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립 찜기 굿즈 ‘호찜이’. / 사진 SPC삼립
삼립 찜기 굿즈 ‘호찜이’. / 사진 SPC삼립

브랜드는 일상에 존재해야 한다. 오늘날의 브랜드는 이름이나 차별성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는 단순히 제품을 사지 않는다. 브랜드가 담고 있는 철학, 태도, 세계관을 선택하고 소비한다. 그래서 브랜드가 내 삶과 얼마나 가까운가, 얼마나 자주 떠오르는가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어떤 삶을 지향하느냐가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시대다. 그래서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이 되기를 꿈꾼다.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한다.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은 이제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 삶 속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이 됐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경험으로 번역해 소비자의 일상에 침투시킬 때, 브랜드는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브랜드는 강렬한 연상의 문제이고, 브랜딩은 ‘경험과 공감’의 문제다. ‘엉뚱한 브랜딩’은 브랜드 본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브랜드 철학이나 세계관을 남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는 전략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놀라움을 주기 위한 일회성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 정체성과 태도를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며, 특히 소셜미디어(SNS) 시대에는 이러한 엉뚱한 경험이 광고보다 훨씬 확산력이 강력하다.

일상 점유율과 엉뚱한 브랜딩

엉뚱한 브랜딩은 특정한 구매 상황에서만 브랜드가 연상되거나 제한적인 맥락에서만 브랜드가 경험돼 인지도가 높음에도 소비자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브랜드가 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기도 하다. 엉뚱한 브랜딩은 소비자 일상을 점령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시도의 목표는 바로 ‘일상 점유율(Daily Share of Life 혹은 Life Share)’을 높이는 데 있다. 일상 점유율이란 말이 마케팅 용어로는 아직 널리 정착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목표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지도를 높이거나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개념이 아니다. 소비자의 하루 속에,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가 등장하는가를 뜻하는 개념이다. 제품이 좋아도 브랜드가 자주 떠오르지 않으면 무력하다. 광고가 아무리 화려해도, 소비자 ‘루틴’ 속에 자리 잡지 못하면 관계는 쉽게 잊힌다. 브랜드 점유율이 시장의 크기를 말한다면, 일상 점유율은 소비자 마음속 풍경에서 차지하는 면적이다. 이케아 머그컵, 스타벅스 플래너, 무인양품 립밤, 애플 에어팟처럼 작고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 접점이 브랜드를 습관처럼 인지하게 하고, 결국 정서적 충성도로 이어진다. 이때 핵심은 바로 ‘기억되는 빈도’다.

엉뚱한 브랜딩은 본업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는 시도를 통해 브랜드 철학을 더 많은 접점에서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전략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경쟁 브랜드와 기능, 품질,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브랜드를 선택하는 결정적 기준은 ‘심리적 친숙함’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이 브랜드를 자주 마주치고, 자주 떠올리는가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일상을 파고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엉뚱하면서도 철학이 있는 브랜딩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네 개의 사례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브랜드가 ‘삶의 안쪽’으로 파고든 이야기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 사진 시몬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 사진 시몬스

엉뚱한 브랜딩은 본업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는 시도를 통해 브랜드 철학을 더 많은 접점에서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전략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경쟁 브랜드와 기능, 품질,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브랜드를 선택하는 결정적 기준은 ‘심리적 친숙함’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이 브랜드를 자주 마주치고, 자주 떠올리는가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일상을 파고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엉뚱하면서도 철학이 있는 브랜딩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네 개의 사례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브랜드가 ‘삶의 안쪽’으로 파고든 이야기다.

사례로 보는 ‘일상 점유율을 확장한 엉뚱한 브랜딩’ 

1│삼립 찜기 굿즈: 겨울을 재현한 오브제

삼립호빵은 겨울의 계절 간식이다. 그러나 그저 계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브랜드가 아니라, 2023년 말 ‘호찜이’라는 이름의 미니 찜기 굿즈를 출시하며 브랜드를 감성적 리추얼(의식)로 확장했다. 전자레인지보다 손이 더 가는 찜기를 왜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김이 피어오르는 순간, 그 공간 전체가 삼립호빵이 되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다. 찜기는 단순히 호빵을 데우는 도구가 아니라, 삼립이 제안하는 ‘겨울의 풍경’이 담긴 상징적 장치다. 사용자는 이 찜기를 꺼내고, 김이 피어오르고, 따뜻한 그릇을 만지며 호빵이 아니라 브랜드 감정을 기억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식품을 파는 브랜드에서 계절 감각을 디자인하는 브랜드로의 확장이다. 찜기를 한 번 더 쓰는 날은 삼립을 한 번 더 기억하는 날이 된다.

