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개봉한 그레고리 호블릿(Gregory Hoblit) 감독의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살인 혐의를 받는 소년을 변호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법정 스릴러로, 예상을 뒤엎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이다. 제목 ‘프라이멀 피어’는 단지 범죄의 잔혹함에서 비롯된 공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말하는 ‘원초적 공포’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뜻한다. 이는 영화 속 인물의 심리뿐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조직이 마주하게 되는 경영 실패를 상징한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냉소적 변호사 마틴 베일은 명석한 두뇌와 언론 활용 능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사회 정의보다 자신의 명성과 성공을 더 중요시하는 그는 변호에 성공했을 때 돌아올 이익을 노리고 시카고 가톨릭 대주교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에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 분)’의 변호를 자진해서 무료로 맡는다.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다 붙잡힌 에런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고, 수사 과정에서 대주교가 그와 성가대 친구들에게 성폭력을 자행한 정황까지 드러나자 살해 동기마저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에런은 어눌한 말투와 순박한 인상, 흥분할 때 기억을 잃는 증상으로 인해 자연스레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물이었다. 마틴은 이 점을 이용해, 에런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앓고 있으며, 범행은 에런의 또 다른 인격인 ‘로이’가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판결을 앞둔 법정에서 마틴이 설계한 전략대로 검사가 에런을 살인자로 몰아붙이자, 흥분한 에런은 로이로 돌변해 검사를 공격한다. 이 과정을 지켜본 판사는 에런의 정신 질환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된 마틴이 교도소로 찾아가 축하를 건네자, 에런은 그때까지 사용하던 어눌한 말투를 버리고 냉소적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There never was an Aaron(애초에 에런은 없었어).” 결국 모든 것은 에런이 치밀하게 계획한 연기였던 것이다.


인지 편향과 정보 왜곡
‘프라이멀 피어’는 진실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진실’이라는 개념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경영 전략, 특히 의사 결정 과정에 자주 등장하는 ‘정보 왜곡(information distortion)’과 ‘인지된 진실(perceived truth)’ 개념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정보 왜곡은 정보의 수집과 전달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거나 의미가 잘못 해석되는 현상을 말하며,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편집해 유리한 방향으로 제시하는 고의적 왜곡. 둘째,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는 인지 편향. 셋째, 조직 내 위계나 전달 경로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오류가 그것이다. 이러한 정보 왜곡은 잘못된 현실 인식을 낳고, 결국 전략의 실패로 이어진다.
한편, 인지된 진실은 객관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뜻한다. 이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먼저 신뢰하는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그리고 권위자의 말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태도 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인지 오류는 업계 상식이나 통념의 형태로 굳어져 경영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거짓의 바다 위에 세운 전략
정보 왜곡으로 인한 경영 실패의 대표 사례가 ‘니콜라(Nikola)’ 사태다. 수소 전기 트럭제조 업체인 니콜라는 창업자 트레버 밀턴(Trevor Milton)의 화려한 말솜씨와 영상 발표로 실제보다 기술력을 과장했다. 특히,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트럭을 언덕에서 굴려 촬영한 ‘Nikola One’의 주행 영상은 고성능 수소 트럭이 개발된 것처럼 보였다. 영상을 본 투자자는 니콜라의 기술력을 믿었고 기업 가치는 단기간에 수십억달러로 폭등했다. 하지만 2020년 9월 힌덴버그 리서치(Hinden-burg Research)가 니콜라가 거짓의 바다로 기술력을 과장하고 투자자를 오도했음을 폭로하면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 밀턴은 2022년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23년 12월에는 징역 4년과 벌금 100만달러(약 13억원)를 선고받았다. 또한, 니콜라는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1억2500만달러(약 1730억원)의 벌금 지불에 합의했다.
마틴은 에런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다고 믿고 변호 전략을 수립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에런의 연기였음이 드러나면서, 마틴은 철저히 조작된 진실을 토대로 전략을 세웠음을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니콜라 사태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조작된 기술력과 허위 전망을 토대로 투자 전략을 세웠고, 결과는 참담했다. 이처럼 진위를 검증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한 전략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마틴은 정의보다 ‘승소’에 집착했고, 자신의 명성을 지키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진실은 도구로 전락했고, 마틴은 에런이 짠 허구의 시나리오에 휘둘린 희생자가 되었다. 이처럼 성과에만 집착해 전략을 수립할 경우, 전략이 진실 위에 세워졌는지 확인을 간과하기 쉽다. 특히 조직 내 리더의 시각, 즉 ‘프레임’이 왜곡되어 있다면, 구성원도 편향된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게 된다. 마틴이 에런의 인격 장애를 전제로 모든 법정 전략을 설계했듯이 조직에서도 일부 편향된 시각이 전체 전략을 왜곡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조직의 신뢰와 성과에 장기적 손실을 끼친다.
‘프라이멀 피어’는 정보가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진실처럼 포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런은 진실을 숨기는 수준을 넘어, 허구의 인격을 만들고 감정적 호소를 통해 마틴을 조종했다. 이러한 모습은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현대 기업의 보고서, 발표, 투자자 대상 설명회 등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때 자료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의도한 목적에 맞춰 재구성된 이야기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진실과 윤리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기로 끝난 로이의 연기’ 와 다를 바 없다.

전략가의 윤리와 통찰
현대 경영에서 전략은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환경 분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정보가 고의나 실수로 조작되면 전략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마틴은 에런이 만들어 낸 로이를 진실이라 믿고 변호 전략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그는 비록 법적 변호에 성공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연기에 속아 놀아난 꼴이 되어 전략가로서 철저히 패배한 셈이다.
전략은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해야 하며, 진단은 반드시 검증된 정보에 기반해야 한다. 정보는 단순히 수집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석과 재구성 과정에서 조직 내 프레임과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왜곡될 수 있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정보의 진위를 끊임없이 묻고 검증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전략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옳은 전략’을 고민하는 일이다. 영화 속 마틴처럼, 정보의 진실보다 성과에만 몰두하는 전략은 결국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처음엔 마주하기 두려웠던 진실, 그 원초적 공포를 끝까지 바라봐야 한다. 지략에 앞서, 진실을 꿰뚫는 통찰력과 그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