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도자란 자기 안의 어둠과 빛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합하여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람이다. / 사진 셔터스톡
진정한 지도자란 자기 안의 어둠과 빛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합하여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람이다. / 사진 셔터스톡

인간은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꿈꿔왔다. 이상적인 사회, 정의로운 공동체, 평화로운 세계를 바라며 수많은 지도자가 명멸(明滅)했다. 그들은 때로는 불멸의 업적을 남겼고, 때로는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들이 역사 속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지도자의 모습을 묻는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한 그가 가져야 할 능력, 성격, 가치관은 무엇인가. 

융 심리학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은 ‘자신을 통합한 사람’이다. 칼 융(Carl Jung)은 우리가 ‘자기(self)’라고 부르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그림자(shadow)를 들었다. 융이 말하는 자기는 단순한 자아(ego)보다 더 깊고 넓은 무의식의 중심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인격의 총체다. 그림자란 인간 내면의 억눌린, 숨기고 싶은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부끄럽고 두려운 부분, 그러니까 그림자를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자를 직면하고 그림자와 화해하려 한다. 그림자를 자기 안에 수용할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내면적인 전쟁’이다. 이것은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융은 이 통합의 여정을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 process)’이라고 불렀다. 

미성숙한 지도자는 대중의 불안 자극

미성숙한 지도자는 내면의 혼란과 갈등을 타인에게 투사(projection)한다. 투사는 개인이 자신의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결점을 외부 세계나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무의식적 행위다. 지도자가 자신의 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이 기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공동체는 지도자 내면의 불안에 휘둘리게 된다. 그런 지도자는 자신이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대중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 쓰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을 휘어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자기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속죄양을 외부에서 찾기도 한다. 그들은 외적 권위와 힘을 앞세워,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법안을 만들거나 정책을 수립한다. 공적인 법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면서 타인을 억압한다. 그들은 진정한 지도력은 결단과 통제라고 믿는다. 대중의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고, 그것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연산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외부의 압박과 고통 속에서 자랐고, 그로 인해 그의 내면은 깨어질 대로 깨어져 있었다. 연산군의 비극적인 전쟁은 그의 개인적인 그림자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그것을 외부에 투사하면서 결국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 폭정 혹은 사화(士禍)라는 형태로 표출된 연산군의 외적 전쟁은 피를 불렀고 비극으로 마감했다. 그는 미성숙한 인격으로 지도자가 되어야 했고, 당연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결점까지 끌어안아야 좋은 지도자

반대로 자기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그림자와 화해한 지도자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안정감이 있다. 그는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통합한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여정을 대중과 나눈다.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통해 타인과 공감하고,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끌 수 있다. 지도자의 신뢰는 강력한 카리스마나 권위가 아니라, 진정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개인적인 상처를 안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 상처와 고통을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그가 내세운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그가 극복해 낸 내면의 싸움에서 나왔다. 링컨의 지도력은 그가 겪은 고통을 대중과 나누고, 그 고통 속에서 모든 이를 위한 해답을 찾으려 했기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넬슨 만델라는 그림자 통합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했지만, 그는 백인 정권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며, 그것을 용서와 화해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만델라는 내면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함으로써,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공동체를 평화적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우리 현대사에서 김구 선생은 깊은 내면의 싸움을 거쳐 평화를 향한 지도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의열 투쟁을 벌이며 강한 분노와 저항을 표출했지만, 나중에는 그 격정을 민족 통합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백범이 해방 직후 북한 김일성과 접촉에서 일정 부분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통일에 대한 진정성과 민족을 향한 순수한 충정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백범일지’에는 자기반성과 내면의 통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나의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 나의 또 하나의 소원은 세계의 평화요’라고 말하며, 분열을 넘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은 다면적인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옥고를 치르며 기독교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키웠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승만은 독보적 인물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정부 수립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고, 수립되었더라도 공산주의 체제였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승만은 해방 후 권력의 정당성과 민주주의 가치 사이에서 내면의 균형을 잃어갔다. 초기에는 지식과 결단을 갖춘 지도자였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그림자의 통합이 무너지며 권위주의적으로 흐른 모습도 보인다. 이승만의 삶은 지도자가 그림자와 어떻게 대면하고 조절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종교 지도자 중에도 내면의 통합을 이룬 대표적인 이는 로마제국 시기 기독교 지도자 사도 바울을 들 수 있다. 바울은 초기에는 완강한 율법주의자였지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기 내면의 전쟁을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정신적 각오가 아니라, 자아와 그림자, 과거와 결별을 의미하는 깊은 통합의 과정이었다. 바울은 그 통합을 통해 더 이상 외부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본질을 향한 참된 길을 열어갔다. 바울의 지도력은 그가 내면의 변화와 통합을 이룬 결과였던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포함한 내면의 통합을 이룬 지도자는 대중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대중에게 ‘나를 따르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그는 대중과 함께 걸어가려고 한다. 강압적, 권위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가 이끄는 길은 자신과 대중이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변화와 성장을 함께 바라봐야

그림자를 통합한 지도자는 대중의 불안과 두려움을 볼모로 삼아 통제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영합하지도 않는다. 대중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리드한다. 이런 지도자는 단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 길에서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까지도 함께 바라본다. 그 길은 단지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과정이자 성숙의 여정인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결단력은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는 무조건적인 지배자가 아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는 존재, 자기 그림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하는 치유자(healer)이기도 하다. 그런 지도자는 대중의 이익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드러낸다.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좋은 지도자는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끌고 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결국 진정한 지도자란 자기 안의 어둠과 빛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합하여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시대를 넘어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