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미국의 이란 핵 시설 폭격에 맞물려 조회 수와 팔로어 수가 급증한 계정이 있다. 네타냐후의 인스타그램? 트럼프의 트루스소셜? 아니다. ‘펜타곤 피자 리포트’라는 불가사의한 이름의 계정이다. 약 20만 팔로어를 보유 중인데, 펜타곤 주변 피자 가게 주문량을 체크해 전쟁 예고 지표로 사용하는 곳이다. 핵 시설 타격 직전 펜타곤 인근 파파존스 매장의 피자 주문량이 두 배 폭증했다는 이 계정의 리포트가 귀신같이 폭격 뉴스로 이어지며 누리꾼의 관심을 끈 것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지표를 토대로 현재 트렌드를 짚거나 가까운 미래의 정세를 예측하는 일은 꽤 많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속옷 지수’에 주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남성이 눈에 띄지 않는 속옷에 들이는 비용부터 줄인다는 가설이다.
우리가 흥얼거리는 팝송이나 유행 가요로도 사회가 가는 방향을 유추해 볼 수 있을까? 음악계 관계자의 답은 대개 ‘예스!’다. 이 판에도 피자 리포트, 속옷 지수 같은 용어가 있다. 바로 ‘불황 팝(recession pop)’이다. 특정 스타일의 노래가 유행하면 대체로 불황이란 얘기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 속 대거 등장
불황 팝의 전범으로, 음악계는 2007~2010년에 나온 팝 히트곡을 지목한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세계적 금융 위기와 불황으로 번져 나간 시기. 관계자가 대표적 불황 팝 아티스트로 꼽는 이는 레이디 가가, 케셔, 블랙 아이드 피스, 케이티 페리 등. 가가는 2008년 당시 1집 ‘The Fame’으로 데뷔하자 ‘Just Dance’ ‘Poker Face’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연달아 올렸다. 다소 구태의연한 유로 팝(Euro pop) 스타일의 음악에 화려한 의상과 비디오를 접목한 그의 음악은 초기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상업적으론 장외 홈런을 날려버렸다.

케셔의 ‘Tik Tok(2009년)’도 이 카테고리에 쏙 들어간다. 이어 블랙 아이드 피스의 ‘Boom Boom Pow’ ‘I Gotta Feeling’, 케이티 페리의 ‘Teenage Dream’ ‘Last Friday Night (T.G.I.F.)’ 등은 2000년대 후반 불황의 긴 꼬리로 인식되기도 했다. 빠른 템포, 단순한 가사, 10대의 풋사랑이나 파티에 대한 무한한 향수 등이 불황 속 직관적 쾌락을 찾는 이들의 심리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파티와 ‘떼창’에 적합한 ‘팝 랩(pop rap)’ 장르로 인기를 얻은 핏불, 플로 라이다도 종종 이런 맥락에 소환된다.
올 들어 ‘타임’, USA투데이 등 미국 유력 매체가 일제히 불황 팝 귀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한 10여 년 전 팝 히트곡과 유사한 분위기의 팝송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잇달아 히트한 데 주목한다. 디스코 복고 바람을 몰고 온 미국 가수 채플 론의 역주행 히트곡 ‘Pink Pony Club’ ‘brat summer’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며 여름 음반의 새 고전으로 떠오른 영국 싱어송라이터 찰리XCX의 앨범 ‘brat’은 2020년대 불황 팝의 새로운 대표 주자다. 이들은 2000년대 불황 팝 선배들이 보여준 특징, 그러니까 대책 없는 파티 무드, 떼창을 하는 단순하나 힘 좋은 후렴구, 스토리나 맥락을 압도하며 치고 나오는 글램(glam)이라 부를 만큼 화려한 비주얼 등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에선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확산
국내 가요계에서도 불황 팝에 대한 이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때의 불황기는 세기말부터 세기 초까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그리고 냅스터 신드롬 이후 MP3의 p2p 무단 공유로 연타석 불황을 맞은 가요계에선 몇 갈래의 ‘불황 가요’가 인기였다. 하나는 위로 송(song) 열풍으로, 한스밴드의 ‘오락실’과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1998년을 강타했다. 두 번째는 2001년의 감성 컴필레이션 돌풍이 있었다. 이미연의 ‘연가’, 이요원의 ‘순수’, 장동건·배용준 등의 ‘동감’ 같은 가성비 발라드(또는 클래식) CD 모음집이 밀리언셀러까지 기록했다.
이쯤에서 K-팝의 끝없는 질주와 확장일로를 생각해 본다. 서구식 불황 팝 공식을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면, 한국은 21세기 내내 불황을 겪었어야만 한다. 훅 송(hook song)이라 불리는 단박에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 화려하기 그지없는 집단 안무와 뮤직비디오, K-뷰티의 선봉장인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불황 팝에 딱 들어맞는 노래가 수천, 수만 곡 쌓인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불황 팝의 공식이란 게 근래에 화제는 되되 재미난 가설(假說)쯤으로 가볍게 다뤄지는 현지 분위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런데 미국 USA투데이는 불황 팝 기사 말미에 의미심장한 단락을 제시했다. “한편, 블랙핑크 멤버 제니, 로제, 리사가 선보이고 있는 구김살 없는 댄스음악이야말로 불황 팝을 이끌 차세대 주역이 될지도 모르겠다” 며. 영미권 불황 팝을 뛰어넘는 ‘도파민 폭탄’ K-팝이 새로운 현지 불황 팝의 선두를 차지한다면? ‘한국이 새로운 불황 팝 수출국으로서 문화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다’ 같은 이율 배반적 기사가 현지 매체를 도배할지도 모를 일이다. 재미난 상상이지만, 동시에 우울한 상상이기도 하다(아무튼 불황은 제발 이제 그만).
어쩌면 불황 팝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꺼내는 것, 그 자체야말로 불황의 강력한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부엌에서 된장찌개가 다 끓을 무렵에 주변에서 무슨 큰 소리만나면 어머니가 하던 이야기처럼.
‘이거, 찌개 끓어 넘치는 소리 아니냐? 냄비 한번 확인해 봐라!’