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 고물가, 미국의 관세 압박,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공급망 재편 등의 복합 위기는 모든 산업에 불확실성을 던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통한 ‘운영 효율’까지 챙겨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전략이 바로 운영 혁신(accelerated performance transfor-mation)이다. 기업 경영진이 불경기에 으레 꺼내 드는 ‘비용 절감’ 프로그램과는 접근 관점이 확연히 다르다. 운영 혁신은 성과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다. 비용 구조, 인력 운용, 공급망, 디지털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까지 전사 운영 방식을 통합적으로 재설계해 단기간에 성과를 가속하는 것이 핵심이다. 운영 혁신은 발본적인 내부 개혁을 통해 불황에도 수익성을 지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투자자가 매출 성장보다 현금 흐름과 수익성에 집중하는 지금, 운영 혁신은 기업 가치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전략적 해법이다.
베인앤드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운영 혁신을 실행한 기업은 평균 22%의 비용 절감과 함께, 고객 응답 시간 35% 단축, 제품 출시 속도 최대 50% 향상, 고객 만족도 15% 이상 개선 등의 효과를 달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변화가 빠른 테크 업계에서 인공지능(AI), 자동화,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의 기술을 전사적으로 접목한 기업은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 상각비 차감 전 순이익) 기준 최대 20%까지 이익을 개선하며, 위기에도 성과를 안정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그 사례를 짚어본다.
AI 칩 설계 시간 단축한 엔비디아, 운영 혁신으로 세계 1위
테크 업계에서 운영 혁신 도입의 모범 사례는 반도체 설계 기업 엔비디아다. 지난해 한때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른 이 회사는 내부 AI 연구 조직을 통해 칩네모(ChipNeMo)라는 AI 기반 반도체 설계 플랫폼을 자체 개발했다. 30년 동안 내부 반도체 설계 데이터를 거대 언어 모델(LLM)에 적용해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자사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며, 스펙 분석, 코드 생성, 회로 검증, 테스트 반복 과정을 자동화했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방식을 확 바꿔 운영 효율을 높인 것이다. 그 결과, 설계 시간을 기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였다.
칩네모는 기본적으로 챗봇과 코드 개발 및 분석 기능을 제공한다. 텍스트로 입력된 설계 의도를 기반으로 즉시 코드 형태의 하드웨어 설명 언어(HDL)를 생성하고, 기존 설계와 충돌 여부를 검토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를 통해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던 설계 변경 작업을 AI가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수정해, 엔지니어링 인력을 전략적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신제품 개발 주기를 5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고, 연간 수천만달러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AT&T, 수년 전부터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 혁신
통신 대기업 AT&T도 운영 혁신의 전형적인 실천 사례다. 이 회사는 전사 업무에 RPA와 AI를 광범위하게 도입해 운영 효율성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직원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존에는 사람이 담당해야 했던 기업의 반복적인 업무 절차에 로봇을 활용한다. 현장 기술자 배치 최적화 시스템에 RPA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기술자 스케줄을 배치할 때 지역·시간대·업무 유형에 따라 사람이 일일이 조정했다. 지금은 AI 알고리즘 기반으로생성한다. 이로 인해 기술자의 이동 시간은 30% 줄고, 현장 대응 시간은 25% 이상 단축됐다. 그뿐만 아니라 법무, 번역, 소프트웨어 개발 등 다양한 백오피스 업무에도 자동화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수백 쪽 분량의 고객 계약서 자동 번역, 법률 검토, 내부 소프트웨어 테스트 자동화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품질 검증(QA) 자동화 시스템 도입 이후, 개발자당 연간 200시간 이상의 반복 업무를 절감했고, 신규 소프트웨어 출시 주기를 평균 3주 이상 앞당겼다.
AT&T는 단순한 비용 절감 수준을 넘어 ‘조직 재설계’를 목표로 운영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업무 프로세스를 AI 기반으로 재구성하고, 인력을 고도화된 전략 업무로 재배치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 결과 고객 불만율은 감소하고, 순 추천 지수(NPS)는 상승하는 등 서비스 품질 지표도 개선됐다. 최근 베인앤드컴퍼니가 전 세계 자동화 담당 임원 8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동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일수록 비용 절감 효과와 더불어 파괴적 기술 도입 속도에서도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특히 정보기술(IT) 예산 20% 이상을 지난 2년간 자동화에 투입한 ‘리더 그룹’은 평균 22%의 비용 절감 효과를 달성한 반면, 투자 비중이 5% 미만인 ‘후발 그룹’은 평균 절감률이8%에도 못 미쳤다.

MS, AI 기반 재무 시스템으로 수익률 급등
마이크로소프트(MS)는 운영 혁신 전략을 AI와 결합해 ‘AI 에브리웨어’라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사례는 재무 부문이다. MS는 AI 기반 재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회계 분석, 매출 예측, 비용 분석 업무를 자동화했다. 그 결과 매출이 145% 증가하는 동안 관련 인력 증가는 단 15%에 불과했다. 이 시스템은 GPT 기반 언어 모델을 활용해 세금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고, 감사(監査) 대응용 자료를 자동 생성하며, 문서 내 오류까지 탐지해 수정 제안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재무 담당자의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들고, 전략 기획 및 고차 분석 역량은 강화되는 효과를 얻었다. 나아가 전사 재무 운영에 투명성과 속도, 정확성을 모두 확보하게 된 셈이다. 또한 MS는 자사 생산성 도구인 오피스365와 애저(Azure) 전반에도 AI 기능을 통합해, 영업, 고객 대응, 개발 등 전 부문에서 ‘AI 기반 운영’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AI 도입만으로는 성과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운영 혁신의 중요성을 입증한 대표 사례다.

운영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실행 전략’
많은 기업이 운영 효율성을 높이려고 AI, 클라우드, 자동화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 도입과 함께 운영 체계, 업무 수행 방식,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생산성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운영 혁신 성공의 핵심 조건은 △제로 베이스 재설계(ZBR) 기반 프로세스 혁신 △투자 대비 수익(ROI) 중심의 핵심 성과 지표(KPI) 재정립 △성과 중심 조직 문화 전환 △ 강력한 변화 관리 실행력을 꼽는다. 특히 ZBR의 시각에서 조직 개혁에 시동을 거는 것이 중요하다. ZBR은 백지상태에서 가장 이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여기에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존 조직 구조를 전제로 개선점을 찾는 방식과 대비된다. 실제로 ZBR을 도입한 기업은 도입하지 않은 기업보다 성과 개선 폭이 평균 1.5배 이상 넓었다. 첨단 기술 도입은 어떤 기업이든 자본만 있으면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실행 전략, 즉 운영 혁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성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다. AI나 자동화만으로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운영 혁신은 기술 도입이 아닌 비즈니스 운영 자체를 재설계하는 접근이며 진정한 성과는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누가 활용하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