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소비자는 한국인이 무엇을 입는지 궁금해해요. 한국에서 얼마나 충실히 잘하고, 인기를 얻느냐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패션 브랜드 ‘마뗑킴(Matin Kim)’을 운영하는 하고하우스의 이준성 전략본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K패션이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한국 소비자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뗑킴은 K패션 시장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18년 디자이너이자 인플루언서인 김다인이 설립한 브랜드로, 2021년 대명화학 계열 브랜드 투자사인 하고하우스에 인수됐다. 2018년 10억원 수준이던 연 매출은 2022년 500억원으로 커졌고, 이듬해 1000억원, 지난해 1500억원까지 불어났다. 올해는 2000억원을 목표로 한다.
성장 비결은 브랜드에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하고하우스가 직접 브랜드를 육성(인큐베이팅)하는 데 있다. 될성부른 브랜드가 있으면 투자하고, 대기업 출신의 하고하우스 전문 인력을 브랜드에 투입해 조직부터 인력, 재무구조까지 재정비해 더 크게 성장하도록 지원한다. 또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오프라인 판로를 개척한다.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마뗑킴은 홍콩, 대만, 마카오에 이어 지난 4월 일본 도쿄 시부야 미야시타파크에 일본 첫 매장을 열었다. 개점 사흘간 4000여 명이 방문해 3억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마뗑킴 일본 유통을 담당하는 무신사는 목표치의 두 배 이상을 초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올 초엔 미국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에게 인기 있는 럭셔리 브랜드 코치와 협업하고, 넷플릭스 광고에 나서며 글로벌 MZ 세대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회사 측은 올해 30여 개국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첫 매장인 도쿄 시부야점을 성황리에 열었다. 호응을 예상했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앞서 일본에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네 차례 운영했는데, 그때마다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작년 시부야 파르코에서 운영한 팝업스토어엔 개점 첫날 3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 이번 매장에도 기대 이상의 관심이 모였다. 오픈 첫 주말에는 2시간 이상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마뗑킴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한류(韓流) 영향이 크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화장품과 패션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다. 서울 성수동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예전과 달리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이 유입됐고, 자연스레 바이럴이 됐다. 일본의 로컬 브랜드는 너무 비싸고 지루하다는 평이 있는데, 마뗑킴은 트렌디하면서도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어 일본 20~30대 소비자에게 통한 것 같다. 현지 반응을 들어보면 일본에서 이 정도 가격대에 이렇게 멋있는 옷이 없다고 한다. 일본이나 대만 백화점도 트렌디한 공간에 마뗑킴을 들이고 싶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K패션의 저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과거 패션 시장은 유명 브랜드가 주도했다. 브랜드 컬렉션이 발표되면, 그게 트렌드가 되고, 이와 비슷한 상품이 나오는 게 예전패션 브랜드의 방정식인 거 같다. 그러나 요즘엔 한국만의 패션 트렌드, 즉 ‘한국 맛’이 분명히 있다. 마뗑킴을 소비하는 20대 직원은 ‘한 끗 차이’가 있다고 한다. 비슷한 블라우스와 바지라도 멋스러움이 묻어난다고 하더라. 의도하지 않은,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마뗑킴 매력인 거 같다. 실제 MZ 세대는 틀에 가두고 규정하는 걸 싫어한다고 들었다.
디자인실의 독특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보통 국내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자기 옷을 안 입고 명품 브랜드 옷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10여 명의 디자이너 모두가 마뗑킴 옷만 입는다. 20대 디자이너가 스스로 브랜드의 팬이 돼, 입고 싶은 옷을 만들다 보니 비슷한 나이대 고객에게 통한 거 같다.”
마뗑킴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인접 국가와 글로벌로 확장해 가는 브랜드의 라이프 사이클로 보면, 글로벌 전략을 강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올 초 미국 럭셔리 브랜드 코치와 협업을 진행했다. 미국 MZ 세대에게 인기 있는 코치가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아시아권에서 MZ 세대 팬덤이 있는 마뗑킴에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2’ 광고 및 34개국을 오가는 대한항공 비행기 133대에 기내 광고를 했다.
미국에 매장도 없는 브랜드가 글로벌 대상 광고를 진행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코치 협업 후 소셜미디어(SNS)를 봐도 ‘대체 마뗑킴이 뭔데 이런 브랜드랑 협업하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과거 한국 브랜드 중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현지에 매장부터 내고 억지 반응을 유도하다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 재미있는 이슈를 먼저 던지고, 이를 통해 얻은 인지도로 세계시장에 더 빨리 진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실제 코치 협업과 넷플릭스 광고를 집행한 지난 1월 마뗑킴 홈페이지 해외 방문자 수는 218%, 해외 판매는 207% 증가했다.”
K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일 중요한 건 한국에서 얼마나 잘하느냐다. 한국에서 존재감이 없는데, 해외에서 잘된 사례는 없다. 동유럽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하면, 당시 마뗑킴 모델이 외국인이었는데 현지인이 ‘우리는 한국 사람이 어떻게 입는지가 궁금하다’라고 하더라. 외국인은 한국 사람이 어떻게 입는지를 궁금해한다. 유럽 등 패션 본거지에선 아직 한국 패션이 시도되지 않은 곳이 많지만, K팝의 큰 팬덤만큼 K팝 스타가 입는 옷을 보고 관심을 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각에선 K뷰티·푸드에 비해 K패션 성장이 더디다는 시각도 있다.
“패션 산업의 구조적 한계 탓이다. 패션은 체형이나 사이즈·계절의 제약을 받고, 트렌드 주기가 짧다. 한국인을 고려해 만들어진 옷이다 보니 아시아권에선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더 확장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다만, 잡화 등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순 있다. 마뗑킴의 경우 액세서리 비중이 50%에 달해 해외 진출에 수월했다. 가방이나 지갑 등 액세서리는 체형이나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간 팔 수 있다. 여성용으로 제작된 잡화를 구매하는 남성 고객도 많다.”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마뗑킴을 알고 입는 것이 목표다. 내부적으로 K패션 주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드파운드, 유니폼브릿지 등 하고하우스 산하 40여 개 브랜드도 이런 시스템을 접목해 성장 계단을 밟아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