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시대에 인류가 기계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적 노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듯이,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공감 지능’이 우리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다. 공감 지능은 단순한 경쟁력을 넘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근본 체력이다. AI라는 강력한 무기, 즉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필요하다. 그 중심을 잡는 힘이 바로 공감 지능이다.”

5월 21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공감 지능 시대’ 저자 김희연 롯데글로벌로지스 사외이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씨티은행에서 차장을, 노무라증권, 굿모닝신한증권, 현대증권 등에서 IT 애널리스트를 역임했다. 이후 LG디스플레이 최초 여성 CSO(최고전략책임자·Chief Strategy Officer)를 지냈다. 직업을 세 번이나 바꿨지만, 각기 다른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그에 대한 성공 비결로 ‘공감 지능’을 꼽았다.

김희연 ‘공감 지능 시대’ 저자- 현 롯데글로벌로지스 사외이사, 전 LG디스플레이 CSO 및 경영전략그룹장 마켓인텔리전스 IR 담당, 전 노무라증권·굿모닝신한증권·현대증권 IT 애널리스트, 전 한국씨티은행 차장
김희연 ‘공감 지능 시대’ 저자- 현 롯데글로벌로지스 사외이사, 전 LG디스플레이 CSO 및 경영전략그룹장 마켓인텔리전스 IR 담당, 전 노무라증권·굿모닝신한증권·현대증권 IT 애널리스트, 전 한국씨티은행 차장

‘공감 지능 시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LG디스플레이에서 퇴임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지난 33년 동안 나를 위해 가장 희생했던 이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절반 가까이 해외 출장 갔을 만큼 바빠서 애들 소풍 간식도 못 챙겨 줄 때가 많았다. 그 아이들이 벌써 커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인 아이들이 언제나 필요할 때 펼쳐볼 수 있는 ‘엄마의 직장 생활 비법서’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다.”

공감 지능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은 저걸 왜 좋아하지, 힘들어하지 등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감’이다. 이 마음이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고 문제를해결하고 싶은 행동으로 연결되려면 ‘공감 지능’이 필요하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건 나의 비용과 시간, 에너지가 들어가니 공감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순 없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함께할 수 있을까, 우선순위를 결정하려면 현명해져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공감 지능이다. 즉, 사회에서 조직에서 변화를 끌어내려면 단순히 ‘인간적인 공감력’을 넘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전략적인 공감 지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AI 시대에 특히 공감 지능이 필요하다고.

“AI가 모든 지식을 다 갖다줄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온전히 읽을 수 없다. 인간 마음은 참 오묘하다. 어떤 걸 좋아하다가도 지겨워지고, 싫어했다가도 좋아할 수 있다. 이런 감정을 AI가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더 AI가 발달하는 시대에는 타인과 공감하는 마음, 공감 지능으로 현명하게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기업이나 조직이 공감 지능을 활용한 사례는.

“공감은 지금까지 실력으로 불리지 못했다. 비즈니스에서는 성과와 무관한 따뜻한 감정쯤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공감이 고객 마음을 사로잡고, 매출을 올리는 엔진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돈에 따라 사람 등급이 매겨지는 금융권에서 고객과 공감 접점을 늘리는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회사는 디지털 시대니까 오프라인 지점은 줄이고, 돈 많은 VIP만 모셔다가 럭셔리하게 서비스하는 게 대세다. 그런데 미국의 JP모건은 정반대다. 소수 부자만 챙기는 대신, 동네 사람을 위해 지점을 아예 따뜻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철학으로, 동네 작가 전시회도 열고 자영업자 무료 컨설팅도해주면서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가. 은행 금리도 거기서 거기, 금융 상품도 비슷하다. 고객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몇 번만 터치하면 언제든 딴 곳으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은행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진심으로 배려받는 경험을 했다면 쉽게 떠날 수 있을까.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는 발걸음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 비슷한 세상에서 차별화하는 법, 결국 가장 따뜻한 전략이 고객을 가장 확실하게 붙잡는 똑똑한 방법이 된 셈이다. 

디지털도 모자라서 이제 AI 시대다. 모든 게 자동화되고 기계가 다 알아서 해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기술이 발달할수록 진짜 사람의 온기는 귀한 존재가 될 거다. 앞으로 매장이나 오피스에서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는 뭘까. 바로 ‘人테리어’다. 예쁜 가구나 멋진 조명보다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함이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 문화에서 공감 지능을 잘 발휘할 방법이 있을까.

“한국엔 공감을 발휘하기 좋은 문화가 있다고 본다. ‘나’보다는 ‘우리’,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여전하다. 우리는 ‘내 엄마, 내 아빠’라고 하지 않고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부르지 않나. 이 ‘우리’라는 단어 자체가 함께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한국만의 특별한 언어다. 공감 능력 면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환경인 셈이다. 

다만 대중 정서와 다를 때 ‘아니오’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공감 지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한국의 회식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공감 지능을 발휘하기 좋은 문화라고 본다. 물론 술을 잔뜩 마시는 게 아니라, 직원이 원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에서 소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팀 응집력도 생긴다. 사무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나 각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그 결과 직원은 조직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상사는 직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이해야말로 공감의 첫 단추다.”

시대 흐름에 따라 공감 능력 발휘가 점점 중요해지겠다.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달라.

“남과 공감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공감해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기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타인과도 잘 공감할 수 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존감이 높아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나는 건지 질문할 수 있다. 

과거 일등 회사였다가 상황이 어려워진 회사를 보면 오히려 성공한 리더가 있는 경우가 있다. 겸손하지 않은 자세로 기존 방식만고수하기 때문에 세상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목소리도 듣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흐름을 읽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겸손과 깨어 있는 마음(개방)은 한 축이다.”

책에서 ‘열심히 사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라고 했다. 현재 본인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공감 지능 시대’ 책을 냈다(웃음). 이제는 과거의 전문성에만 의존하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나누며 살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썼지만, 과거에 잘했던 일이 미래에도 정답일 것이란 확신은 없다. 그래서 AI 공부와 활용에 상당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는 여성으로서 드문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후배에게 전하고 싶다. 과거의 공감 능력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일하고 싶고, 공감 지능을 활용한 코칭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최고의 말을 건넨다면.

“모르는 것을 겁내지 말고 무기로 만들라. 그 방법은 겸손한 태도로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서 그치지 말라.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많이 경험하라. 직접경험뿐 아니라 독서와 여행을 통한 간접경험도 많이 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 경험이 모두 연결되면서 나의 아이디어가 되는 계기가 된다. 과거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큰 깨달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눅 들지 말고 겸손하게 질문하고 다양하게 경험하고 그 경험을 연결하는 습관을 만들면 어느 순간 내가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