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 - 미국 켄트주립대 물리학 박사, 현 성균관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현 중국 후베이공업대 양자소재연구센터장,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 단장, 2005년 국가석학 1호 선정. /기초과학연구원(IBS)
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 - 미국 켄트주립대 물리학 박사, 현 성균관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현 중국 후베이공업대 양자소재연구센터장,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 단장, 2005년 국가석학 1호 선정. /기초과학연구원(IBS)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반데르발스 물질까지. 이차원 신소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는 한국 기초과학을 대표하는 과학자다. 이 교수는 2005년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국가석학 1호’로, 2010년대 중반 이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을 창단부터 이끌며 수많은 연구자와 후학을 양성해 왔다.

그의 석좌교수직에 붙은 HCR은 글로벌 학술 정보 업체인 클래리베이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s)’의 약자다. 논문이 인용된 횟수가 세계에서 상위 1%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2018년 이후 매년 세계 1% 과학자 HCR에 선정됐다.

이 교수의 연구는 1990년대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됐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처럼 연결된 원통 구조 소재로, 전기 전도성, 기계적 강도, 열전도성이 모두 탁월해 미래 소재로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금속성과 반도체성 탄소나노튜브가 혼재된 상태에서 반도체성 탄소나노튜브만 대량으로 분리,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당시 발표한 논문은 세계 주요 학술지에서 주목받았고, 한국의 나노 소재 연구 역량을 국제 무대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외에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의 바깥쪽 표면에 수소 원자를 부착해 반도체 성질을 띠게 하고, 공기 중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n형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의 양극성을 이용해 여러 기능의 논리회로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논리회로에 양과 음의 공급 전압만을 바꿔 주면, 전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이용한 방식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기존 실리콘 논리회로에 필요했던 것보다 트랜지스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집적도가 두 배 높아진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탄소나노튜브 한계를 인식했고, 이를 뛰어넘을 대안을 모색했다. 그렇게 연구 방향은 자연스럽게 그래핀으로 이어졌다. 그래핀은 흑연에서 원자 한 층만 분리한 형태로, 이차원 평면 구조 물질이다. 놀라운 전기적 특성과 기계적 유연성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꿈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교수는 대면적 그래핀 구조를 일반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래핀 특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방법을 찾아 다양한 전자 소자 구현 가능성을 제시했다. 2020년에는 네 개 층에 이르는 다층 그래핀을 단결정으로 성장시키는 합성법을 개발했다. 당시 단결정 그래핀을 네 개 층까지 합성한 것은 최초였으며, 장비 크기에 따라 다양한 면적으로도 합성할 수 있어 반도체 고집적 전극이나 광전극 소자 등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후 이 교수는 이차원 물질 연구의 핵심 개념인 ‘반데르발스 물질’로 연구 지평을 확장했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층과 층이 강한 공유 결합이 아닌 약한 ‘반데르발스 힘’으로 붙어 있는 구조다. 이 교수는 이러한 물질이 단층으로 있을 때 기존과 전혀 다른 전기적· 자성적 성질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해 신소재 개발 가능성을 탐색했다.

최근에는 반데르발스 물질을 태양전지에 적용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이 교수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그래핀과 반데르발스 물질을 이종 접합하면 차세대 태양전지를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글을 게재했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광효율과 전도도가 높고, 그래핀은 핫캐리어 물질로서 높은 전압을 낼 수 있으므로 이 두 물질을 결합하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다. 이 교수는 “머지않아 이러한 기술이 실용화돼 에너지 혁신을 이끌 것”이라 전망했다.

한계를 넘는 도전을 이어온 이 교수는 최근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이 교수를 만나 그의 연구 여정과 과학자로서의 삶 그리고 앞으로 목표를 들어봤다. 

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는 최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반데르발
스 물질에 대해 기조 강연을 했다. /한국물리학회
이영희 성균관대 HCR석좌교수는 최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반데르발 스 물질에 대해 기조 강연을 했다. /한국물리학회

최근에는 어떤 주제로 연구하고 있나.

“이번 한국물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반데르발스 물질에 대한 기조 강연을 했다. 그래핀이나 이차원 반도체처럼 원자 한 층으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이런 물질은 층과 층 사이가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약한 인력으로 붙어 있다. 우리가 아는 흑연도 그래핀 여러 층이 붙어 있는 형태다. 흥미로운 건, 단층일 때와 덩어리일 때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새로운 물리현상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반데르발스 물질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출발했다. 그래핀을 말아서 만든 원통형 구조인데,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고 기계적으로도 강하다.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았지만, 실제로 소자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정렬도 어렵고, 수율도 낮았다. 그래서 연구 방향을 이차원 물질로 틀게 됐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반데르발스 물질을 반도체 소자로 활용하려면 어떤 부분을 해결해야 하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접촉 저항’이다. 반도체 소자와 금속 전극을 연결할 때 전류가 잘 흐르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 수도관과 수도꼭지를 연결했을 때 틈이 생기면 물이 새듯이, 전자도 마찬가지다. 각 물질의 에너지 준위가 달라서 전자가 자연스럽게 흐르기 어렵다. 이차원 물질은 물질마다 에너지 수준이 달라서 맞추기 어렵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나.

“외부 전압으로 물질 에너지 준위를 조절하면 접촉 저항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지금도 다양한 조합과 설계로 실험 중이다. 내 목표는 이차원 물질로 실리콘보다 뛰어난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거다. 어렵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태양전지 효율을 높이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 들었다.

“태양전지는 기본적으로 빛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장치인데, 기존 물질로는 이론적 효율 한계가 약 34%다. 그런데 이차원 물질에서는 그 한계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를 통해 그 가능성을 하나씩 증명해 나가고 있다.”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연구 주제가 있나.

“스핀 소자 분야도 다루고 있다. 스핀은 전자의 고유한 양자 성질인데, 이를 이용한 소자는 전자가 아니라 스핀으로 작동하므로 전력 소모가 매우 적다. 전자의 스핀이라는 양자 성질을 정보로 활용하는 스핀 소자는 낮은 전력, 고속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컴퓨팅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연구실에서 스핀 소자에 적합한 이차원 물질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지금 논문을 준비 중이다. 실제 산업화 가능성도 꽤 크다고 생각한다.”

연구 이외에 즐기는 취미도 있나.

“유도를 오래 했고, 지금도 운동을 좋아한다. 오토바이도 탄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연구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하냐고 묻지만, 연구 안 하면 재미가 없다. 연구가 내 삶의 방식이자 즐거움이다.”

과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 하나만 만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하는 연구가 후배 과학자에게 이어지고, 실제 기술로 연결된다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홍아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