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는 술을 찾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자 가장 중요한 조각은 바로 음식이다. 음식과 술의 최적 조화를 찾아내 최상의 맛을 얻어내는 것을 프랑스에서는 ‘마리아주(mariage)’라 하고, 영어로는 페어링(pairing)이라고 표현한다. 개인 취향이 반영되는 까닭에 마리아주나 페어링에 정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공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통주와 식문화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전문가 다섯 명이 쓴 책 ‘더 페어링’에는 “음식과 술의 페어링은 두 분야를 모두 알고 이해해야 하며 오랜 기간 숙련된 노하우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약간의 공식을 통해 조금 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더 페어링’의 저자가 정리한 음식과 술의 페어링 공식은 크게 다섯 가지다. 우선 무게감과 향의 깊이, 맛의 균형 같은 감각을 통한 것이다. 음식과 술은 대개 가벼운 느낌과 묵직한 느낌이 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보통 가벼운 느낌이 나는 음식은 가벼운 무게의 술과 잘 어울린다. 또 무겁게 느껴지는 음식은 알코올이나 조직감이 묵직한 술과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담백한 닭백숙은 가벼운 술과 어울리고, 닭볶음탕처럼 여러 양념이 들어간 무거운 느낌의 음식은 보디감(와인을 입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질감 등)이 무거운 술과 어울리는 식이다.

맛의 분류도 중요하다. 단맛·신맛·짠맛·쓴맛·감칠맛에 따라 어울리는 술의 종류도 달라진다. 짠맛이 강한 음식은 단맛이 나는 술과 함께해 단짠(달콤하고 짠)의 조화를 이루는 게 일반적이다. 짭조름한 어리굴젓은 달콤한 막걸리와 함께하고, 소금을 많이 넣어 발효시킨 고르곤졸라는 단맛이 강한 포트 와인과 어울린다. 식재료 특성과 조리법에 따라서도 페어링은 달라진다. 우리나라 ‘부침’ 요리는 기름기가 많아 이를 잡아주는 산도가 높은 술, 또는 탄산이 들어간 술과 어울린다. 오븐 등 열로 조리하는 음식은 훈제 향이나 불 향이 입혀지기 때문에 술도 오크통 숙성을 했거나 불 향이 있는 것으로 골라 음식에 맞춰야 한다.
마지막은 소스다. 특히 한식은 젓갈이나 장, 식초같이 다양한 소스가 음식에 활용돼 소스에 따라 음식과 술의 페어링이 크게 달라진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하는 발효 생선 소스 베이스의 음식은 짠맛과 감칠맛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어느 정도 줄여주는 당도 높은 술이 어울린다. 한국의 간장·고추장·된장은 제조법과 재료가 각기 다르고, 향미도 복합적이어서 술과페어링하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전통주 전문가가 쓴 책 ‘향기로운 한식, 우리 술 산책’에서는 “술과 음식은 비슷한 맛을 동일하게 하는 방법 또는 상호 보완의 방법으로 어우러진다”며 “전반적으로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는 술과 음식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달콤한 음식에 담백한 술을 마시면 술맛이 써져 달콤한 술을 짝지어야 하고, 염분이 산을 중화하는 원리를 떠올려 짭짤한 음식은 산도 높은 술과 함께해 날카로움을 무디게 한다.
비 오는 날엔 막걸리, 페어링 과학의 결과
어떤 음식에 어떤 술이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답이 어느 정도 있다. 음식과 술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을 먹어야 한다’ ‘치맥(치킨과 맥주)’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정도다.
하지만 ‘더 페어링’은 다섯 가지 공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상식을 깨는 페어링을 제안한다. 물냉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로 스파클링 와인인 ‘간치아 프로세코’가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 와인인 간치아 프로세코는 새콤달콤한 맛과 청량한 느낌이 특징이다. ‘더 페어링’의 저자는 “물냉면의 시원하고 심심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육수와 (와인이) 매우 잘 어울린다”며 “와인의 산미가 육수의 식초 맛과 같은 역할을 하고, 탄산이 추가돼 개운한 맛을 더욱 부각한다”고 했다.
‘더 페어링’은 군만두에 신평양조장의 ‘백련 스노우 생막걸리’를 짝지었다. 책은 “막걸리의 단맛과 술지게미의 부드러움이 군만두의 기름을 살짝 감싸면서 식감을 가볍게 한다”며 “입안에서 밀가루 외피와 막걸리의 쌀이 잘 어우러져 맛을 향상시킨다”고 했다.
