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14일(이하 현지시각)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5월 12일 밤부터 시작된 이 무력 충돌은 리비아의 서부와 동부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두 세력 간 고질적인 다툼에서 비롯됐다. 트리폴리가 있는 서부를 지배하고 있는 통합 정부(GNU) 소속 민병대 444여단과 동쪽 벵가지를 근거로 하는 강경 이슬람주의 무장 조직 라다(RADA) 특수부대 간 충돌은 양측이 중화기, 장갑차, 심지어 탱크까지 투입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양상을 보였다.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공항은 전면 폐쇄됐고, 도시 전역에는 야간 통금이 발령됐다. 최소 6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의 민간인이 중경상을 입었다. 포격으로 인해 주택과 상점이 파괴되었으며, 주민은 임시 대피소로 피신했다.
이번 충돌은 서부의 444여단이 안보지원국(SSA)의 고위 사령관 압둘가니 키클리를 살해하면서 시작됐다. 키클리는 트리폴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 그의 죽음은 민병대 간 균형을 무너뜨려 라다가 444여단을 공격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독립 무장 세력인 라다는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질서유지와 테러리즘 대응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실상은 자체 교도소 운영과 비공식 체포 등을 일삼는 ‘국가 안의 국가’라고 할 것이다. 이번 트리폴리 시가전은 2011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 Gaddafi) 정권이 붕괴한 후 새로운 통합 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리비아의 현재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리비아 민병대 문제에 무력한 유엔(UN)
국제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1년 9월에 설립, 중재와 제도 구축, 인권 감시 및 치안 개혁 등을 통해 리비아의 평화와 안정, 국가 재건을 꾀하는 유엔리비아지원단(UNSMIL·United Nations Support Mission in Libya)은 5월 14일 성명을 내고 “인구 밀집 지역에서 무력 충돌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즉각적인 휴전과 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리비아 내부 정치가 극도로 분열돼 있고, 민병대가 도시와 인프라를 장악하고 있으며 튀르키예, 러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외세가 개입하고 있어 GNU도 UN 기구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에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리비아에서 극도의 무정부 상태가 재현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한때 여러 가지 이유로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나라, 1990년대부터 미국이 경제제재를 했던 나라, 또 대수로 공사 등 많은 건설·플랜트 사업으로 우리에게 친숙했던 나라, 리비아는 지금 국제사회에서 거의 잊힌 나라가 되었다. 국제 뉴스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답답한 내전 상태가 14년째 지속되고 있다.
카다피 사후 다툼과 대치 끊임없이 이어져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실제로는 권력 공백과 민병대 난립, 외세 개입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문제는 하나의 나라에서 사실상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며, 정부 통제를 벗어나 발호하고 있는 수많은 민병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 트리폴리 중심의 서부에는 UN이 인정한 공식 정부인 소위 GNU가 있으며 이 GNU는 다양한 지역 기반 민병대와 느슨한 연합 형태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트리폴리를 포함한 서부 지역은 GNU가 직접 통제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다. 다양한 민병대가 독자적으로 치안, 사법, 구금, 경제활동까지 장악하며, 세력 간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현재의 트리폴리 충돌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벵가지와 토브룩 중심의 동부는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 장군이 주도하는 국가안정정부(GNS)와 그의 군사 조직인 리비아국민군(LNA)이 지배하고 있다. 이 지역은 군부가 강력하게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서부와는 달리 치안이 더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UN이 인정한 허약한 서부 정부와 강력한 동부 다른 정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리비아의 불안정성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지정학적 갈등과도 관련이 있다. 튀르키예는 UN과 함께 서부 GNU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반면, 러시아, UAE 그리고 이집트는 동부의 하프타르 장군을 후원한다. 리비아 의회도 동부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그동안 유엔은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추진해 왔으나, 법적 기반과 이해관계 조정 실패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었다. 진짜 GNU 구성을 위한 회담도 합의 도출에 실패하거나 발표 직후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까지도 리비아는 헌법도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장 세력이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분쟁·무력 충돌 수출하는 리비아, 국제사회 위험 증폭
광활한 사막이 이어지는 리비아 남부는 무장한 부족 세력, 인신 밀매와 무기 밀수 조직, 극단주의 테러 조직이 혼재된 통제 불능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슬람국가(IS) 및 알카에다 등과 연계도 의심받고 있으며, 사실상 국가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다. 이러한 치안 부재는 리비아를 아프리카 난민의 주요 탈출 루트이자 밀입국 중계지로 만들었다. 수단 내전 등 인근 분쟁에서 유입된 난민 수만 명이 남동부 국경도시 알쿠프라(Al Kufra)를 통해 리비아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트리폴리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밀수 조직, 민병대, 심지어 일부 치안 당국까지도 난민을 수익원으로 삼고 있으며, 수감 시설에서는 다양한 인권 침해가 반복되고 있다. 리비아 내부의 실향민만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국외 난민도 튀니지·이집트·차드·수단에 걸쳐 수십만 명에 달한다.
난민 문제는 유럽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리비아는 지중해 횡단 밀입국의 최대 허브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유럽 국가에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테러리즘 확산에서 주요 거점이 되고 있는 남부 사막 지역은 사헬 지역과 중동을 잇는 테러 네트워크의 교차로가 됐다. 이와 같이 리비아는 국제 범죄의 허브로 기능하고 있으며, 사헬 지역 국가와 국경이 허술하게 관리되어 분쟁과 무력 충돌의수출국이 되어가고 있다.
리비아는 단순한 내전국이 아니다. 국제 난민, 테러, 인권 위기, 지하경제가 중첩된 다중 위기국이다. 정치적 통합과 민병대 해체, 외세 개입 축소 및 민간 통치 기반의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리비아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지중해 유럽을 연결하는 혼란의 진원지로 계속 남을 것이다. 리비아 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