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러쉬 매장. /러쉬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러쉬 매장. /러쉬

‘레몬 1t, 바나나 9t, 라임 5t, 꿀 62t, 올리브 오일 19t, 코코아버터 220t….’

영국 남부 도셋 지방의 항구 도시 풀(Poo-le)에 본사를 둔 ‘러쉬(Lush)’가 1년 동안 사용한 주요 재료 목록의 일부다. 러쉬는 과일 주스 회사가 아니다. 영국의 천연 재료 화장품 기업이다. 천연 재료를 사용해 만든 형형색색의 수제(手製) 비누와 입욕제로 인기가 높다.

러쉬는 2024년 기준으로 49개국에 88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24년 회계연도 매출은 6억9000만파운드(약 1조2755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판매한 제품 수는 1억 개를 훌쩍 넘어섰다.

러쉬의 전신은 두피 전문가 출신의 마크 콘스탄틴과 뷰티 테라피스트 출신의 리즈 위어가 1977년 풀에서 창업한 ‘콘스탄틴 앤드 위어(Constantine & Weir)’라는 공방이다. 이들은 과일과 채소, 식물, 꽃 등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염색약, 보디오일, 풋로션 등을 직접 만들어서 팔았다. 1980년대 초에는 세계적인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THE BODY SHOP)’에 제품을 공급하며 업계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당시 콘스탄틴 앤드 위어는 더바디샵 외에도 여러 곳에 거래처를 두고 있었고, 이 때문에 독점 공급을 원했던 더바디샵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콘스탄틴 앤드 위어는 1984년 더바디샵에 매각됐다. 인수 가격은 1100만파운드(약 203억원)였다. 이후 화장품 통신 판매 등으로 경험의 폭을 넓힌 콘스탄틴 앤드 위어의 핵심 멤버는 1994년 겨울에 새로운 천연 제품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고 회사 이름을 공모에 부쳤다. 그 결과 ‘러쉬(LUSH· 신선한, 신록 등을 뜻함)’라는 이름이 최종 선정되면서 1995년 4월부터 새로운 사명 겸 브랜드명으로 사용됐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더바디샵의 제품 공급 업체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탄생한 러쉬는 매출에서 더바디샵을 추월하며 글로벌 뷰티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싼 천연 재료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러쉬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코스메틱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 비결 1│포장과 광고 최소화해 비용 절감

콘스탄틴은 창업 당시 천연 재료를 고집하고, 광고를 하지 않으며, 포장을 세련되게 꾸미지 않겠다는 3대 원칙을 세웠다. 원가를 절감하면서 제품 품질은 높이기 위해서였다. 화장품을 비롯한 뷰티 산업은 전통적으로 포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러쉬 매장에 가면 비누나 입욕제 같은 고체 상품은 별도 포장 없이 덩어리째 진열돼 있다. 포장이 필요한 일부 제품은 반드시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한다. 또 용기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액상 제품을 고체로 대체했다. 액상 샴푸와 치약을 압축해 고체 샴푸와 치약으로 만드는 식이다. 포장을 없앤 것은 단지 비용 절감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천연 재료 배합으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제품 고유의 색감 때문에 포장을 없앤 것이 오히려 독특한 시각 효과를 만들어낸다. 포장하지 않으니 강한 향기가 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러쉬 매장 앞을 지나가면 강한 향기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게 된다. 포장을 없애 제품의 ‘맨살’을 드러내면서 비용 절감과 감각적인 마케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러쉬는 광고에도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메이저 화장품 회사가 매출의 20~30%를 광고에 쏟아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으로 공유되는 시대에 소비자가 더 이상 기업이 말해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됐다는 것이 러쉬의 콘스탄틴이 광고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된 이유다.

성공 비결 2│‘진정성’ 부각하는 매장 환경

경영학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란 의미로널리 쓰인다. 러쉬 매장을 찾은 고객이 기대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천연 재료가 주는 신선함’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러쉬의 노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바로 매장이다.

러쉬 매장에 가보면 화장품 매장이라기보다 식품 매장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콘스탄틴은 제품 진열 방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과일 가게에서 얻었다고 한다. 고객이 주문하면 커다란 덩어리 형태의 비누를 원하는 만큼 썰어준다. 유럽의 시장에서 치즈를 썰어 파는 것과 비슷하다. 수제로 만든 비누에는 꽃잎과 과일 껍질, 씨앗 등 재료 입자가 표면에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제품의 ‘신선도’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러쉬는 유통기간이 통상 14개월인 제품도 4~5개월 이상 매장에 두지 않는다. 이 같은 이유로 러쉬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일반적인 화장품 매장에서 느낄 수 없는 매우 ‘자연 친화적’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러쉬 공장을 ‘부엌(kitchen)’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의도에서다. 부엌의 입지도 전통적인 공업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러쉬는 현재 본사가 있는 영국 풀을 포함해 캐나다 토론토와 밴쿠버, 호주 시드니, 일본 도쿄, 독일 뒤셀도르프 등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친환경 도시다.

매장에 물을 담은 넓은 대야를 가져다 놓고, 입욕제를 넣어 거품이 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소비자가 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진정성 마케팅’의 일환이다.

성공 비결 3│‘업의 본질’에 충실한 사회 공헌 활동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기업의 사회 참여가 도덕적 의무나 자선 활동에서 벗어나,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차원에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쉬는 그동안 다양한 환경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해 뚜렷한 목소리를 내 왔다. 상당수의 경우 코틀러가 이야기한 ‘전략적’ 접근과 잘 맞아떨어졌다.

가장 유명한 것이 ‘동물 실험 반대’다. 러쉬는 동물 실험을 조금이라도 한 업체와는 절대 거래하지 않는데, 중국이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은 수입할 수 없다고 하자 중국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며 50조원이 넘는 시장을 걷어찼다. 이익도 중요하지만 자사의 핵심 가치와 모순되는 방향으로 이익을 추구할 경우 기업의 존속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비누에 들어가는 팜 오일(야자유)의 소비 증가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열대우림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그곳 동물의 생존이 위협받자 제품에 팜 오일을 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팜 오일 대신 해바라기 씨 오일이나 유채 씨 오일, 코코넛 오일 등을 섞어 만든 비누에 식물 성분과 에센셜 오일을 첨가해 수제 비누를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다른 업체도 팜 오일 사용을 줄일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러쉬 제품을 홍보 중인 조이 서그(조엘라). /유튜브
러쉬 제품을 홍보 중인 조이 서그(조엘라). /유튜브

성공 비결 4│공격적인 SNS 활용

광고비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러쉬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잠재 고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러쉬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어 수가 약 380만 명에 달한다. 최근 공유된 제품관련 동영상도 조회 수가 기본적으로 수만 건에 달할 만큼 호응도가 높다. 유명 유튜버 조이 서그(Zoe Sugg), 주노 버치(Juno Birch), 아타라 메이휴(Atarah Mayhew) 등 ‘러쉬 팬’을 자처하는 유명 인사를 활용한 ‘인플루언서 마케팅(SNS 스타나 등 영향력 있는 인사를 활용한 홍보 활동)’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조엘라’라는 활동명으로도 잘 알려진 서그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뷰티 채널의 구독자가 1100만 명에 달하는 초특급 인플루언서다. 매달 우리 돈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