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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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중장기 성장 경로가 세간의 이슈가 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현상 심화에 따르는 노동 투입 감소, 경제와 사회 전반의 생산 효율성을 나타내는 총요소생산성 하락, 자본 투입 증가세 둔화 같은 3대 생산 요소의 추세적 악화로 우리 경제는 지금부터 20년 후인 2040년대 후반이 되면 역성장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과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여하튼 이런 우울한 전망과 우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9년 OECD DAC(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가입 후 2021년에는 UNCTAD(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 선진국 그룹 진입 승인 등으로 명실공히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경제 규모로도 2024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약 1조9000억달러에 달해 세계 12위 정도로 성장했다.

즉, 우리 경제는 이미 성숙기에 진입해 다른 많은 선진국처럼 특별한 성장 모멘텀이 없다면 추세적인 성장세 둔화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가 약화하면서 역성장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이런 우울한 전망과 원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악화하고 있는 3대 생산 요소를 조속히 개선해 성장 경로를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 투입 증가를 위해서는 저출생·고령화 현상을 멈추거나 이민 등 인구 증가를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을 비롯한 다른 많은 국가가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여도 안 되는 일을 우리나라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 일본 주오대 경제학 석·박시, 전 대구경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 일본 주오대 경제학 석·박시, 전 대구경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총요소생산성 역시 마찬가지다. 혁신 능력, 법 제도의 효율성, 사회 안정성 등 노동과 자본 이외의 모든 투입 요소가 균일적으로 개선되거나 향상돼야 하지만, 실현 가능성도 작을 뿐 아니라 단기간에 달성할 수도 없다. 그나마 자본 투입은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 증가시킬 수 있는 요소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합리적 규제 완화, 노동시장 선진화, 정부의 기술혁신 및 산업화 촉진, 친기업 정서 확산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의 행보는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느긋해 보인다. 만약 지금 이대로라면 올해 우리 경제는 예상대로 0%대 성장을 피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등 대외 여건이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우리 경제성장률이 2% 정도의 잠재성장률 수준을 대폭 하회할 수 있고, 중장기 성장 경로 악화 추세를 더 가파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지적처럼 실제와 당위를 혼동하기 시작하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책 당국의 주장처럼 재정 건전성은 중요하며 통화정책 역시 대외 여건을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확고한 중장기 지속 성장 기반이 있고, 대외 경쟁 우위도 유지할 수 있을 때나 당위성을 가진다.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 당위성도 거기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