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멜로즈 애비뉴. 세계적인 패션 스트리트 한복판에 한국의 컬러렌즈 브랜드가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컬러렌즈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안과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미국 콘택트렌즈 업계에선 전례가없던 일이다. 

주인공은 바로 ‘하파크리스틴’. K뷰티 인기에 힘입어 현지 소비자에게 컬러렌즈가 패션이자, 뷰티 아이템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시도 중이다. 하파크리스틴은 2019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피피비스튜디오스의 뷰티 렌즈 브랜드다. 감성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컬러렌즈 강국인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매출이 2019년 1억원에서 2023년 525억원으로 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선 ‘장원영 렌즈’로 유명하다. 2024년 상반기 매출은 3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0% 성장했다.

장준호 피피비스튜디오스 공동 대표- 전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전 대성창업투자 투자심사 팀장, 전 더웰스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 이사 /최효정 기자
장준호 피피비스튜디오스 공동 대표- 전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전 대성창업투자 투자심사 팀장, 전 더웰스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 이사 /최효정 기자

5월 7일 서울 성동구 본사에서 만난 장준호 피피비스튜디오스 공동 대표는 “컬러렌즈는 의료 기기지만, 동시에 패션과 뷰티의 정점에 있다”라며 “화장의 마무리, 패션의 끝은 바로 눈빛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벤처캐피털 심사역 출신으로, 2015년 투자자로 피피비스튜디오스를 처음 만났고 2017년 경영에 직접 참여하며 공동 대표가 됐다. 그는 피피비스튜디오스가 패션 브랜드 ‘CHUU’의 글로벌 성과를 이끈 경험을 토대로, 컬러렌즈가 ‘K뷰티의 다음 주자’ 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품었다. 그는 “한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컬러렌즈 제조사가 있지만, 국내 유통은 규제에 막혀 낙후돼 있다”며 “이 강점을 살려 콘텐츠와 브랜딩으로 해외시장을 직접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공동 대표 체제로 운영되는 피피비스튜디오스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에 방점을 찍은 브랜드다. 창업주는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며, 글로벌 뷰티 브랜드를 소싱하고 미국과 중국, 홍콩 등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초기에 제시한 인물이다. 장 대표는 “투자자로 알던 회사에 몸담게 될 줄은 몰랐다. 하파크리스틴은 단순히 렌즈 브랜드가 아니라, ‘뷰티와 기술, 콘텐츠가 만나는 경계’를 탐험하는 플랫폼이자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하파크리스틴은 2019년 일본과 중국 시장에 자사 몰을 열고 빠르게 성장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하파크리스틴만의 제품 착용 샷이 유행하면서 기존 렌즈 시장 규모가 1조원이 넘던 일본 시장에서 현재 매출 기준 4위로 올라섰다. 그는 “렌즈를 낀 모습 하나로 그날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색상과 패턴을 세밀하게 조합해 첫 상품부터 60종 이상을 출시하는 모험을 감수했다”라고 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하파크리스틴은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본격적인 국내 출시는 2021년부터였지만, 이미 장원영 렌즈로 불리며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를 중심으로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특히 감각적인 제품 컷과 소셜미디어(SNS) 바이럴을 통해 ‘렌즈도 뷰티템’이라는 인식을 퍼뜨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국내는 의료 기기 규제로 인해 안경사를 통한 유통이 필수이므로 직접 판매에 한계가 있어, 자사 몰보다는 안경원 네트워크를 활용한 B2B(기업 간 거래) 중심의 매출 구조다. 브랜드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경사 전용 예약 플랫폼을 도입하고, 국내 1만여 개 안경원 중 중소 매장을 중심으로 렌즈 유통을 다변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도 오렌즈, 렌즈미 등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흥 강자로 평가받는다.

1 피피비스튜디오스의 컬러렌즈 브랜드 하파크리스틴 패키지. 2 하파크리스틴의 플래그십 스토어. 3 하파크리스틴의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피피비스튜디오스
1 피피비스튜디오스의 컬러렌즈 브랜드 하파크리스틴 패키지. 2 하파크리스틴의 플래그십 스토어. 3 하파크리스틴의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피피비스튜디오스

하파크리스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순한 ‘제품 판매’가 아닌, 콘텐츠 중심의 브랜드 구축 전략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슬로건 아래, 렌즈 하나로 감정과 무드를 표현하는 브랜딩에 집중해 왔다. 매 제품에 스토리를 담고 사용자가 자아를 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전략이 핵심이다. 장 대표는 “우리는 렌즈 회사지만, 동시에 감정을 표현하는 콘텐츠 회사”라며 “하파크리스틴은 K뷰티의 시선과 디테일을 세계 표준으로 만드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파크리스틴의 최종 목표는 ‘미국 시장 정복’이다. 미국 시장은 콘택트렌즈 구매에 안과 의사 처방이 필요해 미용 목적의 컬러렌즈 시장이 전무한 상태다. 이 시장을 개척하기만 한다면, 미국을 넘어 세계 1위 컬러렌즈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장 대표는 “미국 콘택트렌즈 시장은 제약 회사가 운영하는 아큐브와 바슈롬 등 4대 렌즈 회사가 과점하고 있는 형태인데, 하파크리스틴이 컬러렌즈로 도약해 ‘제5의 렌즈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안과 의사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팝업 스토어라는 방식을 택했다. LA에 이어 마이애미 핫플레이스인 윈우드에도 661㎡(약 200평)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인플루언서와 셀럽을 초청해 직접 착용 인증 샷 등을 남기게 하고, K뷰티 브랜드를 들여 미용 체험 공간으로 조성하자 소비자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미용에 관심이 많은 히스패닉 등에게 인기가 많다. 

가장 큰 장벽은 안과 의사의 고정관념을 바꾸게 하는 것. 이들은 콘택트렌즈가 의료 기기이기 이전에 미용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에 거부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도 광고 대신 매장이라는 실체를 보여주는 공간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설득했고, 이는 소비자뿐 아니라 의료 기기를 중시하는 안과 의사의 인식 변화로도 이어졌다. 또 안과 의사를 설득하기 위해 안과 의사만의 개인 온라인 소매 숍을 열어 주는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렌즈 재구매를 통해 이들의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장 대표는 “미국에 컬러렌즈로 진입한 최초 브랜드라 많은 의심에 부딪혔지만, 이제는 오히려 안과 의사가 먼저 유통 제안을 해오고 있는 단계”라면서 “현재 미국 매출은 수억원 규모지만, 올해 사업이 본격화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파크리스틴은 미국에 이어 중동 시장 공략에도 나설 계획이다. 장 대표는 “중동 역시 뷰티 수요가 많고, 색조 중심의 K뷰티 인기가 점점 확산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특히 중동은 국가별 유통 규제가 다르지만, 소비자의 트렌드 감수성과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국과 더불어 핵심 전략 시장으로 삼고 있다.

해외 진출 성과 바탕엔 한국 패션과 뷰티 산업에 대한 인식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장 대표는 “K뷰티가 스킨케어를 넘어 색조, 헤어, 렌즈까지로 확장하고 있다”면서 “컬러렌즈는 감각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 뷰티 트렌드의 연장선에서 더 오래 갈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파크리스틴이 컬러렌즈 시장을 K뷰티의 일부로 굳히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최효정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