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성장률 0%대(2025년)에 구원투수는 누구여야 할까. 경제 안보 시대에 마땅한 성장 동력도 없고 우방인 미국마저도 무차별적으로 관세 폭탄을 투하하는 신냉전주의 통상 질서에서 일자리의 보고인 수출마저 고개를 숙이고 있어 새로 들어선 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다. 내수로 눈을 돌릴 수 있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정해진 파이를 나눠 먹는 소극적인 정책에 그치면서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시 한번 공격적인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무역보국(貿易保國)’ 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출 세계 4강’이라는 슬로건하에 무역 통상 체제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 한국. 2024년 기준 국가별 수출액 세계 순위다. 한국은 2023년 8위에서 지난해 6위로 뛰어올랐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2002년 월드컵 신화를 수출 전선에다 다시 만든다는 결연한 자세로 네덜란드와 일본을 넘어 수출 4강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경제성장률 2.4% 중 수출의 기여도가 1.93%포인트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곳에 성장이 있고 일자리가 있으며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무역 통상 비전의 출발은 미국과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7월 8일까지 관세 폐지를 목표로 한미가 일괄 타결하기로 합의한 내용)에 대한 성공적인 마무리다. 이 협상은 경제 안보와 투자 촉진 등의 주제로 한정하되 세밀하게 다양한 카드를 만들어 ‘Yes, No’의 단순 딜이 아니라 ‘주고받기’가 가능하도록 협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이행할 때 해당 산업 원부자재에 대해 관세 철폐를 묶는 방식이다. 그래야 우리 투자가 수출 유발형 투자로 변신해 우리 원부자재 수출도 지속적으로 늘고, 미국도 일자리가 늘어나는 윈윈(Win-Win)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양국 관심사인 선박과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는 정부는 큰 틀만 정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기업이 결정하도록 이원화한 협상 체계를 가져갈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과 기술협력을 주요 테마로 한미 기업 간 글로벌 파트너십을 도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해 비즈니스 관점에서 중요 쟁점을 결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구도를 통해 미국 기업이 협력 파트너이자 우리 우군으로 자리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에도 통상 마찰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해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준비할 때마다 정부, 연구 기관, 경제 단체, 기업 등이 비공식적으로 참가해 가동한 ‘협상 대응 핫라인’을 상설화해 창조적인 협상 카드를 다양하고 신속하게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통상 협상에 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때 윈윈 협상의 구도가 마련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둘째로는 관세 폭탄이나 줄라이 패키지의 불협화음이 미국 수출에 대한 중단이나 감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미국 시장에서 우리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우리보다 서너 배나 더 어렵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하지만, 더 높은 관세장벽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견제로 신기술이나 원자재 조달 구조도 원활하지 않다. 또 다른 경쟁 상대인 베트남이나 EU의 여건도 결코 우리보다 유리하지 않다. 높은 관세율에 힘입어 미국 기업이 내수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우려할 수도 있지만, 일시적인 관세 조치를 기반으로 생산 시설을 늘리는 바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아이폰이나 전기차가 보여주듯 원자재 수입가 상승으로 미국 기업도 관세 폭탄 부메랑을 맞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연말부터 우리 수출 기업에 유리해진 저유가, 저금리, 고환율 기조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어느 정도만 지탱한다면 시장 확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더불어 해외 마케팅은 신뢰가 생명이라는 점을 감안해 관세를 빌미로 가격을 크게 변경하거나 거래를 중단하는 데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나중에 마케팅 네트워크를 회복하는 데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손해도 일정 부분 감수하면서 해외시장에서 바이어와 소비자의 지속적인 선택을 받도록 노력하는 중장기적인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로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전력해야 한다. 기존 10대 수출 상품이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음을 감안해 수출을 선도할 새로운 주자를 발굴해야 한다. 친환경 선박, 바이오 제품, 신에너지차(NEV·전기차, 플러그인하이드리드차, 수소전기차 등), 원전 플랜트와 관련 제품, 방산과 우주항공 등을 글로벌 톱 기업이나 제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민관이 지혜를 모아 반도체 같은 새로운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또한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모든 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비법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융합화 시대를 맞아 시도별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센터를 만들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이 외부의 융합 기술을 시의성 있게, 그리고 쉽게 공급받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중소 및 중견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 신시장 개척이나 신상품 개발 그리고 내수 기업의 수출 기업화 등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한한령(限韓令) 제거와 서비스 분야 FTA를 발효시켜 상품 중심의 한중 간 무역구조를 일자리 창출 효과가 두 배 정도 높은 서비스 위주의 수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로 정부의 규제 방식 변경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선 허가 후 사업화’에서 ‘선 사업화 후에 중소기업 규모를 벗어나는 매출이 발생할 경우 사후 조정 및 심사’로 변경해야 한다. 나중에 국내에서 허용하지 못하더라도 해외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친일자리적 규제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중소기업 금융 지원 방식을 무차별적 지원에서 선별 집중으로 변경해야 한다. 지원금 나눠 먹기나 정책 자금을 겨냥한 기업 출몰을 막아 기술혁신 기업의 글로벌화에 자금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어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로 무역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스타트업의 생태계 혁신을 통해 ‘본 글로벌(Born global)’ 기업이 쉽게 탄생하도록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 분야 스타트업의 전성시대를 열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는 스타트업의 부흥을 통한 신기술과 신제품 양산에 있다는 결연한 각오로 다양한 금융 지원과 해외 진출을 돕는 전담 창구 설립이 필요하다. 경력이 많은 기술 및 경영 인력을 활용한 스타트업 컨설팅 상설화도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에 수출 4강이 버거운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경험을 보유한 한국 무역호에 도전은 가장 자랑스러운 무기이자 내재된 DNA다. 청년 인재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비즈니스 베테랑에게 안정된 삶의 터전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 기업은 해외시장을 향해 힘차게 뛰어야 한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무역과 통상 분야에서 미국과 협상에서 전화위복의 전기를 마련하고 비즈니스 현장에 초점을 맞춘 창의적인 정책으로 전대미문의 성과를 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