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 /챗GPT
신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 /챗GPT

임원 한 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우리 회사는 기업 간 거래(B2B) 제조 기업이며, 새로운 사업은 기존 사업의 제조 기술을 활용하거나 기존 사업 고객과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에서 잘 맞는 제안이었다. 연구, 생산, 재무, 영업 임원이 사전 논의를 통해 시도해 볼만한 사업이라는 타당한 검토도 완료했다. 여기까지 듣고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누가 그 사업을 처음 제안했나요?”

“네, 우리 고객사 중 한 대기업의 연구 소장이 새로운 조성의 신제품을 개발해 시험한 결과, 성능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가 그 개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공동 양산화를 제안했습니다. 해당 기업의 자체 수요만으로도 우리 매출을 넘어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제안을 수용할 경우, 우리 측 책임자로는 누가 가장 적임자인가요?”

“그것은 회장님께서 선택하셔야 합니다.”

대기업의 연구 소장이 그 회사에 필요한 제품을 제안했다면, 시장과 기술 관점에서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시장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내리는 사업성 판단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교수나 연구원의 의견은 참고 자료일 뿐,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을 충분히 경험한 전문가라 하더라도, 단순한 합리성만으로는 부족하다.수년 전만 해도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으로 여겨졌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고, 미국·유럽·한국의 완성차 업체가 한국 배터리 기업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곳곳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르다.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은 이미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새로운 제조 사업을 고려할 때는 중국의 잠재적 지배력을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이 미흡해 보일 수 있으나, 중국은 시장성이 확인되면 빠른 시간 내에 고객이 원하는 가성비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인력, 자금, 원료,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 회사가 제안받은 제품은 다행히 현재 중국 시장에 존재하지 않아 개발 조짐은 없으나, 국내 수요는 명확하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고객과 함께 양산 공정 개발을 시도한다면 자체 시장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은 단기 성과를 넘어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예측하지 못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시련이 닥쳐올 것이다. 특히 대기업이 기술과 시장의 주도권을 쥔 사업 구조에서는 협력 중소기업이 장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은 결코 운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신동우 나노 회장 - 케임브리지대 이학박사,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회사의 생존을 걸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업은 굳이 내가 책임자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에게 큰 책임을 맡기고, 회사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아낌없이 지원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부여해야 한다. 성공하면 좋고, 여의치 않으면 발을 빼겠다는 식의 태도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을 하라고 누군가를 선택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규 사업 계획에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사업의 당위성, 모두 하나 되어 성공시켜야 한다는 비장함, 책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성공했을 때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거룩한 자부심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혼(魂)’이 담긴 사업이어야 한다. 

신동우 나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