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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그리고 사회과학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사회현상 간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인과관계는 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이며 상관관계는 두 변수 간에 동시에 변화하는 경향이 있는 경우다. 게으른 우리 인간은 종종 이 둘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곤 하며, 우리가 미신 혹은 신화라 부르는 많은 것은 사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한 결과다. 

필자가 수업에 교재로 사용하는 ‘경제학원론’에서는 이러한 혼동의 사례로, 미국의 한 광고 회사 직원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직원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빨간색이 두드러진 광고를 집행한 기간에 파란색 위주의 광고를 진행한 시기보다 백화점 매출이 20%포인트 높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광고에 빨간색을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놀라운 결과를, 어쩌면 승진과 보너스를 기대하며 사장에게 보고했지만, 사장은 그를 해고했다(아이코!). 빨간색 위주의 광고가 진행된 기간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것이다. 빨간색 광고와 매출 증가는 상관관계에 불과했을 뿐, 인과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조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한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로, 최근 자주 인용되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통합한 부처를 신설한 해외 사례를 살펴본 결과, 통합 전후 5년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감축 효과가 확인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통합 부처 신설이라는 사건은 실제로는 당시 정부의 정책적 의지 또는 아젠다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대리변수'에 불과할 수 있다. 부처를 통합했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후 정책 추진 의지가 더 강했던 정부에서 통합 부처를 만들었고 감축량이 늘었을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에 빨간색 광고가 늘었고, 매출액이 증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반대한다는 건 아니다. 에너지·기후변화 정책 관련 기존의 거버넌스(실행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새 정부는 기후에너지부를 통해 이를 해결하기를 선택했다. 기후에너지부는 지난 대통령 선거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충분히 정당하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후에너지부라는 조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지나치게 장점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기대치만 부풀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에너지 가격 정상화와 AI 전략 조화 추구해야

신설될 기후에너지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첫 번째 과제는 전력 요금의 정상화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화석연료 자체는 물론 그것으로 생산되는 에너지 가격이 올라야 한다. 경제학은 물리학을 닮고자 하지만 사실 ‘법칙(law)’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한 손에 꼽히는데, 그 드문 법칙 중 하나가 ‘수요의 법칙’이다.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려면, 가격이 올라야 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및 기후변화 정책은 이 단순하고 엄정한 법칙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선거에 어쩔 수 없이 민감한 정치권으로부터 분리해 한국은행처럼 독립적인 기관에 부여하거나 최소한 연료비 변동과 환경 비용을 자동으로 반영하는 요금 구조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전력 요금을 억누르고 싶은 유혹만 자제해 준다면 감히 말하건대,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성장 정책, 특히 인공지능(AI) 전략과 조화에 달려 있다. 새 정부는 ‘진짜 성장’을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내세우며, 최우선 과제로 ‘AI 3대 강국 진입’을 제시했다.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서는 “에너지전환을 위기가 아닌 산업 발전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거대한 시대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일은 절대 간단치 않다. 특히, AI 시대 폭증할 전력 수요를 고려하면, 두 과제는 어쩌면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이 2024년 3월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덴마크 해상 풍력 비즈니스 콘퍼런스에서 축사하고 있다. 덴마크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공급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는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를 2015년부터 운영 중이다. /뉴스1
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이 2024년 3월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덴마크 해상 풍력 비즈니스 콘퍼런스에서 축사하고 있다. 덴마크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공급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는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를 2015년부터 운영 중이다. /뉴스1

獨·弗도 산업 정책으로 에너지 재정립

아마도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정책 측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국가는 유럽연합(EU)의 두 핵심 축인 독일과 프랑스일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중심 국가인 독일은 당시 정부 기조에 따라 에너지 담당 부처는 변화해 왔다. 메르켈 총리 시기(2013~ 2021년)에는 ‘경제에너지부(Federal Ministry for Economic Affairs and Energy)’가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숄츠 총리 집권기(2021~ 2025년)에는 기후변화를 강조하며 ‘경제·기후행동부(Federal Ministry for Economic Affairs and Climate Action)’로 개명했다. 하지만 올해 5월 출범한 메르츠 총리 정부에서는 다시 과거의 명칭인 ‘경제에너지부’로 회귀했다. 우리가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쳐야 하는 프랑스의 경우, 과거에는 에너지 관련 정책이 ‘생태전환부(Minist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 de l’Énergie, du Climat et de la Prévention des risques)’ 소관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부터 해당 부처 이름에서 에너지가 빠지고 ‘경제·재정 및 산업·디지털 주권부(Ministère de l’Écono-mie, des Finances et de la Souveraineté in-dustrielle et numérique)’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즉, 기후변화 대응에서 전통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해온 독일과 프랑스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부상한 에너지 안보 문제 그리고 최근의 AI 국가 전략과 연계성 속에서 에너지를 산업 정책의 핵심 요소로 재위치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적 흐름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과 현실 사이 긴장, 제대로 관리해야

기후에너지부가 그 형태가 무엇이 되든,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에너지전환이라는 과제를 정치적 유연성 속에서 일관되게 추진하는 힘이 필요하다. 성장 전략과 탈탄소 사이의 균형을 찾고 조율하는 능력은 정책 설계자와 집행자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에 달려 있다. 명분과 현실, 당위와 선택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기후에너지부는 또 하나의 이름뿐인 조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제는 단순한 부처 개편을 넘어, 에너지와 기술, 기후와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가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읽고, 부처 신설을 하나의 상징이 아닌 실질적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면, 기후에너지부는 한국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밋빛 낙관론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설계와 견고한 운용이다. 그것이 ‘국민주권 정부’가 말하는 ‘진짜 성장’을 이뤄내는 길일 것이다.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