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발전을 기념하는 만신전(萬神殿· 판테온)에서 불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일본 닛신(日淸)식품(이하 닛신)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2007년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NYT) 부고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올해는 인스턴트 라면 탄생 67주년이 되는 해다.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는 닛신이 1958년 개발 판매한 ‘치킨 라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라면’을 꼽는 이가 의외로 많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물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라면이라는 것을 보면 맛있는 간편식 정도로만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닛신을 창업한 안도는 1910년 일본이 점령 중이던 대만에서 태어났고, 1933년 가족과 함께 오사카로 이주했다. 교토에 있는 사학 명문 리쓰메이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인이 미군이 빵을 만들고 남은 밀가루를 얻어서 국수를 만들어 먹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보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즉석 라면 개발을 결심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마침내 치킨 라면 개발에 성공했다. 아내가 덴푸라(일본식 튀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기름으로 튀기는 과정에서 습기가 날아갔는데, 끓는 물을 부으면 다시 촉촉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치킨 라면의 출시 당시 판매 가격은 개당 35엔(약 330원)이었다. 우동 한 그릇이 6엔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 고가였다. 그런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닛신의 2024년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7765억9400만엔(약 7조3000억원), 743억6900만엔(약 6990억6860만원)이었다. 국내 라면 업계 부동의 1위인 농심의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은 3조4387억원, 영업이익은 1631억원이었다.
닛신은 현재 미국과 브라질, 홍콩, 인도의 생산 가공 시설을 포함해 16개국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침체기에 창업한 닛신이 매출 7조원대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 비결 1│최고의 테스트 베드는 '실전'
닛신은 일본에서만 매년 약 300종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도 있지만 기존 제품에 새로운 맛을 덧입혀 변형시킨 제품이 많다. 새로운 실험으로 등장한 제품은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제품군은 그해의 주력 상품이 된다.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똠얌꿍(태국식 해산물 수프)’ 맛 컵라면과 지방 함량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진한 국물 맛을 살린 ‘나이스(Nice)’ 컵라면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2016년 4월 출시된 나이스 컵라면은 성인병에 대한 걱정이 일상화된 중장년층 남성을 겨냥해, 인기를 끌었다. 2021년 가을에는 펌킨(호박) 스파이스 향 컵라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핼러윈이 있는 가을에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 전문점 체인의 가을 시즌 인기 메뉴인 ‘펌킨스파이스 라테’에 착안한 것. 제품 출시 이전의 시장조사 결과나 관련 데이터에 큰 미련을 갖지 않고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냉정하고 기민하게 대응해 온 것이 꾸준히 히트 상품을 내놓은 원동력이 됐다. 라면처럼 제조 단가가 낮은 소비재 제품군에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성공 비결 2│현지화가 곧 국제화
닛신은 미식 천국 홍콩의 ‘국민 라면’ 브랜드다. 전체 라면 시장(컵라면 제외)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985년 현지 생산을 시작한 ‘데마에잇쵸(出前一丁)’ 라면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결은 현지화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데마에잇쵸 라면은 참기름, 간장 소스가 수프로 제공되지만, 홍콩에서는 흑마늘 기름과 돼지고기, 해산물을 포함해 15가지 다양한 맛으로 출시된다. 나라마다 입맛이 각양각색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현지인 입맛에 따른 차별화 전략은 필수 조건일 수밖에 없다. 홍콩 인구는 750만 명 정도지만 14억 인구의 중국 본토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의미가 크다. 홍콩에서 검증된 제품은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연간 약 4억 개의 라면이 팔리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1973년 미국 시장에 컵라면을 수출할 때도 현지화 전략이 빛을 발했다. 숟가락으로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면을 짧게 만들었고, 맛의 종류는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로 단순화했다.

성공 비결 3│젊은 층 사로잡은 마케팅
닛신은 골프와 테니스 등을 매개로 한 스포츠 마케팅에 열심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쿨(cool)’하게 유지하는 것이 미래 고객 확보에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TV 광고도 닛신이 젊은 층을 사로잡는 강력한 소통 도구다. 닛신 광고는 소위 ‘병맛’으로 불리는 엽기적이고 기괴한 유머 코드로 젊은 층의 주목을 받아왔다. 일례로 2016년 4월에 공개된 광고에서는 사람으로 변한 컵라면이 “보여줄게. 매콤한 꿈을”이라고 말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2015년 출시된 채소 라면 광고에는 인기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주요 등장인물인 베지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채소로부터 지구를 지킨다. 채소를 뜻하는 영어 단어 베지터블(vegetable)이 베지터(vegeta)와 비슷하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성공 비결 4│발빠른 판로 개척
1969년 오사카부(府) 도요나카에 있던 시장의 소매점주가 공동출자로 만든 슈퍼마켓 ‘마미’가 일본 최초의 편의점으로 알려져 있다. 닛신은 이후 컵라면을 중심으로 편의점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1971년 7월 20일 닛신의 컵라면은 일본 자판기에서 처음 판매된 식품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도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사무실에 최초의 컵라면 전용 자판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서 먼저 인기 끈 닛신 '컵누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즉석 컵라면’의 시초는 1971년 닛신이 출시한 ‘컵누들(Cup Noodles)’ 이다. 출시 당시 용기에 표기된 이름은 ‘Cup Noodle’ 이었는데, 미국 수출 제품은 영어식 어법에 맞게 ‘Cup Noodles’로 표기를 바꿨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Cup Noodle’로 표기한다. 치킨 라면을 일본에서 대히트시킨 창업자 안도는 이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성공을 꿈꾸며 미국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인은 뜨거운 국물에서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먹는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스티로폼 컵에 건조된 면과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간편하게 조리해 먹는 컵라면이었다.
미국인이 한 손으로 들고 포크로 면을 건져 먹기 편하게 용기를 디자인했다. 1970년 미국 지사를 설립했고, 이듬해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컵라면 컵누들을 선보였다. 컵누들은 이때부터 2016년까지 400억 개가 넘게 팔렸다. 미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 컵라면은 초기에 인기가 없었다. 값도 비쌌던 데다 누구나 집에 냄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매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1972년 나가노현 아사마 산장(山莊) 인질극 현장에서 기동대원들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TV로 방영되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편의점의 폭발적인 증가와 1990년대 1인 가구의 증가가 컵라면 인기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에서는 삼양식품이 1972년 컵라면을 출시했지만, 봉지 면보다 네 배나 비싼 가격에 고전하다 끝내 단종됐다. 이후 1981년 농심이 ‘사발면’을 내놓으며 부활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간편한 한 끼 음식으로 주목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