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수부대는 달빛도 없는 밤에 적진에 침투해 작전을 수행한다. 야간 투시경이 적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바꿔 한밤에도 적군의 움직임을 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연구진이 야간 투시경을 콘택트렌즈에 담았다. 렌즈를 끼면 눈을 감아도 앞이 보인다.
야간 투시경과 달리 별도의 전원도 필요 없어 상용화되면 군대는 물론 밤에 인명 구조나 긴급 공사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스파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적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변환
중국 과학기술대(UST) 제1 부속병원 안과의 쉐톈(薛天) 교수 연구진은 “적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변환하는 콘택트렌즈를 개발해 인간과 쥐 모두 적외선을 감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5월 23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밤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야간 투시경은 적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변환해 밤에도 볼 수 있게 한다. 쉐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콘택트렌즈는 야간 투시경과 원리가 같다. 연구진은 파장이 800~16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범위의 근적외선을 흡수해,포유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400~700㎚의 가시광선으로 바꾸는 나노 입자를 개발했다. 앞서 2019년 연구진은 ‘셀’에 이 나노 입자를 쥐의 망막에 주입하면 적외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쉐 교수 연구진은 이번에 눈을 손상하지 않고도 나노 입자의 능력을 구현하는 방법을 새로 개발했다. 바로 나노 입자를 콘택트렌즈에 넣는 것이다. 연구진은 무독성 고분자물질인 하이드로겔에 나노 입자를 넣었다.
하이드로겔은 고분자 물질이 그물처럼 연결된 형태로,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가 투명하다. 나노 입자는 그물 구조에 달라붙었다.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쥐는 적외선 파장을 볼 수 있었다. 쥐에게 어두운 상자와 적외선으로 비춘 상자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을 때 콘택트렌즈를 낀 쥐는 어두운 상자를 선택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쥐 눈에 적외선이 보여 피한 것이다. 다른 쥐는 무작위로 상자를 선택했다. 콘택트렌즈를 낀 쥐의 동공은 적외선 빛에 노출될 때 수축했으며, 뇌 영상을 분석해 시각중추가 작동하는 것도 확인했다. 쥐 눈에 적외선이 보였다는 말이다.


색각 이상 교정하는 데 활용 가능
쉐 교수는 “우리 연구는 인체에 손상을 주지 않는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신체에 착용하는 전자장치)를 통해 사람에게 일반을 능가하는 시력을 제공할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한 콘택트렌즈는 아직 야간 투시경처럼 밤에 훤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적외선을 충분히 감지해 낼 수 있다. 이 점에서 야간 투시경보다 더 실용적인 응용 분야가 있다. 야간에 조난자가 보내는 적외선 구조 신호를 감지하고, 암호나 위조 방지 정보를 확인하는 식이다.
쉐 교수 연구진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인간이 모스 부호와 유사한 적외선 신호를 정확히 감지하고, 적외선 빛의 방향을 인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쉐 교수는 “실험 참가자는 콘택트렌즈가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뒤 적외선의 깜박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연구진은 “특히 눈을 감으면 적외선 정보를 더 잘 볼 수 있었다”며 “근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눈꺼풀을 잘 투과하기 때문에 가시광선의간섭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콘택트렌즈에 들어가는 나노 입자는 적외선 파장을 구분할 수도 있다. 짧은 파장의 적외선은 파란색 계열의 단(短)파장 가시광선으로, 긴 파장 적외선은 빨간색 장(長)파장 가시광선으로 바꾸는 식이다. 나노 입자는 980㎚ 파장의 적외선은 파란색으로, 808㎚는 녹색, 1532㎚는 빨간색 빛으로 변환됐다.
연구진은 “콘택트렌즈는 적외선 스펙트럼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며, 동시에 색각 이상인 사람이 평소에는 감지할 수 없는 파장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인간에게 바로 적용하려면 나노 입자가 망막에 유출될 가능성은 없는지, 적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눈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자연환경이 아니라 발광다이오드(LED)에서 나오는 적외선만 감지했다. 연구진은 나노 입자의 감도를 높여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더 낮은 수준의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했다.

질환 진단하고, 약물 전달하는 렌즈도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안과 질환 진단과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네 개 부처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은 ‘2025년 10대 대표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 중 하나가 화이바이오메드의 녹내장 진단용 스마트 콘택트렌즈다. 화이바이오메드는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한세광 교수가 2014년 설립한 회사다.
녹내장은 안압(眼壓·눈의 압력)이 높아져 신경을 손상하는 질병이다. 때문에 평소 눈의 압력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기존에는 병원에서 일회성 검사로 진행돼 변동이 심한 안압을 꾸준히 측정하기 어려웠다.
한 교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 국내 콘택트렌즈 제조사인 인터로조와 함께 녹내장 진단용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 화이바이오메드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내부에 안압 센서와 안테나, 전극 등을 넣었다. 안압이 높아지면 녹내장 치료제인 ‘티모롤(timolol)’을 눈에 전달한다. 현재 인허가 시험을 준비 중이다. 연구진은 연내 비임상 평가를 완료하고 빠르면 2027년 스마트 콘택트렌즈 시스템을 상업화할 계획이다.
안과 질환 진단용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2010년대부터 개발됐다. 미국 구글은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측정하는 콘택트렌즈를 개발했으며, 스위스 센시메드가 개발한 녹내장 환자용 콘택트렌즈는 2016년 미국 시판 허가를 받았다.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박장웅 교수는 콘택트렌즈에 LED와 고감도 포도당 센서를 삽입, 눈물에 포함된 혈당이 기준치를 넘을 경우 빛이 꺼져 혈당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