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6월 2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전월세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며 전셋값이 지속 상승하는 등 전세 대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6월 2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전월세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며 전셋값이 지속 상승하는 등 전세 대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이 쏠린다. 과거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표심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무게감은 크지 않았다. 모두 주택 공급 확대를 내걸어서 후보별 방향성의 차별성 없이 뉘앙스 차이만 좀 느껴질 정도였다고 할까. 

각종 개발 공약이 난무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대선 때는 개발 이슈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전 정부와 180도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규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기보다는 공급을 늘리면서 시장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는 실용적 정책을 쓰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동산 공약을 보니

이번 대선 공약집을 읽어 보니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초고가 아파트 가격 상승 억제 중심에서 (벗어나) 중산층·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 중심의 주거 정책에 집중한다”는 대목이다. 

이 문장은 강남 중심의 비싼 아파트에 대한 양도세나 종부세 중과 등 수요 억제 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신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춰 수급 불균형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만큼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분양가 문제를 해소하고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도 내놓았다. 주택 공급 신속 인허가 제도 도입으로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사업비를 절감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성 강화라는 원칙에 따라 재개발, 재건축 절차와 용적률·건폐율을 완화하겠다는 것도 약속했다. 

재건축 사업의 최대 복병인 재건축 부담금을 어느 정도 낮춰줄지도 주목거리다. 재건축 조합원은 폐지나 유예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수준까지 제도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공 임대주택 확대를 위한 공약도 눈에 띈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 로드맵을 아예 법정화하고 청년·신혼부부·노년층까지 생애 주기 맞춤형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신혼부부 특별 공급 분양 물량도 늘리기로 했다. 특별 공급(민간·공공 분양)의 경우 신혼부부 기간 요건을 기존 7년에서 10년까지 늘리기로 했다. 결혼 후 강산이 한 번 바뀌기 전에는 청약 기준으로 신혼 신분이 유지되는 셈이다. 신혼부부 특별 분양의 소득 요건도 완화하고 민영주택 공급 때 9세 이하 자녀가 있거나 혼인 기간 10년 이내인 사람에게는 주택을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다만 소득·자산 고려해 기준안을 정하기로 했는데 추후 구체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5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통령 너머로 반포의 한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5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통령 너머로 반포의 한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 /뉴스1

공급 부족 불안 심리를 잡아라

요즘 주택 시장 불안은 향후 주택 공급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그 불안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집단으로 느낀다면 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이른바 집단 불안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이성적 과열의 끝에는 장기 무주택자가 뛰어들어 상투를 잡는다. 정부를 믿고 더 이상 기다려서는 나만 손해를 볼 것이라는 걱정과 조바심이 투기적 과열을 부른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극도의 불안 심리 증상을 겪고 있는 무주택자를 달래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급 확대 정책으로 1기 신도시의 신속한 재건축과 자족 가능한 3기 신도시를 내걸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급 계획을 좀 더 구체화하고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실천하고 속도를 낼지가 주택 시장 안정에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기다리면 집을 싸게 장만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확실하게 보내야 한다. 그 신호가 단순히 신호로 그치지 않고 믿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방 주택 시장 온기 돌까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또 주목할 부분은 지방 균형 발전이다. 공약에선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내 건립하겠다고 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산재한 122곳(직원 수 5만8208명)에 달하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추진하고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정주·교육·문화·인프라 지원 패키지를 병행한다. 직원이 주말이나 밤만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 생활하는 기형적 도시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세종시 완성과 지방 공기업 이전이 가속화하면 지방 주택 시장도 활기를 띠지 않을까 생각된다. 튼실한 유효수요가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남하하는 격이어서다. 

사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만으로 풀기 어렵다. 신묘한 요술 방망이로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없다. 지금 지방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공급과잉 이외에도 위축된 지역 경제, 젊은이의 유출 등 외적 요인이 복잡하게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단기간에 지방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기는 힘들다. 다만 정부의 각종 지방 규제 완화책에 공기업 이전, 금리 인하까지 겹치면 하반기 이후 다소 꿈틀거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연 2.50%인 기준금리가 하반기에 한두 번 더 인하될 것으로 금융계는 내다본다. 지방은 7월부터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6개월 미뤘다. 지방 아파트값은 대출 규제보다 금리 인하에 민감하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지방 부동산 침체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래도 여러 상황이 우호적으로 바뀌면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하반기에는 바닥을 다지면서 매물을 소화하는 과정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투 트랙 부동산 정책 필요할 듯

부동산 시장에는 두 가지 성격의 시장이 있다. 하나는 투자재 성격의 자산 시장, 또 하나는 실수요 성격의 상품 시장(혹은 공간 시장)이다. 다시 말해 자산 시장은 서울 강남처럼 투기적 수요가 넘쳐 불안정하지만, 상품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시장 구조다. 상품 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은 쉽다. 수요가 한정적이므로 집값이 오르면 공급만 하면 금세 잡힌다. 

하지만 강남 같은 자산 시장에서는 실수요뿐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투기적 수요가 많으므로 공급만으로는 집값을 잡기 어렵다. 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합리적 수요관리를 이용한 동시 처방이 필요하다.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방은 수요 진작, 수도권은 수요 조절이라는 투 트랙이 필요한 이유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반포 아파트값이 국민주택규모(84㎡) 기준 70억원에 달할 정도로 주거 공간의 극과 극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공약에서 고가 아파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책은 나올 수 있다. 어찌 보면 규제 완화나 규제 강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장 안정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약에서 ‘가계 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 확립’을 내걸었다. 부동산 가격, 금융 시스템 안정 정책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관계 기관 회의를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통화량이 급격하게 늘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적절한 유동성 관리를 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집값이 요동치면 수요 조절 방안으로 대출 카드는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