짬뽕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에는 고량주나 소주가 아닌, 화이트 와인이 들었다. 저자는 프랑스의 ‘도멘 슐룸베르거 2019’가 짬뽕과 가장 잘 어울린다면서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품종에서 오는 단맛이 짬뽕 국물의 매운맛과 잘 어울린다. 와인의 단맛과 약간의 신맛이 짬뽕의 매운맛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다시금 와인의 맛을 보며 즐기는 것도 좋다”고 했다.
와인·사케, 페어링 공식 이미 정립
전통주와 달리 와인이나 사케(일본식 청주) 같은 술은 페어링의 원리가 잘 정리돼 있다. 와인은 타닌(tannin), 알코올, 오크, 보디감 등으로 강도를 표현하는데, 복합적인 맛과 향, 질감이 무거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강도가 센 와인은 무거운 요리에, 가벼운 질감의 와인은 가벼운 느낌의 요리에 매칭하는 식이다. 조리법도 중요한데, 재료를 익히지 않고 생(生)으로 먹는 음식은 대부분 강도가 약한 화이트 와인과 구운 고기는 레드 와인과 매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케도 비슷하다. 사케는 등급에 따라 음식을 매칭한다. 높은 등급의 긴조(吟醸), 다이긴조(大吟醸), 준마이긴조(純米吟醸), 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醸)는 술의 섬세한 맛을 살리기 위해 음식도 생선회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것과 짝짓는다.
사케의 맛과 향에 따라 매칭하는 방법도 있다. 사케는 맛과 향에 따른 분류인 쿤슈(薰酒), 소슈(爽酒), 쥰슈(醇酒), 쥬쿠슈(熟酒) 등으로 나뉘는데, 쿤슈는 맛이 부드럽고 깨끗하며 향이 강해 주로 식전주로 사용한다. 또 조리하지 않아 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과 매치한다. 소슈는 맛과 향이 부드러운 사케다. 담백하고 연한 요리와 어울린다. 쥰슈는 맛은 진한 대신 향이 부드러운 사케로, 주로 말린 생선이나 참치, 디저트류와 맞춘다. 쥬쿠슈는 숙성 사케로 맛과 향이 모두 강해 조미료를 썼거나 튀김류, 숯불구이 등 농후한 맛이나 향을 가진 음식과 잘 맞는다.
음식과 합(合) 찾는 시도 부족한 전통주
관능 특성 파악해 음식과 조화 이뤄야
전통주와 음식의 페어링에 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 경우는 많지 않다. 다양한 연구와 고민이 있는 와인이나 위스키, 맥주 등과 다른 부분이다. 경희사이버대 호텔관광대학원 호텔외식 경영학석사(MBA) 과정의 송은숙씨가 2018년에 쓴 석사 학위 논문 ‘전통주와 음식 매칭에 관한 연구’가 그나마 깊이 접근한 경우다. 이 논문에는 우리 전통주 6종을 선정, 대학생 250명이 이들 전통주와 어떤 음식이 어울릴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가 담겼다. 선정된 전통주 6종은 ‘황진이주’ ‘복분자음’ ‘복분자 막걸리’ ‘감홍로’ ‘문배주’ ‘솔송주’ 등이다. 선정된 술은 별도의 관능검사(사람의 오감을 활용해 술의 맛과 향, 질감 등을 판단하는 것)를 거쳤다.
설문 결과, 전통주에 어울리는 음식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황진이주는 생선 간장조림과 맥적을 고른 응답자가 각각 23.3%, 20%로 나타났다. 응답자는 ‘무게감이 강하지 않아 어류와 어울릴 것 같다’ ‘보디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찜이나 전, 조림과 어울릴 듯’이라고 답했다. 복분자음은 고추장 양념의 장어구이, 복분자 막걸리는 가자미식해, 감홍로는 등심구이, 문배주는 조개맑은탕과 곱창구이, 솔송주는 나물 무침과 생선회가 어울린다는 응답이 많았다. 술의 맛과 향, 무게감에 따라 어울리는 식재료와 양념, 조리법을 저마다 추천한 결과다.
문배주에 어울리는 양념으로는 소금이 66.7%로 가장 많았는데, ‘깔끔한 소금 간이 술과 어울리고 맑은 향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다. 솔송주에 어울리는 조리법으로는 찜과 무침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논문은 “전통주 소비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쉽게 접할 수 없어 어떤 음식과 함께 마셔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라며 “전통주의 관능 특성(전통주의 맛과 향, 색, 질감 등 오감을 통해 직접 느끼는 특성)에 어울리는 메뉴 구성으로, 우리 전통주와 음식의 매칭에 조화로움을 더 많이 만들어내야 전통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