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10대, 20대 학생의 가방마다 복슬복슬한 털에 토끼 귀, 큰 눈과 뾰족한 이빨을 한 인형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장난감 브랜드 팝마트(泡泡瑪特)의 인기 캐릭터 ‘라부부’다. 라부부는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Z 세대(1997~2010년생)에게 주목받고 있다. 태국 공주부터 K팝 그룹 블랙핑크, 팝스타 리한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 유명인의 소셜미디어(SNS)에 자주 등장하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세계적인 인기 때문에 라부부 인형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인형 밀수’ 사례까지 생겨났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최근 후난성 창사 황화 국제공항은 여행객 세 명에게서 라부부 인형 등 318개의 장난감을 압수했다.
안후이성 허페이 신차오 국제공항에서도 여행객 1명이 장난감 94개를 들여오려다 적발됐다. 세관은 이들이 해외에서 사 온 장난감을 중국에서 고가에 되팔아 이익을 취하려 한 것으로 봤다.
라부부 인형 중에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패션 브랜드 반스(Vans)와 협업 제품이다. 이는 개당 599위안(약 11만5000원)에 출시됐는데, 3만 개 한정 판매라는 희귀성 때문에 중고 거래 플랫폼 내 재판매 가격이 25배 이상인 1만4839위안(약 285만원)까지 뛰었다. 영국 런던의 한 쇼핑몰에선 라부부 인형 구매를 두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과열 현상을 우려한 팝마트 측은 영국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팝마트는 6월까지 영국 내 모든 매장에서 해당 제품을 철수할 계획이다.

쇼핑몰 매장에서 시작…30여 개국서 ‘오픈런’하는 캐릭터숍으로
팝마트는 창립자 왕닝이 2010년 베이징의 한 쇼핑몰 매장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디즈니, 마블, 워너브러더스, 해리포터, 스폰지밥 등 글로벌 슈퍼 IP(지식재산권) 아트토이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편집숍 형태였다. 지금은 세계 30여 개국에서 매장 50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선 서울과 수원, 고양, 부산, 안성 등에 매장을 두고 있다. 팝마트의 피규어를 자판기로 구매할 수 있는 ‘로보샵’도 전국 각지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그러던 팝마트가 자체 IP 상품으로 주력 사업 방향을 돌린 것은 2016년이다. 홍콩 디자이너 케니 웡이 2006년 어린이 초상화 그리기 자선 행사를 계기로 창작한 캐릭터 ‘몰리(Molly)’의 저작권을 인수, 각종 장난감 제품을 출시했다. 팝마트에 따르면, 케니의 초상화를 받아 든 어린이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케니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새침한 표정을 한 소녀 몰리를 탄생시켰다. 몰리의 흥행으로 팝마트는 단순한 장난감 가게에서 벗어나 자체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을 본격화했다. 몰리는 여전히 중국 안팎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팝마트 IP 중 하나다.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라부부는 중국인 최초로 벨기에 일러스트 선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디자이너 카싱룽의 캐릭터다. 다양한 요정이 살고 있는 북유럽 ‘더 몬스터스(The Monsters)’ 마을의 호기심 많은 원숭이 요정 콘셉트로 동화책 그림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인형, 피규어, 키링 등 제품으로 재탄생해 사랑받고 있다.
남 부럽지 않은 ‘IP 파워’를 갖게 된 팝마트는 이를 활용한 테마파크도 운영 중이다. 바이두에 따르면, 팝마트는 2023년 장난감 산업 최초로 중국 베이징 차오양공원 내에 몰입형 IP 테마파크 ‘팝 랜드(Pop Land)’를 개장했다. 팝 랜드에서는 라부부, 몰리 등 자체 IP를 활용한 몰입형 시설과 어트랙션을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게임과 쇼핑, 외식 등을 즐길 수 있다. 팝 랜드는 2026년 팝 랜드 시설 확장 공사를 시작한다.

랜덤박스로 구매욕 자극…실적·주가 고공행진
팝마트의 대표적인 성공 전략으로는 ‘랜덤박스’가 꼽힌다. 캐릭터를 다양한 디자인의 장난감으로 만들어 팬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 뒤, 디자인을 노출하지 않은 채 포장 판매해 ‘무작위 뽑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IP 팬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랜덤박스를 구매하거나 모든 디자인을 수집하기 위해 구매를 반복한다. 이런 전략 덕분에 지금은 매출 85%가 자체 IP에서 발생한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내에선 중독 우려로 8세 미만 어린이에게는 랜덤박스를 판매할 수 없다.
라부부 인기에 힘입어 실적과 주가는 고공 행진하고 있다. 중국 증권사 둥팡차이푸에 따르면, 팝마트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0%가량 증가했다. 해외 매출은 480% 급증했는데, 특히 미국에서 900%, 유럽에서 600%가량 늘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팝마트의 해외시장 마진율은 64.9%로, 중국의 60.6% 대비 높아 해외 매출 증가는 수익성 호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잇단 호실적에 주가가 치솟아 팝마트는 상장 5년 만에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중 27번째로 시가총액 3000억홍콩달러(약 52조8360억원) 기업이 됐다. 지난해 5월 1주당 37홍콩달러 선이었던 주가는 1년 사이 여섯 배인 220홍콩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라부부는 5월 검색 인기도가 헬로 키티를 넘어서는 등 슈퍼 IP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팝마트의 올해 글로벌 매출은 150% 이상 성장하고 202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4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은 또 라부부가 속한 ‘더 몬스터스’ 시리즈 올해 매출이 140억위안(약 2조6855억원)으로 지난해(30억위안)의 네 배를 웃도는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