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보훈단지에서 열린 한미 합동 현충일 추모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미군 참전비에 헌화하고 있다 / 사진 뉴스1
5월 22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보훈단지에서 열린 한미 합동 현충일 추모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미군 참전비에 헌화하고 있다 / 사진 뉴스1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앞선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북핵 억제 강화에 힘썼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와 발맞추면서 핵협의그룹(NCG)과 한미 공동 핵 작계지침으로 핵·재래식 전력통합(CNI)을 추구하는 등 동맹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중추국가(GPS)를 내세워 한반도를 벗어난 외교 안보를 추구했다. 이렇듯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 같던 한미 동맹은 2024년 커다란 두 가지 충격을 맞이했다. 우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재선이다.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안보 지형 변화

트럼프의 외교·안보는 신고립주의로 표현된다. 먼로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은 세계와 단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역에서 세력을 키우면서 영향력을 늘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먼로주의는 미국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1823년 의회 연두교서에서 밝힌 외교·안보 방침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상호 불간섭을 핵심으로 했다. 많은 이가 먼로주의를 미국의 외교적 고립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신대륙은 더 이상 유럽의 영향권이 아니며 미국 주도로 세력을 규합하려는 것이 본질이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먼로주의하의 미국은 19세기 내내 국력을 축적하여 2차 산업혁명의 신흥공업국으로 발전하면서, 미·서 전쟁으로 식민지를 획득하며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경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고립주의적 성격이 드러났고, 참전과 승전 이후 다시 고립주의로 전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은 냉전으로 미국은 고립주의 전통을 깨고 자유세계의 리더를 떠맡았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패전으로 국력이 흔들리자, 리처드 닉슨은 괌 독트린을 통해 또다시 고립주의를 추구했다. 이렇듯 미국의 고립주의란 신대륙에 갇혀서 나 홀로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을 회복시키고 힘을 키우기 위한 와신상담의 결단이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바로 이러한 먼로주의와 매우 닮아있다. 냉전 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해 국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해 왔다. 그러나 국내 경제는 어려워지고 국민이 초강대국다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고 트럼프는 지적한다. 이는 워싱턴 정가의 정치적 실패로, 국민을 힘들게 하는 기성 정치를 타파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메시지다.

MAGA 2.0 시대의 한반도 안보 구도

MAGA를 실현하기 위해서 트럼프가 할 일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의 타도였다. 또한 트럼프는 그간 수출로 흑자를 누리면서 미국에 안보 부담을 떠넘겨온 동맹국 및 협력국의 무임승차를 막는 것을 핵심으로 여겼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관세정책을 핵심 수단으로 삼아, 거래국들이 미국에서 큰 이익을 얻어가는 것을 막고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돌리도록 했다.

또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일본, 한국 등이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면서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특히 나토에 커다란 압박을 가하면서 주독 미군을 철수한다고 결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다시 동맹 중시 성향으로 복귀했다. 바로 이때를 이용하여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24년 트럼프가 4년 만에 다시 복귀하면서 미국의 대동맹 정책은 또다시 가혹한 경로를 걷게 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트럼프의 재선·공약과 트럼프 캠프에서 활동하던 외교·안보 책사들의 발언이다.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간한 공화당 재집권 설계도인 ‘리더십의 사명(Mandate for Leadership)’은 미국이 중국 억제에만 집중하고 각 지역 동맹국이 스스로 재래식 억제를 담당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이 지목됐다.

실제 트럼프의 안보 책사들은 주한 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더욱 힘주어 말하면서 한국에 자국을 지킬 준비를 하라고 촉구해 왔다. 대표적인 인사가 미 국방부 정책 차관으로 임명된 엘브리지 콜비다. 그는 심지어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고려해야 하지 않냐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왔다. 결국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를 주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계엄으로 인한 동맹 외교의 실기

한미 동맹을 뒤흔든 또 하나의 사건은 12·3 계엄이었다. 역내 든든한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미국은 우려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 정권 교체기에 일어난 사건이라 대응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가장 큰 우려는 계엄 이후 탄핵 국면으로의 전환이다.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 기능이 정지될 수밖에 없으며 한미 간 공조도 공전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정권 교체기에 한미 리더 간 조율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방향은 바이든 정부와는 정반대이기에, 바이든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한국 정부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특히나 충성 인사들만을 기용하여 장악력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 협상은 한미 동맹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협상이 될 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이다. 고(故)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1기 정부 때 오모테나시(진심 어린 환대) 외교를 통해 트럼프와 개인적 유대감을 높이면서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이후 일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로 미·일 정상회담을 하면서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런 일본조차도 트럼프의 관세 공세는 피하지 못했다. 한국보다 1%포인트 낮은 24%의 상호 관세를 부과받은 일본은 미국과 치열한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한국은 탄핵으로 대통령이 없어 미국과 협상조차 시작할 수 없었다. 그사이 미국에서는 주한 미군 감축이나 대북 협상 등 문제가 한국의 고려 없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심지어 워싱턴의 일부싱크탱크는 북한과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느니 북핵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느니 하면서 트럼프 외교팀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멀어진 사이 한국의 이익을 스스로 대변할 수 없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으면 협상 주체가 아니라 협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현실 인식과 대응

그래서 새 정부는 동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음을 확실히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선 중요한 것은 현실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찾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전략가들은 북한에 대한 안전만을 목표로 하는 한국과는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도 지금 눈앞의 이익과 대중 수출을 위해 눈치만 보다가 미래 산업을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 미국의 대중 견제 국면은 우리에게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의 목표를 북핵 억제와 한반도 평화에만 국한하지 말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대중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국제 규제 장벽을 지키지 않는 중국만이 이익을 보는 일이 없도록 미국과 협력해 나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안보에서 한미의 목표 공유는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만을 위협이라고 바라보고 있으나, 더 큰 위협은 중국임을 우리 역사가 말해준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중국이 통일을 도와줄 것이라는 어설픈 감성은 금물이다.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 정권의 생존을 떠받치는 것은 중국이다. 그리고 최근 서해 불법 구조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언제나 우리 빈틈을 타고 들어올 것이고, 언젠가 반드시 서해를 내해화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중국을 적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명확한 한계 속에서 한중 관계가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적절한 수준의 대중 견제를 동맹으로 제공해주면서, 반대급부로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과 관련, 더욱 확실한 보장책을 받아내야 한다. 더 이상 한반도에만 갇혀서는 한미 동맹이 생존할 수 없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