것을 요구하고, 모리스는 그 요구를 수락한다. 이 장면은 리더십이 공감이 아닌 공포에 기반할 때, 전략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셈법이 표면 전략을 압도하면, 리더 역시 그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 채 휘말리게 되고, 전략의 일관성과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전략 실패의 핵심 원인은 숨은 의도를 간과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부 균열을 방치하는 데 있다.
전략은 결국 사람이다
‘킹메이커’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통해 전략 실패의 본질을 보여준다. 전략은 이성으로 설계하지만, 실행은 감정과 관계의 영역이다. 그러기에 리더는 전략보다 사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공식 문서보다 비공식 대화와 분위기에 담긴 숨은 의도를 파악할 때 전략은 진짜 힘을 얻는다.
전략 실패는 분석의 부족보다 구성원의 속내를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진정한 전략가라면 표면적 동의보다 진짜 공감에 집중해야 한다. 그 공감은 언변이 아니라, 리더의 일관된 태도와 축적된 신뢰에서 만들어진다. 전략은 말보다 태도에서, 명분보다 맥락에서 진짜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6월 3일,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을 뽑는다. 모든 후보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말과 일치하는 행동과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의도다. 국민 통합을 외치면서 분열을 조장하거나 개혁을 말하면서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후보의 말에 담긴 숨은 의도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전략을 연기하는 시대에 진짜를 가려내는 유권자의 통찰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