2│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침대 없는 침대 브랜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진 시몬스는 2020년대 들어 더욱 파격적인 브랜드 확장을 시도한다. 바로, 침대를 팔지 않는 침대 브랜드 공간,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다. 청담동과 이천에 문을 연 이 공간에서는 식료품, 티셔츠, 머그잔, 향초, 스니커즈 등을 판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편안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것. 시몬스는 단순히 잠의 퀄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전체에서 느긋함, 부드러움, 감각적인 쉼표를 이야기한다. 그 철학이 침대에서 식탁으로, 발끝으로, 주방으로 확장된 것이다.

침대를 매일 사는 사람은 없지만, 시몬스 감성의 양말이나 티셔츠는 매일 입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상 점유율 전략이다. ‘브랜드는 구매보다도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3│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빛을 마시는 카페

일광전구의 또 다른 공간, 인천 개항장의 카페 ‘라이트하우스’는 조명이 아니라 커피를 파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브랜드 철학을 엉뚱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라이트하우스는 폐(廢)산부인과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건물 전체가 빛의 실험실처럼 구성돼 있다. 테이블마다 다른 조명이 설치돼 있고, 건물 곳곳에는 조명을 활용한 설치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고객은 커피를 마시며 빛의 감정, 시간의 흐름, 공간의 무드를 체험한다. 그리고 조명 브랜드인 일광전구를 ‘느끼는 브랜드’로 기억하게 된다. 이처럼 브랜드가 공간을 재해석하고, 일상 행위를 감각적으로 설계할 때,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라 삶의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존재가 된다.

4│일광전구 IK 쇼룸: 빛을 체험하는 공간

일광전구는 라이트하우스 브랜딩에 이어 팝업의 성지에 ‘일광 IK 쇼룸’을 열었다. 빛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60년 전통의 조명 제조사인 일광전구는 단순히 전구를 판매하는 시대를 넘어섰다. 이 브랜드는 전구라는 제품을 넘어 ‘빛’이라는 감각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브랜딩을 시도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일광전구 쇼룸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다. 방문자는 다양한 빛의 온도와 색을 체험하고, 조명 각도와 강도에 따라 공간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조명 ‘DIY(Do It Yourself·자체 제작)’ 워크숍이나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가 ‘빛을 만든다’는 참여형 경험을 제공한다.

일광전구는 전구를 ‘기술 제품’이 아니라 ‘감성의 매개체’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브랜딩은 브랜드를 단순히 산업 제품 회사가 아닌, 빛의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다. 일광전구는 기능을 넘어 감각을 팔았고, 이는 브랜드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 네 가지 사례는 모두 엉뚱하다. 하지만 이 엉뚱함은 브랜드 철학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브랜드는 인지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떠오르는가, 하루 중 몇 번 마주치는가’다. 그래서 이제 브랜드는 단지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일상 점유율로 경쟁하고 있다. ‘구매의 순간’ 을 기다리는 대신, ‘기억의 순간’을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 그들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 공간, 오브제, 동물, 계절감, 감정을 통해 삶 속으로 파고든다. 

엉뚱한 브랜딩은 더는 엉뚱하지 않다. 이제 소비자는 광고가 아니라 내 삶의 습관과 감각을 통해 브랜드를 선택한다. 그렇게 기억되는 브랜드만이 다음 계절에도, 다음 선택에도 살아남는다. 브랜드는 ‘사는 이유’가 되고, ‘삶의 방식’이 된다. 엉뚱함은 일탈이 아니라, 침투 전략이다. 브랜드는 엉뚱하게 일상을 점령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상 깊숙한 곳에 들어간 브랜드만이 오래도록 사랑받는다.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 사진 황부영. 일광전구의 대표 제품인 스노우맨 조명. / 사진 일광전구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 사진 황부영. 일광전구의 대표 제품인 스노우맨 조명. / 사진 일광전구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