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순 울산대 반도체학과 석좌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른 물리학자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가 벌집처럼 육각형으로 연결돼 다발을 이룬 물질로, 전기가 잘 통하면서도 강도가 강한 신소재다. 임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금속 성질이 없어지면서 반도체 성질을 띤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임 교수는 천재의 삶을 살았다. 경기고 수석 졸업, 대입 예비고사 전국 1등, 서울대 본고사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40대에 서울대 석좌교수가 됐고, 2011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미국과학학술원(NAS) 외국인 종신회원이 됐다. 한국에서 과학자가 받을 수 있는 상도 거의 다 받았다. 1996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1998년 올해의 과학자상, 2004년 인촌상, 2007년 청암상, 2024년 삼성호암상까지 받았다. 임 교수는 서울대 정년을 앞두고 2016년 포항공대(포스텍)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해 다시 울산대로 이동했다.
지난 4월 중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임 교수는 자신의 새 명함을 건넸다. 서울대와 포스텍, 울산대를 거치면서도 교수 명함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메모지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휘갈겨서 주는 사람이 임 교수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자 임 교수는 옅은 미소를 띠며 “스타트업을 차렸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연구를 이어오던 이산화탄소 직접 공기 포집(DAC·Direct Air Capture) 기술 상용화를 위해 창업에 나선 것이다. 회사 이름은 ‘카볼루션’이다. 올해로 일흔네 살. 스타트업 대표로는 1년 차였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창업이라니 놀랍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아직 서울대에 있을 때 서울대 장기 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때 창업이 미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 남한테 하라고만 하고, 나는 창업 경험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창업의 필요성은 평소에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직접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늙었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는 것은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고 봤다. 건강이 따라주는 한 해보자는 생각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 창업하라고 말할 때 당당하다.”
회사에 대해 소개해달라.
“DAC의 핵심은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물질의 성능이다. 클라임웍스나 카본엔지니어링 같은 글로벌 기업이 DAC 사업에 먼저 뛰어들었지만, 이산화탄소 포집 물질의 성능만큼은 우리가 앞서 있다. 직접 개발한 유·무기 하이브리드 화합물 ‘스포익(SPOIC)’의 이산화탄소 포집률이 전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높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보통 420ppm(1ppm은 100만 중의 1) 수준인데, 이 중 75% 이상을 제거하면 포집이 이뤄졌다고 본다. 우리가 만든 포집제는 포집률이 95%에 달한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2021년 국제 비영리단체인 엑스프라이즈와 함께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1억달러(약 1396억원)의 상금을 주는 대회를 열었다. 임 교수는 스포익 기술로 참가했다. 전 세계 5000여 팀 중 본선에 오른 287개 팀에 임 교수도 들었지만,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엑스프라이즈 대회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5000여 개 팀 중 287개 팀이 결선에 올랐고, 작년 4월까지 DAC 기술의 실증 시설을 만들어서 보고해야 했다. 우리는 실증 시설을 못 만들었다. 50억원에서 100억원 정도가 필요한데 그때는 투자받기가 어렵다고 판단해서 실증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비록 대회에서는 탈락했지만, 이후에도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켰고 올해 3월에 창업에 나선 것이다. 울산에 본사를 두고 연구와 실증을 할 예정이다.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1차 투자 약속도 받았다.”
사업 계획이 궁금하다.
“포집제인 스포익은 이미 만들었고, 이걸 기계적인 설비에 붙이는 게 중요하다. 일종의 포집 모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대에서 기계적인 모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 뒤에 추가 투자를 받아서 실제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 포집을 실증하는 것이 목표다. 2026년 말까지는 최종 포집 모듈 제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모듈을 크게 만들기보다는 작은 모듈을 많이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직접 사업을 할 만한 체질이 아닌데.
“맞다. 지금은 내가 CEO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함께 맡고 있지만, 새로 경영을 책임질 사람도 뽑았다. 내가 경영을 직접 하기는 어렵다. 함께 회사를 만든 공동 창업자를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꾸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인 벤처 대부인 황승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공동 창업자로 이사회에 합류했다. 고분자 분야의 국내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조길원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도 창업 멤버다.”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해법이 있을까.
“창업을 준비하면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들 이공계가 아니라 의대를 가려고 하더라. 안정적이라는 점이 장점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의대 열풍을이기려면 이공계에서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를 많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창업해서 성공하면 의사와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다. 미국에서는 창업 실패가 오히려 경력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경력이 사라진다고만 여긴다. 실패 이후에도 충분한 기회를 주는 환경이나 여건을 만들어주면 의대 열풍도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