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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 코인은 스테이블하지 않다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암호화폐)은 민간 시장에서 유래한 용어다. 특정 자산이나 자산 바스켓과 연동해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가상자산이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스테이블 코인이 고정된 자산 가치와 동일하게 상환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상환 여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스테이블 코인 중 하나이며 발행량에서 절대적인 1위를 차지하는 테더(USDT)의 경우에도 2022년 9월 말부터 2023년 9월 말까지 1년 동안 일평균 가격 변동성이 약 2%포인트에 달했다. 시가총액 2위인 USDC도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1달러 페깅(pegging·고정)을 잃고 0.87~0.88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이는 USDC 발행사인 서클(Circle)이 준비금의 약 8%에 해당하는 33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실리콘밸리은행에 예치하고 있었는데, 은행 파산으로 해당 자금 안전성이 불확실해지자 시장 불안이 확산한 결과였다. 현재까지 어떤 스테이블 코인도 안전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인 완전한 가격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가상자산 생태계 외부에서 사용되지 않는 스테이블 코인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가상자산 업계의 주장과 달리 스테이블 코인이 가상자산 생태계 외부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생태계 내에서 교환 매체로 사용되며, 주로 법정통화와 가상자산 사이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가상자산 거래를 촉진하는 데 사용된다. 국내의 경우, 테더에 대한 수요는 대부분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거래 목적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자본의 해외 이전 및 비공식적 자금 이동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 스테이블 코인 수요는 실질적으로 규제 회피 수단으로서 가상자산 투자 수요, 자금 은닉, 탈세 및 자본 유출 목적 등에 기반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해석이다. 물론 가상자산이 전통 금융 시스템에 비해 기술적·비용적으로 국경 간 자금 이전에 우위가 있다는 점은 잘 알려졌지만, 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 필요성과는 별개의 논점이다. 원화가 통용되지 않는 해외시장에서는 사용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실질적 활용은 국내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 현저히 제한적

최초 스테이블 코인은 2014년 7월 발행된 BitUSD지만 스테이블 코인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반적 상승 후다. 2019년 50억달러(약 6조8300억원)에 불과하던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은 2474억달러(약 337조9400억원·5월 28일 기준)로 성장했다. 중요한 점은 최근 5년간 시가총액이 급격히 증가했음에도, 스테이블 코인은 약 100조달러(약 13조6600억원)에 이르는 글로벌 유동성의 0.2% 미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통화량 M2인 21조8000억달러(약 2경9778조8000억원·2025년 4월 기준)를 기준으로 해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은 1.1%에 불과하다. 36조달러(약 4경9176조원) 이상인 미국 정부 부채와 비교해 봐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은 0.7%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국채 수요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일부 가상자산 업계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통계적 근거가 미약한 과도한 해석에 불과하다.

미국 지니어스 법안의 상원 통과는 투자자 보호 목적

미국 상원의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통과는 표면적으로는 시장 건전화와 투자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테더 등 해외 발행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견제가 핵심 의도다.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에 미국 내 엄격한 자금 세탁 방지(AML), 고객 확인(KYC) 의무, 일대일 고유동성 준비금 보유, 정기적 투명성 공시 등 강도 높은 규제를 부과한다. 미국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해외 발행사는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특히 테더는 그동안 준비금 투명성, 자금 세탁 우려 등으로 미국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아왔으며, 지니어스 법안 시행 시 미국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법안은 미국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비미국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시장 진입 장벽을 대폭 높이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테더 견제 목적이 핵심 동인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테더의 유통은 불가능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2023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자금 결제법 개정안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은 원칙적으로 은행, 신탁회사, 자금 이체 업자 등 허가받은 일본 내 금융기관만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에도 일본 내에서 거래·유통하려면 일본 금융청(FSA)의 엄격한 등록 및 규제를 받아야 하며, 자금 세탁 및 테러 자금 방지(CFT)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행 규제 체계에서는 테더의 일본 내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 및 언론의 공통된 견해다. USDC의 경우 서클과 일본 대형 금융사인 SBI홀딩스의 협력으로 일본 금융청의 규제 승인을 받아 SBI VC 트레이드 등에서 거래할 수 있다. 이는 해외 발행 스테이블 코인 중 최초로 정식 라이선스를 획득한 사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국내 스테이블 코인 규제 면에서는 발행사 진입 요건, 준비자산 요건 그리고 건전성 기준에 대한 명확한 규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의 입법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 제도적 설계에 있어 국제 정합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BI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테이블 코인은 투자자 보호, 금융 안정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자금 세탁 및 테러 자금 방지, 금융시장 파편화, 통화 주권 침해 등 다층적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규제 공백은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될 정책 과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