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공공 임대주택(행복주택)에 주차된 고가 외제 차에 차량 가액 기준 초과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경기도의 한 공공 임대주택(행복주택)에 주차된 고가 외제 차에 차량 가액 기준 초과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부유층 부모의 지원을 받는 캥거루족 자녀가 도피성 해외 유학을 다녀오더니 귀국해서는 직장도 변변히 없이 부모 집 근처 용산, 강남 같은 좋은 입지 임대주택에서 부모 명의로 된 고급 차를 끌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실제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는 임대 아파트 주차장에 포르쉐, BMW와 같은 고급 수입 차가 버젓이 서 있은 지 오래됐다. 세금 보조로 운영되는 임대 아파트 단지에 호화 차라니, 처음엔 잠시 방문한 차가 아닐지 눈을 의심할 정도다. 

임대주택 단지에 고급 수입 차가 유독 많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을 잘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짜인 현 제도하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매우 많을 것이다. 서울 등 선호 지역의 경우 “애초에 정해진 사람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당연히 임대 아파트 입주자 선발은 신뢰를 잃었고, 탈락한 대기자의 박탈감만 커지고 있다.

차량 보유 기준 관련해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입주 자격 심사 시 차량 가액이 일정 금액(2024년 기준 3708만원) 이하면 허용하고 그 이상이면 배제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임대 아파트 거주한 고가 외제 차 소유주

문제는 이러한 규정의 형평성과 실효성이다. 앞서 논란이 된 사례처럼 값비싼 수입 차를 모는 사람이 ‘저소득층’ 임대를 누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논란이 크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LH 임대주택 입주자 중 차량 가액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가 311가구나 되었고, 이 중에는 계약 해지 대상임에도 호화 차를몰며 계속 거주하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세금으로 지은 임대주택에 고가 수입 차를 주차해 놓고 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만연된 편법 사례다. 다음과 같다. ‘신청자·가구원 명의 등록 차량’ 의 가액만 합산되기 때문에 장기 리스·렌트 차는 리스사 명의이므로 자산 심사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고가 수입 차라도 임대 자격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가액 산정 시점 기준으로 입주 심사·재계약일에만 ‘차량 기준 가액표’로 평가하기 때문에 심사 직후 고가 차를 리스·렌트로 바꿔 타도 2년간 노출이 안 된다. 심사일만 피하면 된다는 회피 유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LH 조사에서 기준 초과 차량 중 24%가 법인·리스 차였음이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법인 명의 리스, 장애인 가족 명의 등록 등 편법 등록이 가능하다는데, 이런 것까지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예상된다. 결국 탈 많은 차량 기준은 눈 가리고 아웅식 규제일 뿐, 현장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산 기준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어이없다. 현행 임대 아파트 입주 자격은 총자산이 3억원대 중반까지도 허용된다. 2025년 기준으로 무려 3억4500만원 이하의 자산을 가진 사람까지 신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웬만한 자산가는 다 받아주는 셈이니, 임대주택이 정말로 어려운 서민만을 위한 제도인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산을 숨기는 꼼수도 충분히 가능하다. ‘금융·부동산’만 조회되는 현 시스템을 우회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재산만 따지니 서류상으로만 숨겨서 가난한 척하고도 임대 아파트 열쇠를 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상자산(비트코인) 보유·이체, 금(현물)·예술품으로 전환, 해외 계좌 분산, 시가 변동 큰 장외 주식 매입 등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사실상 구멍 난 그물이나 다름없는 자산 기준이 임대주택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소득 기준 역시 본래 취지에서 한참 벗어났다. 임대주택은 말 그대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것인데, 지금의 기준은 중산층까지 포괄할 정도로 높게 책정돼 있다. 정부는 최근 ‘통합공공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중산층도 입주할 수 있는 임대 아파트를 추진했다. 국토교통부 방침에 따르면, 4인 가구 기준 연 소득 8777만원(월 소득 약 731만원) 이하까지 신청을 허용했다. 웬만한 맞벌이 직장인 가정도 신청할 수 있는 수준으로,사실상 중산층도 임대 아파트를 누릴 수 있게 문을 연 것이다. 

애초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설계된 제도의 본말이 전도된 사례라 할 만하다. 소득 상한을 이렇게까지 올려 중산층까지 몰려들게 해 놓고도 과연 이를 공공 임대라는 이름으로 미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로또’ 임대 아파트 입주 추첨

더욱이 이렇게 높은 기준도 충족하기 어려울 땐 또 편법이 동원된다. 프리랜서·겸업 소득을 현금 결제 유도한다든가, 가족회사를 통해 급여를 쪼갤 수도 있고, 가구 분리로 1인 가구처럼 위장한다든가 등등 마음만 먹으면 국세청·건강보험 자료 기준의 연 소득 산정의 행정적 한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헐거운 자격 조건은 불필요한 경쟁률 격화를 초래한다. 시장경제가 아니라 항상 공급이 부족한 배급제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결국엔 누가 입주 기회를 얻는지가 요행에 따르게 되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인기 지역의 임대 아파트 당첨은 흔히 로또로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한데, 그 추첨 및 선정 과정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당첨자 발표 결과만 덩그러니 공개될 뿐,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항상 특혜로 의심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한화 꿈에그린’ 10년 공공임대주택에서 시행사와 분양 대행사 측이 전산 추첨 당첨자 13명을 바꿔치기해 입주시킨 사건이 경찰 수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13명엔 당시 제주대 총장 등 지인 및 유력 인사가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공공 임대주택 추첨·선정 과정의 ‘깜깜이’ 행정과 특혜 가능성을 여실히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실제로 암암리에 이뤄지는 선정 비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것이 뻔하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왜 모두가 임대 아파트를 바라는 세상이 됐느냐는 점이다. 집을 구하는 일이 원래는 개인의 책임이고 시장의 영역이어야 할 텐데, 지금은 너도나도 ‘국가가 집 한 칸 마련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가팽배하다. 이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은 이런 현실이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이렇게 가다 간 배급제로 이뤄지는 평양 시내 아파트와 다를 게 뭐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만하다. 그만큼 현재 임대 아파트 열풍은 우리 사회가 자유시장 대신 국가에 집을 기대는 사회주의적 발상에 길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취약 계층 주거 복지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임대 아파트 제도가 이제는 모두가 탐내는 특혜 상품처럼 되어버린 형국이다.

사실 임대주택 제도는 본래 주거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전반적인 중산층 기준이 높아진 시점에는 취약 계층의 상대적 기준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혜 대상자가 크게 줄어들면, 공적 임대주택 자체도 그규모를 줄여 조세 및 민간의 부담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엄청난 경쟁률 속에 정말 필요한 계층만 소외되고 있지 않은가. 

소셜믹스라는 미명하에 굳이 서울 고급 주거지에도 확보하려는 10년 임대주택엔 또 누가 들어가게 될까. 전수조사를 제안한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