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시중은행이 역대급 실적을 거둬 성과급 잔치를 했다는 뉴스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사에는 어김없이 은행의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이 뒤따른다. 문제는 과점화된 은행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은행이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는 기사를 계속 보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은행이 수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수익이 과점 구조에 따른 이윤이라면, 경쟁을 유도해 이윤을 낮추는 것이 사회 후생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은행 시장의 과점화는 1997년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외환 위기로 부실화된 은행에 대한 인수합병(M&A)이 필요했고, 정부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형 은행을 육성하기 위해 은행 간 M&A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결과로 1997년 26개였던 일반은행이 2014년 13개로 줄었다. 2016년 은행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인터넷 전문은행이 도입되면서 일반은행 수는 늘었지만, 2024년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2%로, 2015년 66.7%와 별 차이가 없다. 2013년 HSBC의 소매 금융 청산과 2021년 씨티은행의 소매 금융 철수도 우리나라 은행 시장의 과점화 원인이자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호금융기관은 소매 금융, 대형 은행은 기업·국제금융 집중
은행 시장의 과점 구조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해법으로 신용협동조합 등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을 정책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통상 상호금융기관이라 불리는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지역 등 공동 유대를 갖는 조합원이 설립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예금 및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 같은 예금 수취 기관이면서 가계와 개인 사업자에 대한 소매 금융을 주 업무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지역 주민이나 조합원에 대한 밀착형 금융에서 은행에 비해 비교 우위를 갖는다. 특히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금융 소외 계층이나 중소 상공인 등 기존 금융 서비스 범위에서 벗어난 고객층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장 내 경쟁을 보완함과 동시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반면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아 거액 기업 대출 분야에서는 비교 열위에 있다. 그러니 금융 당국은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 자사의 장점을 살려 가계 대출 등 소매 금융에 집중하고, 대형 은행은 기업금융과 국제금융 분야에 더욱 전념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방법으로 대형 은행의 과점 체제를 완화할 수 있다. 가령 가계 대출 시장에서 협동조합형 금융기관 비중이 확대될 수 있도록 대형 은행의 가계 대출 비중을 일정 선으로 제한하거나, 중소 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만이라도 부동산 정책 대출 상품을 협동조합형 금융기관만 취급하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또 한국은행이 지방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 은행이 아니라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을 통해 공급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의 설립 근거법을 개정해 중앙회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의 경우 설립 근거법을 개정해 2012년 농협은행과 2016년 수협은행을 설립했다. 농협은행과 수협은행의 2024년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각각 17.57%와 15.28%로 감독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도 각각 0.5%와 0.8%로 양호하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다른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의 중앙회도 은행업에 진출해 생존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은행 설립에는 자본금이 필요하므로 각 협동조합중앙회의 재정 상황에 맞게 지방은행이나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은행업에 진출할 수도 있다.

농촌 지역 금융 소외 문제 해결할 대안으로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나날이 심각해지는 금융 소외 현상을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 심화로 대형 은행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영업점을 통폐합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철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2014년 말 7269개에 달하던 은행 점포는 2024년 말 5425개로 25.4% 줄었다. 특히 4대 대형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점포 수가 같은 기간 45.6% 감소하면서 과점 지위로 높은 수익을 누리면서 대형 은행의 공공재적인 역할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과점적 지위를 갖는 공급자가 가격은 높이고 공급을 감소시킨다는 경제학 이론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은행 영업점과 ATM 감소로 가장 타격을 입는 지역은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와 농촌 지역이다. 해당 지역 영업점과 ATM 이용도와 수익성은 인구 감소와 경기 부진 등으로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수익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대형 은행에 법적 의무를 지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지역 밀착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시장 친화적이고 사회 비용이 더 적은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대형 은행처럼 수익을 추구하지만, 주주가 아닌 조합원과 공동체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대형 은행 대비 공익성이 강하다. 따라서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영업을 영위할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만으로도 금융 소외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5대 대형 은행 중 한 곳으로 분류되지만,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인 농협은행의 경우 4대 은행이 지난 10년간(2014∼2024년) 점포 수를 45.6% 줄이는 상황에서 9.6% 감소에 그쳤다. 수협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오히려 점포 수를 8.4% 늘렸다. 지역신용협동조합의 점포 수도 같은 기간 1.4% 증가했다. 이런 통계는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인구 감소 지역이나 저성장 지역에 대한 금융 포용 정책은 수익성에 따라 ‘언제든지 금융 서비스 제공을 중단’할 수 있는 대형 은행보다는 지역 경제에 기반을 둬 ‘언제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은행대리업’ 제도를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해 오는 7월부터 우체국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한다. 향후 은행법을 개정해 우체국에 정식으로 은행대리업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은행대리업 제도는 우체국과 함께 협동조합형 금융기관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체국 위주로 제도가 마련되면 우체국이라는 공공 금융이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라는 민간 사회적 금융을 구축(crowd out)하는 역효과를 야기할 것이다.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은 제2 금융권 금융기관으로 분류되면서 신용도가 좋지 못하거나 은행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되는사람이 이용하는 금융기관으로 치부돼 온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신용협동조합은 지방은행과 나란히 소매 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영국은 신용협동조합의 금융 포용 역할에 주목해 지역신용협동조합을 확대할 목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 당국도 은행 시장의 과점화와 금융 소외 현상을 완화할 방안으로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제도적 지원을 강구해야 한다.
BIS 자기자본비율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금융기관의 위험 가중 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 한국은 1993년 BIS 자기자본비율 제도를 도입해 1995년 연말부터는 8% 이상 비율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선진국 수준인 16.7%다.
고정이하여신비율
전체 여신에서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 금융기관의 여신은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5단계로 나뉜다. 해당 비율이 낮을수록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여신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은 2023년 기준 0.47%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