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로서 하나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흔히 자기 눈앞의 것만 본다. 개인만 생각하지 조직의 일원으로서 나를 생각하지 못한다. 회사에 근무한다면 나를 포함한 직원 100명 모두를 하나로 동일시할 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단체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현재 처한 상황이 전체 과정에서 일부분이라 여길 수 있다.
한 척의 선박에 내가 승선하고 있을 때 전체로서 선박을 보지 못하면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선박은 선체가 있고, 브리지라는 곳이 있고, 그 위로도 마스트라는 것이 있다. 레이다의 안테나 같은 것이 꼭대기에 달려있다. 선체 가장 높은 곳보다 몇 미터 위에 구조물이 있다. 그 최고 위 구조물이 사고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5월 17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브루클린 브리지와 범선이 접촉한 사고가 발생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범선의 최고점 높이가 다리보다 높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다.
높이 30m인 선박만 통과가 가능한 다리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선박 높이(선박이 물 위에 떠 있는 높이)가 31m라면,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출항할 때는 30m였던 선박이 항해 중 청수(담수)와 연료를 사용하면서 무게가 가벼워지고 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선박이 물에 잠긴 부분을 드래프트(draft· 흘수)라고 한다. 드래프트 12m라고 하면 선박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선박이 물에 잠긴 부분까지가 12m라는 것이다. 반대로 드래프트에서 상갑판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를 ‘에어 드래프트(air draft)’라고 부른다. 선박이 공기와 맞닿은 부분이 얼마인지는 에어 드래프트로 알 수 있다. 선박이 출항할 때는 항상 드래프트와 에어 드래프트가 얼마인지를 알아야 한다. 선장과 항해사가 꼭 숙지해야 한다. 드래프트와 에어 드래프트는 출항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진다. 청수나 연료를 사용하게 되면 배가 가벼워지므로 에어 드래프트가 높아져 선박의 물 위 높이도 높아진다. 그러면 선박이 다리 밑을 지날 때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계산을 미리 하지 않고 출항하면 사고가 난다.

육지에서 트럭이 다리 아래를 지날 때도 트럭 높이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트럭 윗부분 최고 높이를 정확히 알아야 다리 아랫부분과 부딪치지 않는다. 트럭과 선박이 다른 점이 있다. 선박은 항해 중 항상 변화가 있다. 선박 아랫부분에 실려있던 청수와 연료유가 사용된다. 이렇게 되면 선박이 물에 잠긴 부분은 작아지고, 물에 올라와 있는 부분은 커지게 된다. 즉, 에어 드래프트가 높아진다. 트럭과 달리 선박은 항해하면서 높이가 달라지므로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접촉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겨울철 미국 알래스카를 지날 때 선박 윗부분이 얼면서 무게가 가해져 선박의 복원성이 약해지는 것도 유사한 내용이다. 출항할 때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출항 일주일 뒤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산항은 해수다. 그런데 파나마운하를 지날 때는 담수 지역을 지난다. 선박은 더 침하하게 된다. 25㎝ 정도 더 침하하므로 선박 드래프트가 더 깊어진다. 자칫하면 좌초 사고가 발생한다.
초임 항해사 시절에는 출항 시점 선박의 상황만 고려한다. 그럼 노련한 일등항해사와 선장이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날 일을 지적해 준다. 파나마운하를 지날 때는 드래프트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는지 물어본다. 미국의 동부 항구를 들어갈 때 안전하게 다리를 통과할 수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서야 ‘아차! 이런 것도 있구나’라고 알게 된다. 초임 항해사는 실무에서 선배들로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면서 성장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