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은 첨단산업 육성을 앞세우며, 이를 저성장 국면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릴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예산이나 민관 합동 투자 계획이 언급되며 산업 부흥의 청사진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첨단산업의 중심에는 여전히 한국 성장의 견인차였던 제조업이 자리하고 있다. 내수 기반이 취약했던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했고, 수출 제조업은 오늘날에도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급속한 추격에 직면해 있으며, 대중 수출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중국 수입시장 내 한국 점유율은 2015년 10.9%에서 2023년 6.3%로 감소했다. 이는 중국의 첨단산업 자급률 상승, 과잉생산된 제품의 저가 수출 전략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차전지, 석유화학, 화장품, 철강·금속 산업이 그 타격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첨단산업 육성이 과연 한국 경제를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제조업 일변도의 발전 전략이 청년층 일자리 부족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산업화의 정점을 지나 탈산업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2011년 28.4%에서 2023년 24.3%로 하락했다. 이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아일랜드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일본이나 독일 같은 제조업 강국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높아, 향후 추가 하락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용 측면에서도 제조업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2000년 약 20%였던 제조업 고용 비중은 2023년 상반기 15.5%로 낮아졌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7~8%)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감소세는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경제가 이미 제조업 중심 구조를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후발 산업국은 대체로 임금과 자원 기반 경쟁에서 시작해 규모의 경제를 거쳐, 지식과 혁신 중심 경쟁으로 진화한다. 우리 사회 또한 선진국과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선진국은 설계와 브랜드를 담당하고, 개도국은 조립과 생산에 특화되는 국제 분업이 고착화하고 있다. 제조와 조립이 저개발 국가로 이전하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다름없다. 이를 거슬러 되돌리겠다는 것은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이나 리쇼어링은 이 흐름을 거스르려는 시도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구호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한국 제조업은 단순 조립이나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설계, 브랜드, 특허 중심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느냐가 생존을 좌우한다. 인공지능(AI)은 이 전환에서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도구라기보다는 지식재산을 축적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두뇌’ 역할에 가깝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 ‘첨단산업=성장’이라는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국민 70% 이상이 종사하는 서비스산업은 앞으로도 고용 중심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 산업의 생산성과 혁신 없이는 청년 세대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경제성장도 어렵다. 기업이든 정부든 산업정책과 전략의 초점을 수출과 제조업에서 내수와 서비스산업으로 확대하고, 보다 균형 있는 성장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