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한 나라의 성장률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은 경제주체의 생산에 대한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경제지표다. 통화와 재정 정책의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GDP는 1930년대 국민소득계정을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지표로,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과도한 성장주의를 부추기고, 환경문제나 건강이나 행복 등 가치 있는 삶의 조건을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여전히 최고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새롭게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경제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집계 방식이 질보다 양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GDP가 생산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많다. 경제가 성장하다 보면 환경 파괴, 교통 체증, 범죄율 증가, 소득 불평등, 테러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GDP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GDP가 “정책적인 논쟁에 꼭 필요한 엄격함과 정밀함을 더해줬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체 소득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평등이 심화해도 전반적인 번영을 이룬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지속 가능성이 우리가 정의하는 번영의 중심에 놓이는 방향으로 가장 대표적인 경제 복지 지표인 GDP를 손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GDP는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건물. /로이터연합
GDP는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건물. /로이터연합

주류 경제학에서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분석 작업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연구에 대해 ‘순수 현상학적’인 것이라고 하면 얕잡아보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 1980년 발표한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현상학적 접근에는 선택이 뒤따른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역사적 사건이든, 개인이든, 국가든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생략할지의 선택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현상을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인식이 형성되며 인식은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의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복잡한 작업이다. 과거에 학자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경제를 잘 운영하는지를 두고 오랜 시간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지표가 대세가 되어버렸다. 바로 GDP다. GDP는 일정 기간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나타낸다. 약간의 조정을 거치면 GDP는 국민 총소득과 비슷해진다. 매우 간결한 지표이며 경제적인 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간편한 수단으로 널리 쓰인다. 

다이앤 코일이 2014년에 출간한 GDP 역사에 관한 저서에서 지적했듯, GDP의 출현은 경제정책에 관한 논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GDP는 1930년대 초 사이먼 쿠즈네츠가 개발했으며, 이후 정책적인 논쟁에 꼭 필요한 엄격함과 정밀함을 더해줬다. GDP 등장으로 정치인은 눈에 보이는 높은 빌딩을 발전의 증거로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여전히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GDP 성장 추이는 오늘날 국가 경제 성과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잣대로 사용된다. 

물론 ① 유엔 인간개발지수(HDI)나 세계은행의 번영 공유 프리미엄 지수 등 국가 복지 수준을 평가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가 다른 국가보다 성과가 좋은지를 판단할 때 GDP(또는 1인당 GDP)는 기본 잣대가 된다. 

GDP는 현대 경제학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한계도 점점 무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GDP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정치인이 지속적인 사회·경제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성장 수치를 사용하게 하고 있다. 유엔(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1년 보고서 ‘우리의 공동 의제(Our Common Agenda)’에서 GDP 중심 정책에 대한 커져가는 불안감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전 세계 정책 결정자가 보다 다양한 발전 지표를 채택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경제지표로서 GDP는 세 가지 핵심 약점이 있다. 첫째, 한 나라의 전체 소득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평등이 심화해도 전반적인 번영을 이룬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다수가 가난해져도 1인당 GDP는 증가할 수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2010년 저서 ‘끝나지 않은 추락(원제: Freefall)’에서 “파이가 커진다고 모든 사람이 더 큰 조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모든’은 고사하고 ‘대부분’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라고 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실제로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따져보지 않고 자국의 올림픽 메달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응원하는 것처럼 GDP 성장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는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설립한 ‘경제 성과와 사회 진보 측정을 위한 국제 위원회(CMEPSP)’ 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다. 스티글리츠, 센 등 저명한 경제학자가 참여한 이 위원회는 ② 최종 보고서에서 소득 분배와 불평등 같은 요소를 GDP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두 번째 문제는 ③ GDP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종종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활동에 보상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슈퍼리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동차, 대저택, 비행기, 요트를 많이 갖는 것을 넘어서, 더 많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을 뜻한다. ④ 특히 소셜미디어(SNS)와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최고 부유층은 더 큰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의 생각에 과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우식 바수 코넬대 경제학 교수 -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인도 정부 수석 경제자문관
카우식 바수 코넬대 경제학 교수 -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인도 정부 수석 경제자문관

전통 사회에서는 봉건영주가 마을 회의에 참석하면 조금 전까지 변화를 요구하며 논쟁하던 일반 농노은 침묵했다. 동일한 현상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소수의 온라인 플랫폼이 수십억 인터넷 사용자가 보고 듣는 것을 결정하면서 많은 이가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수단인 ‘목소리’를 잃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새로운 국가 발전 지표를 개발할 때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가질 수도,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된 사회를 가질 수도 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미국 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1856~1941)의 유명한 경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GDP가 미래 세대의 희생을 대가로 부풀려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활동을 하면서 GDP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 대가로 우리는 후손에게 뜨거워진 지구를 물려준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우리가 정의하는 번영의 중심에 놓이는 방향으로 가장 대표적인 경제 복지 지표인 GDP를 손봐야 할 것이다. 

Tipㅣ

① HDI는 국가별로 기대 수명과 기대 교육 연수, 평균 교육 연수, 1인당 국민소득(GNI) 등 네 가지 객관지표를 바탕으로 산정한다. 유엔 산하 유엔개발계획(UNDP)이 5월 6일(현지시각) 공개한 ‘2025 인간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HDI는 2023년 기준0.937로 집계돼 조사 대상 193개국 및 지역 가운데 20위로 평가됐다. 19위였던 전년도(0.928)보다 수치상으로는 개선됐지만 순위는 한 단계 내려갔다. 세계은행의 번영 공유 프리미엄 지수는 소득 하위 40%의 소득·소비성장률에서 총인구 소득·소비성장률을 뺀 값이다.

② 최종 보고서는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보건, 교육, 개인 활동, 정치적 지배구조, 사회적 연계, 환경, 범죄·사고·재앙, 실업·병·노령 등 여덟 가지 요인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계량 시스템의 중심을 경제적 생산에서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며 행복의 측정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에 주목해야 하고 △가계의 입장을 강조해야 하며 △소득과 소비를 재산과 함께 고려해야 하고 △소득, 소비, 재산의 분배를 좀 더 부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립통계경제연구소에 GDP를 대체할 ‘행복지수’ 개발을 지시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 새 지수 탄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③ 유럽연합(EU)의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불법적인 경제활동이나 지하경제를 반영시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여러 해 전 영국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성매매와 마약 거래를 GDP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도 영국에 앞서 “약물, 성매매, 밀수 등을 GDP에 포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GDP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지하경제로 인해 늘어날 수 있는 범죄율 증가, 테러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은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④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2024년 5월 BBC 인터뷰에서 AI가 생산성과 부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그 돈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돌아갈 것” 이라고 일축하면서 “각국 정부는 AI로 인한 불평등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 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처럼 유명 부호의 SNS 계정은 큰 영향력을 자랑한다. 

정리=이용성 국제전문기자

정리=박서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