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까지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경기 침체에 대응해 최소 2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추진 중이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경제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다.
국내 재정학계 대표 중견 학자인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6월 10일 인터뷰에서 “심각한 소비 위축으로 자영업자 매출 구조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추경을 통해 가계의 이전소득을 직접 늘려 소비 여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가계 소비 여력을 보강하기 위해 전 국민 지원금 형태의 현금성 보조와 지역화폐 등 소비 쿠폰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대료나 전기 요금, 사회보험료를 보조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구조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자영업 붕괴로 인한 민생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응급 처방 이후에 경제 체질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우 교수는 지원 방식에 대해 “전 국민 지원과 선별 지원의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했다. 그러면서 “소득 상위 계층은 이전소득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 국민 지원은 비효율적”이라면서 “저소득층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은 정밀 선별이 어렵기 때문에, 선별과 보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면, 기초 생활 보장, 장해급여, 아동 수당 대상자에게 25만원 상당의 현금성 바우처를 4개월간 지급하고, 일반 국민에겐 소비 쿠폰 할인율을 10%에서 30%로 높여 자율적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 있다”면서 “이런 접근법은 가계의 다양한 소비성향을 고려해 재정 효율성과 정책 효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추석 명절 전후로 돈이 돌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 같은 방식이 자영업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경제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 교수는 “현재 자영업 부진은 시장 경쟁의 결과라기보단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외부 충격 누적으로 인한 것”이라며 “지금은 연착륙을 위한 완충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소비 쿠폰 등 매출 회복 수단과 함께 폐업 지원, 전직 훈련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 패키지, 채무 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경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나.
세수 재추계를 통해 현재 재정 여건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근 세수 진도율을 보면 올해도 정부가 제시한 382조4000억원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조원 이상 세수 결손이 반복되면, 지방 교부금에 차질이 생겨 지방 재정에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세수 결손 규모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지출부터 논의하면 재정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세입 경정을 통해 국민에게 국가 재정 상태를 명확히 알려야 한다.”
세입 경정을 하면 추경 규모가 ‘20조원+알파(α)’보다 커질 수도 있겠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0.8%는 잠재성장률 1.8%보다 1%포인트 낮아, 이를 메우기 위해 약 25조원 세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온다. 세수 결손 규모가 불확실하지만, 세입 경정이 포함되면 추경 규모는 애초 예상보다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적자 국채 증가로 인한 신인도 하락, 시중금리 상승 등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국가신용 등급이나 금리 문제가 중요하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리스크다. 실물경제가 무너지는데 재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투자자 불안이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적자 국채가 신인도에 영향 줄 수 있지만, 재정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대응 의지를 강조하자, 외국인 주식 매수 증가로 코스피 지수가 2900을 돌파했다. 고무적이다.”
윤석열 정부 3년간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경제 전반을 조율할 컨트롤타워 기능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긴축 기조 속에 순 수출 등 대외 부문 성장 기여도가 약해진 상황에서 내수를 확장해 경기 둔화에 대응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감세로 세수가 줄었고, 그 결과 재정 정책이 작동하지 않았다. 정책 유연성이 완전히 마비됐다.”

2024년 2분기부터 1년 이상 ‘제로(0%)성장’ 수준의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원인은.
“수출 등 대외 부문이 강해지면 대내적으로 재정 여력을 비축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이끈 윤석열 정부 경제팀은 수출이 살아나던 2024년 1분기 중 예산 40%에 해당하는 210조원 이상을 조기 집행했다. 그 결과 1분기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1.3%로 ‘깜짝 반등’했지만, 이후 2분기부터 –0.2~0.1%의 저성장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과잉 지출한 뒤 경기 회복세가 약해질 때 대응 여력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미루며 경기가 장기간 위축됐다.”
지난해 관리 대상 재정 적자가 100조원을 넘어섰다. 예산 증가율을 2~3%대로 억제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국가 채무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무엇이 문제였나.
“표면적으로는 긴축재정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감세를 통해 조세 지출을 늘려서 확장 재정을 한 셈이다. 법인세 감세 등으로 세수가 급감하면서 재정 적자는 오히려 커졌고, 세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건전 재정’을 내세워 지출까지 줄이다 보니 경기 대응력이 마비됐다. 결과적으로 확장 재정을 하면서도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모순된 정책으로 인해 재정 효율성과 신뢰를 동시에 잃게 됐다.”
이재명 정부가 확장 재정을 추진하려면, 세수 기반 확충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코로나19발(發) 반도체 특수로 법인세 세수가 100조원을 넘었던 2022년을 제외해도 한국의 법인세 세수는 70조원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4년에는 60조원대로 급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기업 중심 세액 감면이 확대되며 실질적인 세수 기반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감세 효과는 일부 기업에만 집중됐다. 이재명 정부가 확장 재정을 지속하려면, 비효율적인 비과세·감면을 정비해 국세 감면율을 낮췄던 박근혜 정부 사례를 배워야 한다. 조세특례제한법에 있는 실효성 없는 비과세 감면 조항 수백 개를 정리하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수가 확충된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대한 세액공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런 글로벌 경쟁 압력이 한국의 세수 기반 확충을 제약할 것 같다. 이에 대응할 재정 전략은.
“글로벌 경쟁 환경을 고려하면, 조세만으로 산업을 유도하거나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제는 간접적이고 효과가 둔탁해, 최근에는 많은 국가가 직접 재정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한국도 전략산업에 대해서 비효율적인 조세 감면을 정비해 확보한 재원을 기반으로 타깃형 재정 지원 방식으로 정책 수단을 개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