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D의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仰望)의 첫 순수 전기 슈퍼 스포츠카 U9 / 사진 로이터연합
BYD의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仰望)의 첫 순수 전기 슈퍼 스포츠카 U9 / 사진 로이터연합

중국 전기차 업계의 극심한 가격경쟁에 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시장점유율에 과도하게 집착한 소모적인 경쟁으로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한국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는 5월 31일 업계 1위 비야디(BYD)와 지리자동차, 샤오미 등 주요 전기차 제조 업체 임원을 베이징으로 소집해 과도한 할인 자제를 촉구했다. 

공업정보화부 관계자는 당시 “자동차 기업의 무질서한 가격경쟁은 전형적인 내부 출혈경쟁으로,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를 어렵게 하고 제품 품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하면 자동차 산업 발전도 저해될 수밖에 없다. 가격 전쟁에는 승자도, 미래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 과도한 가격경쟁 감독 강화 △부당 경쟁 적발 시 처벌 강화 등을 예고했다. 

가격 인하 경쟁의 포문을 연 건 BYD였다. BYD는 5월 23일 22개 순수 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에 대해 6월 말까지 최대 34% 가격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테슬라 모델3의 대항마 ‘시라이언7(PHEV 기준)’은 15만5800위안(약 2900만원)에서 10만2800위안(약 1900만원)으로 5만3000위안(34%)이나 할인된다. 그러자 리오토(5월 25일), 지리자동차(5월 26일), 체리자동차(5월 28일) 등이 연쇄적으로 8~47%의 가격 인하책을 발표했다. 중국 전기차 업계의 지난해 평균 할인율이 8.3%였던 것을 고려하면, 할인 폭이 최대 5배가량 확대된 것이다. 

생산능력 커졌는데 소비 심리는 ‘꽁꽁’

BYD를 위시한 중국 전기차 업계의 고속 질주만 놓고 보면 당국의 개입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BYD의 2024년 매출은 7771억위안(약 147조1827억원)으로 전년 대비 29.0% 증가했다. 달러 기준으로 사상 첫 1000억달러(약 136조1700억원)를 돌파하면서 테슬라(977억달러)를 추월했다. BYD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유럽에서는 지난 4월 판매량 기준으로 처음 테슬라를 제치고 순수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특히 동남아를 비롯한 신흥국에서 전기차 시장 지배력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은 각각 78.2%, 50.8%에 달한다. 브라질(85.2%), 멕시코(62.5%) 등 남미에서도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와 전기차 시장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당국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2020년 전후 중국 정부 지원 아래 전기차 스타트업이 급증하고, 기존 자동차 업체도 속속 전기차 생산 시설을 늘리면서 생산능력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점이다. 전기차 연구 기관 로모션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에서 팔린 1763만 대의 전기차(PHEV 포함) 가운데 1158만 대는 중국에서 팔렸다. 그런데 중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능력은 7000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장조사 업체 가스구(Gasgoo)에 따르면, 작년 중국 자동차 공장 평균 가동률은 49.5%였다. 공장 절반 가까이는 멈춰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전기차가 잘나간다고 해도 아직은 중국 내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중국 밖 판매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BYD의 경우 2024년 430만 대의 전기차를 팔았는데, 약 90%를 중국에서 판매했다. 그런데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영향으로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다. 중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1% 하락하며 4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같은 기간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3% 하락하며 2023년 7월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이구환신(以舊換新) 프로그램 등 소비 진작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구환신은 헌 제품을 새것으로 바꿀 때 금융 지원을 하거나 판매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소비·투자 진작 정책이다. 중국은 소비재 프로그램에 배정한 초장기 특별 국채 기금을 2024년 1500억위안에서 올해 3000억위안(56조7000억원)으로 확대했다. 보상 판매 시 보조금을 주는 제품군도 확대했다. 하지만 물가 하락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으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자동차 업계의 영업이익률이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2024년 중국 자동차 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4.4%로 전체 산업 평균(6.1%)에 못 미쳤다. 지난 1~4월 영업이익률은 4.1%로 더 낮아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작년 중국 주요 전기차 제조 업체 50여 곳 중 BYD, 리오토, 세레스를 제외하고 모두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는 여전히 공장 신·증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수익성 저하로 자율주행·배터리·안전 등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품질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중국 자동차 업계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창청(長城)자동차의 웨이젠쥔 회장은 5월 23일 중국 매체 신랑재경 인터뷰에서 “중국 자동차 산업엔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이미 있지만 아직 터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가격 치킨 게임으로 수익률을 깎아 먹어 가며 판매량 경쟁을 하는 지금의 중국 자동차 업계 세태를 무분별한 투자·확장을 거듭하다 도산해 중국 경기를 침체에 빠뜨린 부동산 업체 ‘헝다’에 비유한 것이다. 헝다는 2021년 440조원대 부채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파산했는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헝다는 2019년 인수한 자동차 업체를 전기차 기업으로 변신시킨 뒤 홍콩 증시에 상장해 한때 중국에서 시가총액 1위 자동차 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모기업의 자금난이 겹치면서 부채 위기로 청산 과정을 밟고 있다. 

'과도한 저기 수출로 반중 감정 확산' 우려도

BYD의 정확한 부채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주요 외신은 수십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초 블룸버그는 홍콩 회계법인 GMT리서치의 자료를 인용해 BYD의 지난해 2분기 기준 순 부채가 3230억위안(약 62조원)에 달했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은 자국산 전기차 내수 과잉을 수출을 늘려 해소하려 한다. 미국은 조 바이든 정부 시절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00%로 인상했다. 미국 시장에 차를 판매하는 걸 사실상 의미 없게 해 버린 것. 유럽연합(EU)은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5.3%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BYD는 이런 상황에서도 유럽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칠 만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저가 수출 물량을 늘릴 경우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관계 개선을 원하는 주요국(자동차 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한국 등)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서 반중 감정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의 자국 전기차 업계 가격경쟁 제동에는 그런 고민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옥석을 가리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으로 보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전기차 업체는 2019년만 해도 500여 개 사에 달했지만 이미 100여 개 사로 줄어든 상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 업체 위주로 중국 전기차 업계가 재편되고, 구조조정 이후 살아남은 업체는 더 높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유럽과 캐나다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는 가운데, 보조금 없이도 차를 판매할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