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전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고령화율)이 30%를 넘어선 ‘고령사회 선진국’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일본이 초고령사회를 우리보다 20년 먼저 경험하면서 ‘실버산업’ 벤치마킹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고령자가 넘쳐나고, 16년째 인구가 줄어들면서 젊은 노동 인력이 부족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령자를 돌보는 요양 보호사나 간호사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고, 의료 및 간병 비용이 급증하면서 가정과 국가 재정에 부담이커지고 있다. 고령자 가운데서도 약 1500만 명에 달하는 전기 고령자(65~74세)보다 후기 고령자(75세 이상)가 약 2200만 명으로 더 많아 고령자 대상 의료 케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경제성장은 더딘 상황에서 초고령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일본의 실버산업은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최근 둘러본 도쿄 및 수도권 지역의 노인 홈(고급형 실버타운)과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안정적 주거 목적의 보급형 실버타운), 데이 서비스 센터(고령자가 등하교하며 이용하는 일종의 노인 유치원)를 소개한다.

고급 노인 홈, 도심 중심부에 시설 늘려
일본에는 실버타운에 해당하는 고령자 거주 시설로 노인 홈과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이 있다. 노인 홈은 입주민에게 식사, 목욕 및 배설, 세탁 등 가사, 건강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고급 실버타운이다. 고령자가 자립 상태에서 입주해 사망할 때까지 거주하면서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노인 홈은 1950년대 처음으로 생긴 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노인 홈은 대다수가 월 단위로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어 고소득층 고령자가 주로 이용한다. 간호사가 상주하며 24시간 건강을 체크해주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입주민은 평소 진료받는 주치의 또는 제휴한 의료 기관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 월 최고 이용료는 100만엔(약 961만원)에 달한다.
도쿄에서 부촌으로 꼽히는 미나미 아오야마(南靑山)에 있는 일본 최고급 노인 홈을 찾아갔다. 서울 한남동이나 성북동 고급 빌라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고급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프레상룩스 미나미 아오야마’는 개업한 지 3년 차인 최신 노인 홈이다. 도쿄증권거래소 상장회사 ‘케어21그룹’이 운영하는 세 종류의 노인 홈 가운데 최고급 브랜드다.
5층짜리 건물 내부를 살펴봤다. 층마다 복도 끝에 ‘간호실’이 있다.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면서 입주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고령자 2명당 1명이 배치돼 몸이 약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입주자를 챙긴다.
고급 호텔 수준의 리빙룸, 레크리에이션 공간, 파티룸, 운동실, 목욕실, 흡연실 등을 갖췄다. 프레상룩스 미나미 아오야마는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식사 품질에 힘을 쏟는다고 강조한다. 특급 호텔 출신 요리사를 고용해 일식, 양식 등 다양한 요리를 제공한다. 부유층 고령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도쿄에 거주하는 고소득층 고령자는 나이가 들어도 기존에 거주하던 지역에서 거주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살던 집에서 가까운 노인 홈을 선호한다. 고급 노인 홈이 이들을 겨냥해 도시 중심부에 시설을 만드는 이유다.

데이 서비스 센터 품은 고령자 주택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은 노후에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은 고령자에게 안정적인 주택을 제공한다. 2011년 일본 국토교통성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 전역에 세워졌다. 고령자 주택은 노인 홈과 달리 입주 고령자의 안부 확인과 생활 상담 서비스 정도만을 제공한다. 보급형 실버타운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도쿄에서 인기 있는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을 방문했다.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스미다구에 있는 ‘스마일 메종 히키후네’는 월평균 사용료가 최대 20만엔(약 192만원) 정도다. 4층짜리 스마일 메종 히키후네 건물에 들어서자 1층 거실에서 붓글씨와 꽃꽂이를 하는 10여 명의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등하교를 하며 데이 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인근 지역 고령자들이다. 고령자 주택을 운영하는 라이후콘사이드서비스의 가토 히로시 대표는 “1층은 인근에 거주하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데이 서비스 센터로 운영하고, 2~4층은 고령자 주택으로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라며 “데이 서비스 센터 이용자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고령자 주택에 들어오려는 수요가 많아 입주율 100%를 달성했다”라고 했다. 스마일 메종 히키후네와 같이 기존 고령자 주택이 데이 서비스 센터를 병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데이 서비스 센터는 노인 홈, 고령자 주택과 달리 고령자가 등하교하며 이용하는 일종의 노인 유치원이다. 고령자가 낮 시간에 찾아와 레크리에이션, 식사, 목욕 등을 주로 했지만 취향에 맞춰 오락형(간단한 게임), 테마형(카페 및 레스토랑), 건강 증진형(체조 및 걷기 등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건강 증진형 데이 서비스 센터인 ‘폴라리스(Po-laris)’의 하네다 하기나카 지점을 방문했다. 폴라리스 100여 개 매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시설로, 벽을 따라 러닝머신 10여 개가 설치돼 있다. 가운데 공간에는 10여 명의 노인이 몸풀기 체조를 하고 있다. 폴라리스 데이 서비스 센터는 오전 9~12시, 오후 1~4시 하루 두 차례 문을 연다. 노인은 본인 체력에 따라 편한 날, 편리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노인 간병 인력, 로봇으로 대체될 듯
노인 홈과 고령자 주택은 호황을 맞고 있지만 직면한 문제는 동일하다. 간병 인력 부족과 늘어나는 비용 등이다. 이를 위해 일본 실버산업은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 중이다. 노인 홈 ‘모리노 이야시 하우스’는 대화형 로봇을 도입했다. 해당 노인 홈은 월 이용료가 50만엔(약 481만원) 정도로 입주자가 모여 담소를 나누고 TV를 시청하는 공간에 대화형 로봇을 배치했다. 요양 보호사가 로봇에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 체조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요청하자 로봇이 직접 준비 운동부터 순서대로 건강 체조를 보여준다. 일본 후지소프트 제품인 이 로봇의 키는 50㎝ 정도로 작지만 팔다리, 허리와 목 등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여 시범 체조를 보이는 데 문제가 없다. 이 시설에서는 매일 오전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로봇이 시범 체조를 고령자에게 선보인다고 한다. 현지 전문가들은 고령자 시설에 요양 보호사 등 간병 인력 부족 현상이 계속되면서 앞으로는 로봇이 더 많은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