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교통부 장관과 얼굴이 정말 같은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는 거예요.” 20여 년 전 베이징 특파원 시절 만난 대기업 주재원이 “중국에서는 거듭 확인하는 게 거래의 필수 조건”이라며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우스갯소리 같은 이야기가 지난 1월 이탈리아에서 현실이 됐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위조한 이탈리아 국방 장관 기도 크로세토 목소리로 유명 기업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가로챈 보이스피싱이 발생한 겁니다.
이번 커버스토리 ‘악성 AI의 급습, 진화하는 사이버 범죄’는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고 등 국내외에서 사이버 공격이 잇따르는 상황을 계기로 사이버 보안 시장의 흐름과 과제를 짚었습니다. 전 세계 사이버 범죄 피해액은 올해 10조달러를 넘어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여섯 배 수준으로 커질 전망입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인간과학연구소의 미샤 글레니 소장은 “사이버 보안 분야에선 창과 방패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시 없이도 혼자 계획을 세우고 복잡한 작업을 완수하는 미래 기술 에이전틱 AI가 대표적입니다. 에이전틱 AI가 악성 코드를 만들고, 피싱 작전을 짜고, 금품을 요구하고, 비트코인 세탁까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집니다. 반면 보안 전문가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격을 실시간 감지하고 보고하며, 사람의 업무 부담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국가대표급 운동선수가 나쁜 길로 빠지면 막강한 범죄자가 되지만, 옳은 길을 가면 슈퍼 캅이 될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이버 공격은 기술 고도화를 넘어 대기업 협력 업체 등 공급망의 취약 고리에 침투하거나 국가를 배후에 둔 세력까지 경쟁적으로 가세하는 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경제주체의 사이버 보안 역량 강화가 시급한 시점입니다.
정부가 이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균형 감각입니다.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곱씹어볼 만합니다. “과학기술이 매일 눈부신 속도로 진화하는 오늘날,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보호와 혁신 사이에서 ‘문명의 균형 감각’을 절묘하게 구현하는 일입니다.”
K-메모리 반도체 위기, 외부 탓만 할 수 없다
기술 격차에 안주한 국내 기업의 ‘공룡화’와 투자 의사 결정의 둔화, AI 전환기에 맞춘 전략 미비까지 냉정하게 짚어낸 지난 호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와 컴퓨팅익스프레스링크 등 신기술 경쟁에서 ‘속도’와 ‘개방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지난 호 분석이 한국 반도체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김지윤 회사원
K-메모리 반도체…경쟁 아닌 생존의 문제
‘메모리 초격차’라는 말이 더는 방패막이 되기 어려운 시점이 왔음을 실감했다. 경쟁사가 AI 패권과 기술 내재화를 앞세워 약진하는 사이, 한국 기업은 영광에 취해 정체됐다는 비판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중국 기업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위협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현실에 긴장하게 된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전략이 기술을 이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 이정현 대학생
정책과 산업 전략의 엇박자, 기업 책임일까
반도체 산업은 민간이 주도하지만, 전략산업인 만큼 국가 정책의 역할도 절대 작지 않다. 지난 호 기사에서는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만큼이나 외교, 안보, 법제도 측면에서도 전략적 사고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처럼 보였다. 산업계를 향한 정교한 정책 지원과 글로벌 정세에 대해 민감한 대응을 병행해야 K-반도체가 다시 날 수 있을 것이다.
- 박세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