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예외주의는 오랫동안 성공적인 흐름을 이어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기타 통계 지표로 볼 때, 21세기 들어 미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을 앞질러 왔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첨단 기술 기업이 자리한 곳이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투자자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미국 대형주 시장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13%의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유럽 시장의 6%와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문제는 트럼프의 파괴적인 정책이 이제 미국의 경제적 예외주의의 종말을 가져오고 있는지다. 이 같은 가능성은 4월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났는데, 트럼프 취임 이후 S&P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 대비 17% 넘게 하락했다. 이후 대부분 손실을 회복했지만, 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정부 내외의 주요 인사는 이러한 현상이 단지 시장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일시적 교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첨단 기술 분야의 우위, 기업 친화적 환경, 깊고 유동성이 높은 금융시장 그리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는 문화 등 미국 경제의 탁월함을 떠받쳐온 원천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낙관론자들은 ① 채권시장의 반란, 중간선거를 통한 정치적 심판, 사법부 판결 등을 통해 트럼프의 일탈적 정책이 통제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Panglossian take)은 최근 사건이 미국 경제 예외주의의 토대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토대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소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첨단 기술 지배력은 단지 활력 넘치는 민간 부문 덕분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대학과 정부에서 수행한 연구, 공공과 민간 부문 간 긴밀한 협력 덕분이다.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의 창업이 스탠퍼드대 근처인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차고에서 시작된 것이 우연이 아니며, 인터넷이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방위연구계획국(DARPA)과 국립과학재단(NSF)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것도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대학 및 정부 연구 자금에 대한 공격으로 이러한 협력 기반을 무너뜨렸다. 연구 자금을 삭감당하고 학문적·지적 자유가 제한된 미국 연구자들은 이제 다른 나라로부터 적극적인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있다.
이민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의 우수성과 실리콘밸리 같은 혁신 허브는 미국에 유학 와서 정착한 과학자와 기업가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 미국이 이민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지켜본 이들은 미국 유학 이후 정착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관세정책이 어떻게 미국 기업의 공급망을 교란하고 생산 비용을 높일 것인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물론 기업은 일부 생산 기지를 국내로 되돌리는(reshoring) 등 나름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자의적인 통상 체제에 적응한다는 것은 비공식적 뒷거래(under-the- table favors)를 제공하고 대가를 얻는 거래 관행이 자리 잡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래 중심적 사고의 대통령은 미국이 거래 중심 사회가 돼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제 높은 수익은 자발성과 혁신이 아니라 ② ‘지대 추구(rent seeking)’와 ‘정실주의(cronyism)’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백악관(Oval office)에 접근 가능성이 성공의 열쇠가 되는 기업 환경은 독과점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일론 머스크 같은 소수만 권력 주변으로 접근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③ 미국은 독과점이 강화될수록 비용 대비 가격이 더 올라 마진율(markup)이 증가하고, 신규 기업 진입률이 낮아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동성이 줄고 선도 기업과 후발 기업 간 격차가 커지는 현상이 함께 나타난다. 우리가 이미 수차례 경험한 현상이다. 머지않아 생산성 향상도 타격 입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은 법치주의에 달려 있다. 이는 수십 년간 ‘워싱턴 컨센서스’ 지지자가 개발도상국에 조언해 온 내용이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권력분립과 행정부의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권력 행사에 대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에 의존한다.
이러한 원칙은 미국 헌법 제정자가 잘 이해하고 있었던 바다. 하지만 최근의 미국 정치 상황은 헌법과 법률이 제공하는 안전장치가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을 움켜쥐려는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의회의 예산 결정을 무시하고, 독립적이어야 할 정부 규제 기관의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는 독립 기관의 수장을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으며, 줏대 없는 국회의원에게 ‘예비선거(primary)’를 이용해 겁줄 수도 있다.
그런 대통령은 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할 수 있다. 채권시장이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려 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선거라는 견제 수단의 경우에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부정함으로써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재산권도, 계약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여러 세대의 정치학자가 강조해 온 바와 같이 안정적인 재산권은 투자 결정의 핵심 요인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계약 집행은 상업과 무역의 근간이다.
일부는 다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이전 시대로 시계를 되돌려, 재산권의 안정성과 계약 집행의 신뢰성 그리고 법 앞의 평등을 미국 사회의 현실로 만들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 번 배운 교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많은 투자자는 고양이처럼 한 번 덴 뜨거운 난로 위에 다시는 올라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Tip|
①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5월 16일(이하 현지시각) 재정 악화를 이유로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한 이후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6%, 30년물 금리는 연 5.1%까지 치솟았다(가격 하락). 이날 실시된 미국 재무부의 국채 20년물 입찰이 예상보다 부진한 영향이지만, 트럼프가 ‘크고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이라고 부르는 감세안에 대한 국채 투자자의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감세안은 향후 10년간 미 연방 정부 재정 적자를 2조5000억달러(약 3400조원) 이상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채권시장이 경제 펀더멘털을 흔드는 반(反)시장적 정책에 맞서 금리 상승에 베팅하며 싸우는 것을 상징하는 개념을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고 부른다.
② 지대 추구란 기업이나 개인이 생산적 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기보다 정부 규제, 보조금, 독점권 확보 등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를 말한다. 정실주의는 기업이 공정한 경쟁이 아닌 정치권력과 가까운 특정 인맥과 특혜에 의존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는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경제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③ 시장을 소수 기업이 지배하는 독과점이 강화되면경쟁이 제한되고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이 경우 기업은 원가 상승과 관계없이 가격을 인상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제품 가격 대비 생산 비용 차이, 즉 마진율이 높아진다. 이는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고, 자원 배분의 왜곡과 실질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생산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마진율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해 왔으며, 이는 산업별 집중도 증가, 대형 플랫폼 기업의 확산, 규제 약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자유 경쟁 약화와 시장 효율성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