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이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24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란 전쟁 휴전을 발표하며 “중국은 이제 이란에서 계속 석유를 구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3월부터 이란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겠다며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의 소규모 정유 업체를 제재해 왔는데, 이런 대(對)중 정책에 대한 변화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화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이란의 대중 석유 수출 단속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거듭 비판해 왔는데, 트럼프는 취임 5개월 만에 입장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고 짚었다.
이성현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중국은 미국의 이란 공습을 공개적으로 ‘국제법 위반’으로 비난하면서, 자국에 대해서는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를 상대로 한 외교적 영향력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센터 방문학자,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등을 지낸 미·중 양국에 정통한 전문가다. 최근 신간 ‘미국의 본심: 트럼프 2.0 시대의 글로벌 각자도생 시나리오’를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의 이란 공습이 미·중 관계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
“최근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미·중 경쟁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이 중국에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 자체가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미국의 이란 공습을 공개적으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면서, 자국에 대해서는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히고 있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를 상대로 한 외교적 영향력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중국은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 삼아 다른 현안에서 미국 양보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2차 무역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의 미·중 합의는 갈등 해결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봉합에 가깝다. 중국의 희토류수출제한과 미국의 중국 유학생 제재를 맞바꾼 성격이 짙다. 트럼프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흥미롭다. 미국 원조 자동차 산업의 자부심인 포드자동차에 들어가는 중국산 희토류 부품이 조달되지 않아 공장이 멈춰 섰는데, 이를 비즈니스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승패를 논하자면,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국이 먼저 대화를 원했고, 트럼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성사된 회담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미·중 간 힘의 균형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한 분석가 표현처럼, 시진핑이 실질적인 양보 없이트럼프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라운드는 중국 판정승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중 갈등 양상이 어떻게 펼쳐질까.
“미·중 갈등은 단기적 현상이 아닌 미래 패권을 둘러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경쟁이다. 불씨가 되살아날 수준을 넘어, 이제 막 12라운드 권투 시합의 2라운드를 지났을 뿐이다. 양국은 서로 상대가 먼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시진핑의 강권 통치가 내부 분열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중국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을 약화시켜 스스로 쇠퇴할 것이라 믿는다. 양국 모두 ‘시간은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내부 분위기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1기 정부를 경험한 중국은 ‘트럼프와는 오늘 합의해도 내일 딴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협상에 응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도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일각의 G2(미·중) 공존론이나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에 대한 기대는 현실을 오판하는 낭만적 사고에 가깝다. 미국이 대중 정책을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전환한 것은 화해의 신호가 아니라, 유럽 등 동맹국을 대중 견제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적 용어 변경에 불과했다.”
신간 제목이 ‘미국의 본심’이다. 미국의 본심 그리고 중국의 본심은 무엇인가.
“미국의 본심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수호 같은 이상주의적 수사 뒤에 가려진 실제적이고 본질적인 국가 이익 추구 논리다.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역시 궁극적으로 힘의 수단에 의해 국제사회에 투영되고 있다. 중국의 본심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이다. 결국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논리 면에서 MAGA와 닮은꼴이다. 신간에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인터뷰로 지적했듯, 중국의 본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시진핑 개인의 공산당에 대한 절대적 통제력 유지다. 둘째는 공산당의 중국에 대한 완전한 통제다. 셋째는 ‘동방이 부상하고 서방이 쇠퇴한다(東升西降)’는 역사관에 따라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를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는 것이다.”
한국도 ‘각자도생 시대’를 준비해야 하나.
“우리가 각자도생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 사회 자체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백인이 9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64%다. 기독교인은 90%에서 62%로 줄었고, 현재 미국 인구의 5명 중 1명은 히스패닉이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아니다. 미국 사회가 체질 변화를 했다. 이는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이라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또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던 시대는 끝났다. 불확실한 국제 질서 속에서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과 더불어 자국 국력을 키우는 각자도생 전략이 필수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중 갈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더 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나 전략적 모호성에 기댈 수 없다. 그걸 미국도, 중국도 좋아하지 않는다. 강대국의 심리다. 내가 제시하는 방향은 ‘한미 동맹+알파(α)’ 전략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을 외교·안보의 근간으로 더욱 굳건히 하되, 알파에 해당하는 독자적인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경제·기술·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력을 키워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미국과 관세 협상을 조언한다면.
“트럼프 정부는 주한 미군 방위비 문제 외에도 소고기 월령 제한 철폐나 정밀 지도 반출 허용 등 민감한 비관세장벽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다. 최근 이란 폭격 역시 트럼프 정부의 더 큰 전략적 목표, 즉 이란 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 중동 문제 개입을 최소화하고 모든 역량을 중국과 패권 경쟁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각 사안에 대해 국익을 기준으로 한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단순히 방어하기보다는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반대급부를 제시·연계하는 실용주의적 협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미 의회, 백악관,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한미 동맹 중요성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전방위적으로 설득해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