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의 시대는 지나갔다. 야마구치 슈는 그의 책, ‘비즈니스의 미래’에서 오늘날의 사회를 ‘고원사회(高原社會)’라고 표현했다. 물질적 풍요는 일정 수준 이상 달성되었고, 경제성장률은 높아지지 않는다. 세계경제가 연 2%씩만 성장해도 100년 뒤면 경제 규모가 현재의 일곱 배가 된다. 야마구치는 말한다. ‘경제성장을 통한 물질적 풍요’라는 비즈니스의 역사적 사명은 이미 완료되었고, 이제는 기업이 ‘사회를 더 풍요롭고 활기차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이 같은 인식은 기업 경영의 목표도 바꿔놓는다. 더 많은 제품을 파는 것에서, 더 나은 의미를 제공하는 쪽으로. 더 높은 시장점유율에서, 더 강렬한 사회적 존재감으로. 바로 이 지점에서 ‘미닝아웃(Meaning-out)’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고 힘을 얻게 된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미닝아웃이란 개인이나 기업이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신념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소비 행동으로 드러내는 트렌드를 의미하지만, 브랜드의 ‘지향점과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전략으로 확대됐다. 소비자 측면에서의 미닝아웃은 ‘가치 소비’가 된다. 기업의 미닝아웃은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로 귀결된다. 중립 뒤에 숨지 않는다. 기후 위기, 인종차별, 젠더, 성 소수자, 이주민, 정치적 사안까지 브랜드가 자사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같은 ‘의미의 드러냄’은 단순한 사회 공헌 활동(CSR) 이나 캠페인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제품, 유통,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신념이 반영되며, 소비자는 그 신념을 경험하고 거기에 동의하며 브랜드를 선택한다. 결국 미닝아웃은 브랜드가 단지 ‘무엇을 하는가’를 넘어서 ‘무엇을 믿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 행동주의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 세계관과 일치하는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기업의 능동적인 노력이 된다. 
벤앤드제리스 아이스크림. /셔터스톡
벤앤드제리스 아이스크림. /셔터스톡

제품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벤앤드제리스

벤앤드제리스(Ben & Jerry’s)는 대표적인 브랜드 행동주의 기업이다. 이 기업은 단순히 윤리적 소비를 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사의 철학을 정치적·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하며 ‘의미로 존재하는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벤앤드제리스는 오랜 시간 성장호르몬(rBST)을 투여한 젖소의 우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 브랜드는 한발 더 나아간다. ‘우리 제품은 안전하다’는 수동적 메시지 대신, 성장호르몬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사회 제도 변화에 개입한다. 브랜드가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를 바꾸는 주체’로 나선다는 점에서 브랜드 행동주의의 핵심 정신을 구현한다. 창립자인 벤 코헨(Ben Cohen)과 제리 그린필드(Jerry Greenfield)는 창업 초기부터 ‘기업은 이익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을 브랜드 전반에 녹여왔다.

벤앤드제리스는 정치적 표현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관계로 유명하다. 창업자 중 한 명인 벤 코헨은 샌더스를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정치인”이라 표현하며 공개 지지를 이어왔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했던 2016년과 2020년, 벤앤드제리스는 그의 정치 철학을 응원하는 ‘버니 샌더스 한정판 아이스크림’ 을 실제로 출시했다. 2016년 벤앤드제리스는 ‘Bernie’s Yearning’을 발매한다. 아이스크림 위에 얹힌 판 초콜릿을 부숴 먹는 방식은 ‘1%의 부를 해체해 99%와 나누자’는 샌더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전달했다. 2020년에는 ‘Bernie’s Back!’을 발매하기도 했다. 벤앤드제리스는 제품 자체를 메시지의 매체로 활용하는 독특한 브랜딩을 구사한다. 

2018년에는 ‘Pecan Resist’, 트럼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제품을 발매했다. 제품명, 패키지 디자인, 수익 기부 구조까지 모두 저항의 상징으로 기획되었다. 2019년에는 ‘Justice ReMix’d’, 형사 사법 개혁과 인종 정의를 주제로 한 제품을 선보였는데 커뮤니티 인권 단체와 협업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고 있으며, ‘BLM(Black Lives Matter)’ 운동과도 연계되어 있다. 벤앤드제리스는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정의와 연대의 감각’을 판매하는 브랜딩을 펼치고 있다.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슬로건이 적혀있는 나이키 매장. /셔터스톡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슬로건이 적혀있는 나이키 매장. /셔터스톡

환골탈태한 나이키

1988년에 시작된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은 오늘날의 나이키를 만들어 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2018년 나이키는 캠페인 30주년 기념 광고를 집행한다. 이 캠페인은 브랜드로서 나이키를 다시 보게 했다. 개인의 열정과 성취에 방점을 찍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먼 길을 돌아와 마침내 미닝아웃 브랜드로, 브랜드 행동주의의 상징적인 브랜드로 우뚝 섰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나이키에는 심각한 흑역사가 있다. 1996년 6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어린 소년의 사진이 실렸다.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어린 파키스탄 소년이 바느질하는 사진이었다. 나이키의 아동노동 착취를 폭로하는 기사와 함께였다. 나이키 농구화가 130달러(약 18만원)일 때 소년은 일당으로 60센트(약 800원), 시급으로는 6센트(약 80원)를 받는다는 얘기에 비난이 쏟아졌다. 

처음에 나이키는 “직접 소유하지 않은 공장의 작업환경에 대해 우리의 책임은 없다” 고 대응했다. 노동자의 작업환경, 인권 등은 해당 국가의 통제를 받는 것이기에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대응이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소비자 단체는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을 사지 않겠다며 반(反)나이키 캠페인을 벌였다. 1997년 11월에는 나이키 하청 업체인 베트남 공장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된 사건이 뉴욕타임스(NYT)에 보도됐다. 

더욱 거세지는 소비자의 반발, 부정적 기업 인식 등의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이키는 1998년 기업책임부(Office of Cor-porate Responsibility)를 신설하고, 안전과 건강, 인력 개발, 환경 관련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지침을 기준으로 나이키는 개발도상국의 노동 환경과 청년 노동자 교육 훈련 환경 개선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을 거쳐 2000년부터 나이키의 매출은 회복하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추락과 부활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이윤 창출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함께 봐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2018년 9월 나이키는 저스트 두 잇 30주년 기념 캠페인 광고를 집행했다.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는 광고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국 프로 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이었다.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논란이 된 2016년, 그는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시작한 인물이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사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무릎 꿇기’는 당시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 기조에 반발하는 흑인층과 진보적 시민을 중심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발도 거셌다. 국가 제창 거부라는 상징적인 행동에 보수 정치인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2017년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에게는 소속팀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캐퍼닉과 스폰서 계약을 유지해 오던 나이키가 그를 광고 모델로 발탁한 것이다. 직접 출연은 물론 내레이션까지 맡겼다. 나이키가 캐퍼닉의 사진과 함께 사용한 광고 카피는 ‘신념을 가져라. 비록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였다. 이 광고에 대해 당연히 보수층은 반발했고 일부 소비자는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기도 했다. 나이키를 강력히 지지한다거나 불매하겠다는 엇갈린 관점의 이야기가 매일 뉴스로 나왔다. 캐퍼닉을 비난하는 소비자는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나이키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 캠페인을 통해 자사 브랜드가 ‘용기, 신념,도전’을 말하는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이는 단기적 매출 손실보다 장기적 팬덤을 강화하는 미닝아웃의 전형적 사례로 평가된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