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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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금융 회사에 인사 총괄 임원으로 부임했을 때 인력 현황을 살펴보던 중 이상한 케이스가 하나 눈에 띄었다. 부장 직급의 A가 장기간 홍콩에서 ‘해외 연수’ 중이었는데, 성과 이력이나 보직 흐름으로 보면 연수 대상자로는 보기 어려웠다. 

자초지종을 확인해 본 결과는 이랬다. A는 국내에서 적절히 배치할 만한 업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해외 프로젝트 참여’라는 명분으로 연수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A가 1년 뒤 연수 종료 시점에 다시 1년 연수 연장을 요청한 것이다.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홍콩 측에 확인해 보니, 해당 프로젝트는 A가 없이도 충분히 진행이 가능한 일로 파악됐다. A의 한국 본사 상사(上司)는 A가 국내에 있을 때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애매한 시간만 보냈으며, 부담스러운 대면을 피한 채, 결국 ‘잠시 나가 있어라’며 해외 연수라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사안을 인식하는 A의 태도였다. A는 일련의 흐름이 본인의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로 믿고 있었다. 업무 성과에 대한 부담은 줄고, 연봉은 유지됐으며, 심지어 영어 학습 비용까지 회사에 요청했다. 이 모든 착각은 단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저성과자를 관리하지 못하는 구조와 리더십의 태도가 빚어낸 필연이었다.

저성과자 관리 실패의 두 축: 인식 오류와 실행 체계 부재 

많은 조직에서 저성과자 문제는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본질은 두 가지 축으로, ‘리더의 인식 오류’와 ‘조직의 실행 체계 부실’에 있다.

자주 범하는 인식의 오류, 특히 리더가 흔히 빠지는 세 가지 착각을 열거해 보자. 

첫째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바쁜 현업 속에서 많은 관리자는 저성과자 문제를 인사팀의 책임으로 넘기려 한다. 하지만 구성원의 성과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가장 큰 비즈니스 리스크다.

둘째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대하는 건 착각이다. 저성과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셋째 ‘평소에 안 해도, 필요할 때 하면 된다.’ 저성과자 관리는 한 번의 행동(액션) 또는 실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관찰, 기록, 피드백, 코칭이 누적되어야 하며, 이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리더십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운영상의 허점, 말하자면 기술적 실패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저성과자 관리 역량 부족이다. 본질은 관리자 역량 결핍이다. 저성과자 관리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고난도의 리더십 기술이다. 그래서 계속 훈련이 필요하다. 목표 설정, 피드백, 동기부여, 지원, 조율 등 이 모든 것은 종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둘째, 프로세스 이해 부족이다. 성과 관리는 분기별, 연간 단위의 유기적인 흐름이 있다. 초반 설정이 어설프면 후반에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셋째, 일률적인 접근 방식이다. 성과가 나지 않는 데는 사람마다 그 원인이 사뭇 다를 수 있다. 개인적인 요인(스킬 부족, 동기 부재)과 환경적 요인(조직 구조, 리더십 문제) 모두를 종합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종종 일률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풀어보려는 시도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넷째, 심리적 메커니즘 무지다. 피드백이 없으면 대개 구성원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변화 유도 없이 방치되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의 근육만 강화된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화려한 홍콩 생활을 했던 A의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다섯째, 노동시장 이해 부족이다. 작금의 노동시장은 급속하게 경력직 중심, 핵심 인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필요한 핵심 역량과 경험을 보유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성원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저성과자 관리 실패는 단순한 퍼포먼스 이슈가 아니라, 자산과 투자 운용 실패에 가깝다.

성공적인 저성과자 관리를 위한 세 가지 제언

성공적인 저성과자 관리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저성과자 관리는 단순한 성과 조정이 아니다. 리더십 철학, 실행 전략, 인재 운용 시스템 전반에 걸친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성장 중심 철학으로 전환하자. 성장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할 때는 당연히 장기적 관점이 유지돼야 한다. 노력했음에도 구성원의 성과가 개선되지 않아 이별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과자를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간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직원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 문화와 태도, 그것이 시작점이다. 

둘째,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자. 앞서 저성과자 관리는 프로세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 관리 프로세스의 핵심은 ‘시작’이다. 애매한 목표 설정은 모든 실패의 씨앗이다. 합의된 목표를 도출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프로세스 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인재를 잘 뽑고 잘 배치해야 한다. 스포츠팀을 상상해 보자. 성적 잘 내는 최고의 팀처럼, 조직도 각 포지션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 ‘잘 뽑는 것과 잘 배치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든 성과 관리의 전제가 된다.

저성과자 관리, 더는 미룰 수 없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저성과자 문제를 리더십 관점의 결함과 실행 체계의 부재 속에서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저성과자를 방치한다는 것은 조직 전체의 퍼포먼스 기준을 낮추는 것이며, 무형의 손실을 조직에 계속 축적하는 일이다.

이제 질문을 한번 바꾸어보자. ‘왜 저성과자가 생겼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들을 관리하지 못했는가’라고. 저성과자 문제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이며 조직 전략이 준비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성과 관리 시스템을 다시 짜고, 관리자 역할을 재정의하며, 무엇보다 구성원의 가능성을 ‘회복’시키려는 조직적 의지를 갖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다. 조직의 미래는 가장 약한 고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성과자에 대한 관성적 처분이 아니라, 성장에 대한 전략이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