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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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쥐는 먹이사슬 관계다. 고양이는 포식자고 쥐는 피식자다. 쥐는 고양이 낌새만 맡아도 일단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자연계에서 고양이와 쥐의 협업이란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 특히 기업 세계에서는 이 ‘먹이사슬’ 관계에서도 협업이 가능하다.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비즈니스 환경이 복잡해지고 상호 의존성이 심화하면서, 극단적 경쟁자 간에도 ‘공존’이라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에는 삼성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반도체가 탑재된다.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관계다. 이 연결 고리가 끊기면양사 모두 타격을 입는다. 애플은 품질과 공급 면에서 안정성을 잃고, 삼성은 대형 고객을 잃는다. 치열한 경쟁 관계지만 상대를 죽이면 함께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게 두 기업 간 협업의 동력이다.

인텔과 AMD도 마찬가지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는 라이벌이지만 ‘x86 아키텍처’ 등 일부 기술을 상호 라이선스 형태로 공유한다. 특허 소송으로만 치달으면 시장 자체가 위축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정비센터 망을 새로 구축하는 대신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제휴해 미국 전역에 깔린 GM 정비센터를 활용한다. 테슬라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절약했고, GM은 기존 시설로 이익을 얻는 윈윈 모델이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시장에서 오랫동안 적대적 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면서 탄소 중립, 재활용 등 환경 이슈가 부각되자,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탄소 배출 규제, 소비자의 친환경 요구라는 외부 위협이 ‘무한 경쟁 전략’을 수정하게 했다.

윤은기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 -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윤은기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 -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글로벌 항공 시장의 양대 축인 보잉과 에어버스도 항공 산업 보호를 위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위기 당시 정책 건의에 한목소리를 냈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는 적도 잠시 동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경쟁사끼리 하는 협업이나 먹이사슬로 얽혀있는 기업끼리 협업할 때는 각별히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정보 유출 위험을 인식하라. 협업 과정에서 경영전략, 핵심 기술, 데이터가 상대에게 넘어가 ‘장기적 경쟁력 손실’로이어질 수 있다. 공동 프로젝트일수록 철저한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

둘째, 의존도 심화를 경계하라. 협업 상대방에게 의존도가 과도해지면,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잃거나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애플이 삼성 외 다른 부품사를 키우려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셋째, 법적 리스크를 점검하라. 담합, 독과점 혐의로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을 점검하라.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경쟁사 간 협력이 ‘반경쟁 행위’로 오해받기 쉽다.

넷째, 협력의 한시성을 인식하라. 본질적으로 먹이사슬 관계라면 잠시라도 이를 잊어선 안 된다. 시장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상대가 적으로 돌아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고양이와 쥐’ 같은 기업 관계도 때로는 협력과 협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협력은 냉정한 계산과 조건 위에 세워진 한시적 상황일 뿐이다. 따라서 협력의 순간에도 ‘상대는경쟁자’라는 인식을 놓지 않고 자산 보호, 의존 분산 등의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업만이 진정한 경쟁력과 생존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협업의 필요성도 커진다. 경쟁사와 절대 협업할 수 없다는 인식은 낡은 고정관념이다. 오히려 경쟁사와 협업, 적과 협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새로운 전략이다. 협업 경제는 점점 확산하고 고도화하고 있다. 지금은 ‘무한 경쟁’ 시대이며 동시에 ‘무한 협업’ 시대다.

고양이끼리 몰려다니거나, 쥐끼리 몰려다니면 새로운 기회는 다가오지 않는다. 협업에도 역발상이 필요하다. 미국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가 방영된 지 올해로 85주년이다. 숙적 관계인 고양이와 쥐를 공동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오랫동안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역발상에 새삼 감탄사가 나온다. 

윤은기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