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사회는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에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예고된다.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법정 정년 65세로의 단계적 연장’ 공약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 당사자 의견 수렴 후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입법을 임기 첫해인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과거 일부 논의에 머물던 정년 연장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이는 기업의 인사관리(HRM)에 있어 또 하나의 주요한 패러다임 전환이 될 것이다.
기회와 위기의 새로운 전환기
65세 정년 시대는 기업과 노동시장에 다양한 영향,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올 것이다. 효과적 관리만 전제된다면 숙련된 노동력 유지와 노하우 전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조직의 지식 자산 보호와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은 필요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토대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고령 근로자는 노후 안정성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근로자 개인 역시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줄어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근로 의욕과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취약한 노후 준비라는 현 사회문제 해결에도 힘을 보탠다.
반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공존한다. 우선 인건비 증대 압박이다. 정년 연장은 필연적으로 인건비 증가를 초래한다. 특히 현재의 연공서열 임금체계(호봉제)를 유지할 경우 기업의 재정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신규 채용 축소와 청년 고용 위축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존 인력의 장기 재직이 자동으로 신규 인력 채용을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속도와 일자리 수에 분명 영향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직 내 세대 간 갈등의 심화도 충분히 예견된다. 인사 적체와 역할 분담 문제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거나, 조직의 활력이 저하될 수 있다.
이런 양면성에 더해 새 정부의 세부 실행 정책은 해법 도출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은 내부 통제가 충분히 가능한 인사관리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

기억해야 할 세 가지
다음의 세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먼저 움직여 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경력 관리. ‘생애 주기’ 관점에서 재설계한다. 기업 구성원에게 경력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20~30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하염없이 그 실행을 미뤄왔다. 최근 들어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의 성장, 핵심 인재 유지와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일부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정도다. 이제는 생애 주기 전체를 아우르는 경력 개발 로드맵이 필요하다. 시니어(50대 이상 중장년층)를 단순히 ‘자리에 앉아 있는 고비용 인력’으로 치부하는 대신 ‘내부 컨설턴트’ ‘프로젝트 스페셜리스트’ ‘신입사원 멘토’ 등 새로운 직무로 전환해야 한다. 성장 마인드 세트(growth mindset)가 전제돼야 하고, 변화하는 기술과 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춤형 재교육(re-skilling)과 역량 향상(up-skilling)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경력 관리가 제대로 되면 구성원의 업무 몰입과 조직의 생산성 향상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둘째, 성과 관리. ‘연령 중립적’이고 ‘유연한’ 보상 체계를 구축한다. 인건비 증대 압박을 완화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직무-성과 중심’의 방향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 호봉제를 버리고 직무-성과 중심제로 전환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 직무 전문가, 경력직 중심으로 노동시장 구조는 이미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연공서열이 아닌 직무 가치와 성과에 기반한 보상 체계로 추진이 요구된다. 지속 성장과 조직 역동성 증진에도 이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임금 피크제 모델 고도화도 추진하고, 새롭게 정해진 시니어의 역할과 책임에 걸맞은 성과 관리 체계 디자인도 작업해야 한다.
셋째, 조직 문화 관리. ‘세대 공존’을 넘어 ‘세대 융합(generational fusion)’의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한 사무실에 20대 신입사원부터 60대 시니어 직원까지 무려 40년의 나이 차가 있는 세대가 함께 일하는 시대가 온다. 이들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공존’시키는 수준을 넘어, 각 세대의 강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세대 융합’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지혜, 청년 세대의 디지털 역량과 창의성을 결합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젊은 직원이 시니어 임원에게 최신 기술 트렌드를 가르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혹은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으로 구성된 ‘교차 세대 프로젝트 팀(cross-genera-tional team)’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세대 간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선진국 사례에 대한 고찰과 응용도 게을리할 수 없다. 법정 정년을 65세로 의무화한 일본은 ‘계속 고용 제도’ 를 통해 시니어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도요타 같은 제조 기업은 수십 년간 현장을 지킨 숙련 기술자를 ‘기술 고문’으로 재고용해 핵심 기술과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단절 없이 전수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독일의 한 제조 업체는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작업대 높이를 조절하고, 조명을 밝게 하는 등 생산 설비를 인체공학적으로 재설계했다. 또, 연령대가 다른 직원을 한 팀으로 묶어 생산성을 7%나 향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시니어 인력을 ‘배려’의 대상을 넘어 ‘생산성 향상’의 주체로 인식한 결과다. 결국 핵심은 유연성과 기업 맞춤형 접근에 있다.
정년 65세, 지속 가능성에 방점 찍어야
신임 대통령의 공약으로 정년 65세 시대는 이제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에 새로운 인사관리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거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년 65세 시대의 핵심은 단순히 나이 든 직원을 더 오래 고용하는 것이 아닌, ‘시니어 인력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조직 내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들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질문도 바꿔야 한다. ‘정년 연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정년 연장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조직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시니어 딜레마’를 ‘시니어 에너지’로 태세 전환할 시간이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