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한국부동산원에서 수습 감정평가사로 근무하던 시절, 부동산 실거래가를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며 거래 일자 및 금액을 확인했었다. 실거래가 데이터는 가치 산정의 매우 중요한 자료인지라, 거래 사례를 많이 포착할수록 대상 부동산 평가 금액의 신뢰도는 더 높아졌다.
지금은 어떠한가. 부동산 플랫폼 사이트에 접속해서 부동산 소재지를 입력하기만 하면, 디지털맵에 최근 실거래 가격 및 매물 가격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디지털맵에서 특정필지를 클릭하면, 해당 부동산의 거래 내역뿐만 아니라 용도 지역, 이용 상황, 면적 등 부동산 기본 정보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일정 서비스까지 가입하면 인공지능(AI)이 친절하게 추정가를 제시해 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AI는 어떤 원리로 부동산 가치를 추정할까
부동산 플랫폼 사이트뿐만 아니라, 챗GPT 같은 생성 AI(Generative AI) 사이트도 부동산 주소만 입력하면 가치 추정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챗GPT 사이트에 접속해서 최근 자문 중인 수원시 구도심 토지의 가치 추정을 요청해 보니, 부동산 플랫폼 사이트에 비해서는 정교함이 떨어진다. 현재는 주변 공시지가와 실거래가 수준을 대략적으로 안내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동산 플랫폼 사이트의 AI 추정가는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데이터가 점점 축적되고, 부동산 가치를 예측하는 모델링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반영하면서 더욱 정교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AI는 어떤 원리로 부동산 가치를 추정하는 것일까. AI 플랫폼의 가치 추정 작동 원리는 대량 수집된 데이터를 딥러닝 같은 알고리즘에 지속적으로 입력해 부동산 가치 예측 모델을 구축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모델에 알고 싶은 부동산 소재지를 입력하면 실시간 연산을 통해 추정값을 산출한다. 복잡다단한 매크로가 잘 장착된 엑셀로 만든 재무 모델이 거대한 부동산 시장 데이터를 실시간 업데이트하며 빠르게 학습 및 연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아직 AI 추정가는 기술적 분석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분석이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시세 등을 예측하는 방법인데, 주로 역사적 그래프(차트)의 추세를 분석한다. 따라서, 시장 가격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상승 또는 하락의 추세 예측을 할 뿐, 그러한 가격 움직임의 원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AI 기반 밸류에이션의 장단점
부동산 AI 추정가는 계속 고도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동산 플랫폼 또는 생성 AI 회사가 부동산업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AI 기반 밸류에이션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자라면 AI 추정가의 장단점을 인지하고 이를 현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AI 추정가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혹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소재지만 입력하면 몇 초 만에 답변을 얻을 수 있고, 고가의 컨설팅 또는 조언을 받는 대신 저렴한 유료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예전과 달리 최근의 시장 동향이나 실거래가 데이터의 반영 속도가 빨라지면서, 결괏값의 적시성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머지않아 시장에 노출된 데이터는 시차 없이 즉각 반영돼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데이터 품질이 떨어지면 AI 추정가는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다. 데이터가 불완전하거나 편향되어 있으면 잘못된 밸류에이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예를 들어, 거래가 뜸한 지방 소재 농경지나 임야의 경우 고가에 거래된 친인척간 실거래 사례 하나가 전체 시세 수준에 영향을 주도록 알고리즘이 작동할 수도 있다.
이처럼 대상과 유사한 지역 특성, 부동산 유형, 이용 상황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부족해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사용자의 윤리적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AI 시스템을 조작하거나, 조작하지 않더라도 입맛에 맞는 AI 결괏값을 마케팅에 악용하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 중개 법인의 매각 안내 자료를 보면, 터무니없게 높이 산정된 AI 추정가를 별첨해 매각 예상가가 시세보다 싼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부동산 투자 시 활용 Tip
현재까지 AI 기반 가치 추정가는 거래량이 많고 규격화된 상품, 즉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은 꽤 정확한 경향이 보인다. 이에 반해, 거래량이 매우 적고, 개별 특성이 매우 강한 비정형 성격의 구분 상가나 지방 토지 등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따라서 AI 추정가를 신뢰할 수 있는 부동산 유형은 아파트, 오피스텔, 일부 거래가 많은 도심 권역의 빌딩 등으로 판단되므로, 아직은 이에 한정해 AI 추정가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AI 추정가 신뢰도가 높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AI 사이트의 밸류에이션 시스템별로 분석 데이터의 품질 수준과 양 그리고 이를 분석하는 메커니즘도 다르므로 다양한 범위의 결괏값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여러 플랫폼을 병용해 AI 추정가의 상한과 하한을 파악하고, AI 추정가의 가격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정 플랫폼의 AI 추정가 하나를 맹신해 의사 결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투자 의사 결정은 투자자의 몫이다.투자자 개인이 살아오면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통찰력(인사이트)으로 부동산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기본적 분석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좀 더 장기적 시각에서 부동산의 내재 가치와 펀더멘털 등 질적 측면을 고려해서 투자해야 한다.
AI 추정가는 인공 일반 지능(AGI) 단계에 이르지 않는 한, 아직은 기술적 분석에 의한 단순 참고용 가격 지표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나의 판단을 지지하는 검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나의 투자 기준이 정립되지 않으면 AI 추정가는 한낱 기계에 의해 가공된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자는 AI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AI를 의사 결정의 보완적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